범인을 잡은 것은 사람이 아니라 CC-TV였다. 나는 지금 사람이 아닌 기계에 의해 감시당하고 있다. 당신도 지금 ‘어떤 기계’에 의해 감시당하고 있다. 섬뜩하다.
  ‘어디야?, 뭐해?’하는 휴대폰 문자 메시지조차 감시로 느껴질 때가 있다. 아니, 누군가에게는 ‘어디야?, 뭐해?’하는 문자 메시지가 진짜 ‘감시성 문자’일 수 있을 테다. 언제 어디서나 CC-TV가 나를 주시하고 있고 온갖 기계들이 나를 둘러싸고 있다. 주위를 한 번 둘러보라. 수많은 휴대폰들, 자동차들, 정체를 알 수 없는 기계들 까지…
  믿을 것은 ‘사람’이 아니라 ‘기계’이고, 무서울 것은 ‘기계’가 아니라 ‘사람’인 세상이 됐다. 과연 이런 세상이 사람이 사는 세상, 사람이 살 수 있는 세상일까? 범인을 잡아준 CC-TV에게는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지만 이게 과연 정상적인 세상일까? 온갖 범행을 막기 위해 CC-TV를 더 늘릴 방안을 고민하고 있단다. 그러나 나는 CC-TV가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더 무섭다. CC-TV는 범행 발생 후에만 그 진가(?)를 발휘하니까. CC-TV를 노려보며 범행을 할 범인들이 나는 너무 끔찍하다. 사람이 사람을 믿을 수 있는 세상을 만들 수는 없을까? 꼭 이렇게 기계에 의존해, 기계를 숭배하는 세상이 돼야만 할까? 기계들은 사람들의 ‘불신’을 빌미로 커나갈지 모른다.
  백도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도난 사건들도 마찬가지다. 꼭 CC-TV를 설치해야만 해결되는 문제일까? 내 옆 사람을 믿고, 내 맞은편에 앉은 사람을 믿고, 같은 공간에 있는 모든 사람을 믿을 수는 없을까. 물론 믿는 것만으로 도난 사건이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믿는 만큼 ‘믿음을 받는 사람’은 그 믿음에 부응해줘야 한다. 서로가 서로를 믿고 믿는 대로 행동한다면 도난 사건 따위는 일어나지 않을 텐데…
  나는 아직 사람이 좋다. 당신을 믿고 싶다. 당신이 나를 배신하기 전까지는 내가 기계를 배신할 테니 당신을 믿게 해 달라.

저작권자 © 전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