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벌이란 추상적인 서열이나 고정관념만은 아니다. 학벌은 살아 움직이는 집단이요 공동체다. 사람들이 같은 대학 출신이나 소속이라는 이유로 결속하여 밀어주고 끌어줄 때 그것을 학벌이라 한다.
  학벌은 현대판 문중(門中)이다. ‘학벌이 좋다’는 말은 사회적으로 더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가문’에 속한다는 말이다. 한국사회는 공공적 이성을 망각한 이 신종 씨족집단들이 서열을 다투는 원시적 경쟁장이며, 더 좋은 가문에 입양되기 위한 청소년들의 처절한 노력은 말할 수가 없다.
  학벌사회의 구성 원리인 가족주의를 부추기는 것은 대학 언론들의 역할이다. 중고등학교 도덕 교과서가 ‘우리는 한국인’이라는 의식을 살포하려 애쓰듯, 대학 언론들은 언제나 ‘우리는 ○○대인’이라고 말한다. 국가주의와 가족주의 외에 공동체를 구성하는 다른 방식은 없는 걸까?
  지난 2년간 <전대신문>은 학벌과 대학서열화를 비판하는 내용의 기사를 꾸준히 실어왔다. 올해 들어서도 홍세화를 인터뷰하고 ‘학벌 없는 사회’ 사무처장의 기고문을 실었다. 몇 달 전 장옥희 기자와 김수지·김휘원 기자의 학벌 관련 기사는 지방대 차별 문제에 머물지 않고, 지역 안의 다른 대학을 무시하는 “우리 안의 이중성”을 건드리는 정직한 성찰도 보여줬다.
  그러나 ‘우리는 전남대인’을 외치는 것은 예외가 아니다. 집안의 가장인 총장은 지면에서 “전남대학교 가족들을 대표하여” 신입생들을 환영한다. 일반 신문과는 달리 학교 소식 기사의 주어는 3인칭의 객관화된 “전남대”가 아닌 1인칭의 주관화된 “우리 대학”이다. 때로는 “자랑스런 전남대인” 같은 자아도취적 표현이 덧붙는다.
  종친회(동문회)가 후손들 잘 되라고 얼마나 애쓰는지, 문중 어르신들이 후손들의 취업준비를 돕는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알려주는 것도 쉽게 볼 수 있는 기사다. 가장 지속적인 연재물은 ‘무슨무슨 전남대인을 찾아서’라는 제목의 문중 어르신들 인터뷰이다. (훌륭한 인생 선배를 인터뷰하고 싶다면 왜 전남대 출신들만 골라서 만날까?) 총선을 앞두고선 “우리 대학 출신 누가 나오나”라는 제목 아래 광주·전남 지역 후보자들 중 문중 사람들이 누구누구 있는지 자세한 명단을 뽑아주었다.
  이렇게 결속한 문중은 다른 문중과의 경쟁을 위해 파이팅을 다짐한다. 그리하여 한 편에서 대학서열화를 비판하는 <전대신문>은 다른 한 편에서는 “국내 Top 5, 세계 100위의 대학에 진입”하겠다는 학교 당국의 포부에 맞장구치며 (교육기관에 빌보드차트 순위 매기듯 이렇게 서열을 매긴다는 발상은 얼마나 몰상식한가) “세계 으뜸대학으로 비상하자”고 외친다.
  이 아이러니를 어떻게 이해할까? ‘학벌사회 타파’라는 진보적 이상과 ‘우리는 전남대인, 우리는 하나’라는 봉건적 정체성 사이에서 겪는 자기분열, 이것이 <전대신문>에게 사유와 성찰을 요구하는 과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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