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우리 대학에 10억 상당의 토지를 기부했다 해서 인터뷰를 한 할머니가 있었다. 신기하게도 내가 사는 아파트와 같은 아파트에 살고 계셔서 어렵지 않게 찾아가 인사를 드리고 이야기를 나눴었다.
그 때도 몸이 많이 안 좋으셨다. 몸이 너무 안 좋으셔서 웃는 것조차 힘들어 하셨다. ‘별 일도 아닌데 기자들이 왔다’며 쑥스러워하시는 표정을 나는 봤다. 그 때 내가 놀랐던 것은 할머니께서 남을 돕는 일을 대수롭지 않은 당연한 일로 여겨왔다는 것이다. 우리가 매일 밥을 먹고, 잠을 자는 일처럼 할머니에게는 물질적으로든 정신적으로든 남을 돕는 것이 그저 생활의 일부였던 것이다. 그래서 할머니의 쉽지만 어려운 용기로 10억을 우리 대학에 기부했었고, 할머니의 용기와 사랑 덕에 몇 몇 학생들이 장학금을 받을 수 있었다.


   그런데 평생을 나눔의 기쁨으로 살아온 할머니가 얼마 전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한편으로는 마음이 너무나 아프면서도 한편으로는 내 자신에 대한 죄책감 때문에 한동안 마음이 시렸다. 바로 옆 동에 살고 계셨던 할머니에게 조금만 더 관심을 가지고 안부를 물었다면 인터뷰 한 후로도 얼마든지 더 찾아 뵐 수 있었을 것이다. 인터뷰를 할 때의 할머니에 대한 나의 관심과 놀라움은 그저 ‘호기심’에 지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나의 관심은 정말로 단편적이고, 일시적인 것이었구나. 사회에 대해 비판 의식을 가지면 뭐하나? 바로 옆 동네에서 일어나는 일도 모르는데. 따뜻한 기자가 되겠다고, 속물적인 기자가 되지 않겠다고 다짐해 왔었는데 나는 결국 특종을 쫓는 기자에 불과했을까.

   혹시 이 글을 보는 당신도 무언가에 관심을 가진다고 하면서 내 가장 가까운 것들에 대한 관심, 소소한 일들에 대한 관심은 져버리고 있지는 않는가? ‘있을 때 잘해’라는 말이 괜한 말이 아니다. 내 가족, 내 친구들, 내 가까운 것들에 대한 관심 없이 사회에 대한 관심만을 가진다면 당신은 그럴 자격이 없다. 당신의 관심이, 내가 그랬던 것처럼 호기심으로 끝나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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