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소통구는 무엇입니까.


   나는 요즘사람들이 많이 하는 네이트온도, MSN 메신저도 잘 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내가 먼저 문자를 많이 보내는 것도, 전화 통화를 많이 하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난 내 자신과의 소통만 할 뿐 타인과의 소통은 그 길을 열어 놓지 않았던 것은 아닌가 싶다. 문득 내가 일방향 소통을 하고 있었던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 칼럼을 써내는 것도 메아리 없는 외침이 아닐까. 그 소통구는 오롯한 마음. 오로지 마음뿐이었다. 내게 있어 소통구는 지난번 만났던 박양희 동문처럼 음악도 아니고, 어떤 화가처럼 그림도, 글도 아니다. 가진 것은 소통하고자 하는 마음과 말할 수 있는 입술 뿐.

   당신은 얼마나 깊고 넓은 소통구, 여러 개의 소통구를 가지고 있는가. 혹시 한 쪽은 열어두고 한 쪽은 닫아두지 않았던가. 귀 기울이고 소통해보려 한 적이 있는가. 이 봄 날 꽃나무들은 흩날리는 꽃잎과 향기로 소통하고, 봄바람은 바람의 순결한 촉감으로 우리와 소통한다. 얼마 전 섬진강에 잠깐 다녀왔다. ‘강의 소리’를 들으며 섬진강과 소통했다. 유유히 흘러가는 강물 소리. ‘내가 왔다’고 봄을 알리는 소리. 그 끝에 외마디 비명. 섬진강과의 소통을 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대운하’는 생각도 못할 텐데……. 섬진강이 더 마음아파 하는 것은 대운하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것이더라. 낮은 사람들, 고통 받는 사람들과의 소통을 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지금과 같은 정치판을 벌이지는 않을 텐데……. 정치하겠다는 사람들의 소통구 어딘가 구멍이 뚫려 있든가 한 쪽은 막혀있는 것은 아닐까. 정치인들뿐만 아니다. 모든 다툼과 아픔은 소통의 부재에서 오는 것이 아닌가 싶다. 이 시대에 소통할 수 있는 기구는 예전보다 더 많아졌지만 진정한 소통을 위해 쓰질 않는다. 그래서 더 슬프다.
  

   진실하고 깊은 소통은 서로의 아픔을 쓰다듬어 주고 사랑할 수 있게 한다. 진정한 소통(疏通)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많이 아프다. 섬진강이 아프면 나도 아프고, 당신이 아프면 나도 아프다. 한때 폐인까지 만들어냈던 드라마 ‘다모’ 속 대사처럼 “아프냐? 나도 아프다”. 소통(小痛)을 위한 소통(疏通)ㅡ적게 아프기 위해 우리 서로 통하자. 당신과 소통하고 싶다. 깊이깊이. 구석구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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