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대 중반에 필자는 친구가 다니는 모 교회의 주일예배에 참석한 적이 있었다. 마지못해 나선 터라 시간은 이미 늦었고 본당에는 신도가 꽉 차있어 할 수 없이 별관을 이용해야 했다. 그런데 별관에 들어서는 순간 필자는 당혹감을 감출 수 없었다. 예배를 주관해야 할 목사는 없고 TV만이 떡 버티고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신도들은 화면 속의 목사 설교에 조용히 아멘을 읊고 있었다.
  그 교회는 폐쇄회로(CCTV)를 통해 본당의 예배 내용을 별관으로 중계하였는데, 강대상을 두드리며 설교하는 목사만을 생각했던 필자에게 그 모습은 아주 생소한 것이었다.
  신앙심이라곤 거의 없었던 필자는 예배시간 내내 하느님의 축복이 어떤 변조와 복조과정을 통해 CCTV로 전달될까하는 우문에 빠지기도 하였다. 그 이후에도 친구를 따라 이 교회에서 몇 차례 더 예배를 보게 되었는데, 그 때는 항상 좀 서둘러서 본당에서 예배를 보곤 하였다. 아무래도 별관에서 보는 예배는 약발이 좀 떨어지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종교학자들은 종교를 “삶의 궁극적인 기반(ultimate foundation)에 대한 헌신”으로, 그리고 이 궁극적 기반을 발견하려는 사람을 신도로 정의한다. 과학문명이 아무리 발달하더라도 과학은 단지 어떻게(how)에 대한 답만을 제시할 뿐 왜(why)에 대한 답은 주지 못하기 때문에 과학이 발전할수록 삶의 궁극적 기반을 추구하는 종교의 역할은 오히려 강화된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은 정보통신의 발달이 종교의 역할을 크게 제약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특히 인터넷의 발달은 절이나 교회에서 스님이나 목사로부터 직접 깨우침을 받는 종교의 오랜 오프라인 관행과 배치될 것이라 생각한다. 실제로 로마 교황청은 유럽에서 신도들이 신부에게 이메일을 보내 온라인으로 고해성사를 보려는 수요가 늘어나자, 2001년에 인터넷을 통한 고해성사를 정식으로 금지한 바 있다.
  하지만 많은 성직자들은, 예배, 법회, 미사 등 핵심 종교행사는 차치하더라도, 그 외의 종교 활동이 현재의 오프라인에서 인터넷 등 온라인으로 빠르게 옮겨 갈 것이라는 데 의견을 같이 한다. 특히 미래의 신앙 주역인 청소년들은 인터넷 등 새로운 커뮤니케이션 수단에 익숙하기 때문에 이러한 추세가 보다 가속화 될 것으로 본다.
  따라서 참회와 보속의 장소인 교회와 법당 등이 궁극적으로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전환되는 모습도 상상할 수 있다.
  온라인으로 강론을 듣고 찬송가를 부르며, 사이버머니로 헌금이나 시주를 하고, 온라인 영성체를 모시며 사이버 연등을 다는 것 등이 그것이다. 물론 이런 모습은 종교의 정체성과 관련되어 아직은 쉽게 달성되기는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구텐베르크의 인쇄술 발명 이후 그 동안 성직자의 전유물이었던 성경은 일반 신도까지 보급되었다. 당시 일부 성직자들은 사람마다 성경을 자의적 해석하여 교회의 위상이 크게 위축될 것이라고 우려했으나, 오히려 기독교가 더욱 확대되고 일반 민중 속으로 스며드는 계기를 제공했다.
  인터넷 등 정보통신의 발달도 이처럼 삶의 궁극적 기반인 종교의 본질을 훼손하지는 않을 것이다.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의 비유처럼 인터넷은 어디까지나 손가락일 뿐 달 자체는 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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