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막 7장의 저자 홍정욱은 그의 책에서 ‘나는 가슴 한 구석 살아있는 젊은 내 꿈을 배반할 수 없었고, 주름진 얼굴로 자식만을 위한 인생을 살아가시는 부모님을 단 한시도 잊을 수가 없었다’고 말한다.


  내가 고등학생 때, 나는 이 구절을 다이어리 맨 앞장에 적어두고 항상 읽어보곤 하다가 어느새 외우기까지 했다. 애초에 좋은 배경에서 태어나 큰 걱정 없이 미국에 갈 수 있었던 홍정욱을 그리 좋아 하지는 않는다. 그런데 홍정욱 이야기를 하려는 게 아니다. ‘배반’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다. 어쩌면 우리는 친구에 대한 배반부터, 부모님에 대한 배반까지 수많은 배반을 하고 있는지 모른다. 지난밤, 친구에게는 ‘할 일이 많아서 집에 일찍 가봐야겠다’고 해놓고 남자친구를 만나러 가지 않았던가. 오늘도 밤늦게 까지 수다 떨고, 술을 마시며 공부만 하는 줄 아는 나를 애타게 기다리시는 부모님을 배반하고 있지 않은가. 그러나 그 어떠한 배반보다도 가장 큰 배반은 나에 대한 배반이리라.

  강의 시간표 취재를 지시하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 대학 학생들의 시간표는 어떨까. 무엇에 의한 시간표일까를 생각해 보았다. 학점 잘 주는 과목 순일까, 아니면 대리출석이 잘 되는 과목 순일까, 발표나 보고서가 없는 과목 순일까. 진정으로 듣고 싶은 수업이 있기는 한걸까.

 

  서양고대철학을 강의하는 이강서 교수는 “대학에서 희랍어를 가르치지 않으면 어디서 가르치겠냐고 총장님께 건의해 작년 2학기에 개설했는데 이번 학기에 ‘기초 희랍어’가 폐강 위기에 있다”며 안타까워 했다. 그 많던 학생들은 어디로 갔을까. 지금, 자신의 시간표를 한 번 들여다보길 바란다. 내 자신에 대한 철저한 배반의 시간표인지 자기 자신과의 의리를 지킨 시간표인지. 젊은 날의 꿈을 배반하는 시간표인지, 젊은 날의 꿈을 철저히 무시하는 시간표인지. 당신의 강의 시간표가 당신 미래의 인생 시간표와 같다면? 그에 앞서 젊은 날의 꿈이 무엇인지를 생각해 보라. 시간이 지나도 저물지 않을 빛나는 꿈이 있는가. 나 자신을 배반하지 말고, 시대와 상황을 배반하라. 시대와 상황과의 의리를 지키기 위해 나 자신을 배반할 수는 없지 않은가.

  시간표를 시작으로 나를 둘러싼 모든 것, 내가 선택한 모든 것들이 나 자신을 배반하고 있지는 않는지 생각해 보았으면 한다. 그리고 친구에게 당한 배반보다 내 자신에게 당한 배반을 더 아프게 느끼고 분노할 줄 알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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