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1학년 도덕 교과서에서 가르치는 도덕의 내용이란 대개가 인간관계 맺는 법인데, 정확히 말하자면 윗사람에게 순종하는 법이다.
 

  교과서는 선생님께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 하는 이유부터 인사할 때 허리를 숙이는 각도까지 차근차근 가르친다. 선배에 대한 예의범절도 빠지지 않는다. “후배는 선배를 존경하고 잘 따라야 한다. 선배는 마치 친형이나 친언니와 같다.

  이들은 우리보다 학교생활이나 사회생활의 여러 가지 면에서 경험도 풍부하고, 먼저 배운 사람들이다.” 중학교 2·3학년생이 1학년생의 존경을 받을 만한 어떤 풍부한 사회경험을 가지고 있는지, 교과서에도 별다른 설명은 없다. 다만 삽화를 통해 두 학생 사이의 짧은 대화를 예시로 보여줄 뿐이다. “선배님, 매점은 어디에 있지요?” “후관 오른쪽에 있단다.”

   교과서는 버린 지 오래지만 대학생들 사이에서도 자발적인 ‘도덕수업’은 계속되고 있다. 어느 대학생들이 새내기를 위해 만든 <선배들에게 예쁨 받는 후배 되는 방법>이라는 유씨씨(UCC)를 보니 “학교 안에서 선배님을 만났을 때” “선배님과 밥을 먹을 때” “술자리에 갔을 때” 어떻게 처신하는 게 좋을지 모범사례와 불량사례를 대조해가며 재미있게(?) 일러주고 있다. “우연히 아는 선배님을 만났을 때는 반갑고 활기차게 인사해야겠죠?” “선배님을 배려해서 학교식당에서 밥 사달라고 하는 후배가 더 예뻐 보이겠죠?” “선배님들 자리에 미리 세팅해 놓고 잔에 먼저 술을 따라드리는 후배는 그야말로 최고랍니다.” “조금 망가지더라도 일어나서 율동과 함께 트로트를 부른다면 선배님 눈에는 정말 귀여운 후배로 보일 수밖에 없을 거에요.” 교과서의 근엄한 톤이 유씨씨의 발랄한 톤으로 바뀌었을 뿐 내용은 다를 바 없다. 내가 윗사람이라는 걸 확인시켜주렴, 예뻐해 줄게.
 

 한편에선 ‘선배님’들이 후배를 이렇게나 귀여워하는데 왜 다른 한 편에선 ‘선배님’들에 의한 (언어적, 신체적) 폭력이 그치지 않을까? ‘귀여워하는 것’과 ‘폭력을 가하는 것’은 전혀 다른 관계방식으로 보인다. 하지만 나와 타인의 관계를 상하관계로 보고 나를 우위에 둔다는 점에서 둘은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화목한 상하관계든 폭력적인 상하관계든 우위에 선 사람이 홀로 주도권을 갖는다는 점에서는 차이가 없다. 화목한 상하관계에서 화기애애함이 사라질 때, 그 관계는 언제라도 폭력적인 상하관계로 바뀌는 것이다. 결국 후배를 귀엽게 여기는 문화와 후배에게 폭력을 가하는 문화는 사람과 사람의 관계를 상하관계로만 이해하는 동일한 한국적 습성이 서로 다른 형태로 표현된 것일 뿐이다.

  그러니 인간관계의 폭력성을 극복하는 길은 ‘선배님’의 자아도취적 내리사랑을 통해서가 아니라 상하관계 자체의 극복을 통해서 열린다. 대학은 고루한 ‘도덕’을 그대로 반복하는 공간일 수도 있지만 진보적이고 평등한 인간관계를 실험하는 공간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저작권자 © 전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