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나무는 자신이 겪은 시간을 마디로 표현합니다. 인간의 삶도 대나무의 마디와 같은 몇몇 매듭으로 이루어진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대학을 졸업한다는 것도 중요한 매듭 가운데 하나일 것입니다. 비단 황순원의 소설 ‘나무들 비탈에 서다’의 주인공 동호와 현태만 그런 것이 아니라 실상 모든 젊은이는 비탈에 선 나무입니다. 산비탈에 비스듬히 서 있는 나무는 위태로워 보이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합니다. 드높은 이상은 번번이 비루한 현실 앞에서 무색해지기 쉽습니다. 눈은 높기만 한데 손은 한없이 낮기만 합니다. 그래도 노랫말처럼 젊다는 것이야말로 든든한 밑천입니다.
 

  서양에서는 자신이 졸업한 대학을 가리켜 라틴어로 ‘알마 마테르(alma mater)’라고 부릅니다. 나를 ‘먹여 기른 어머니(nourishing mother)’라는 뜻입니다. 한자 문화권에서 어미 모(母)자를 써서 ‘모교’(母校)라고 부르는 것과 꼭 같습니다. 시인 서정주는 ‘자화상’이라는 시에서 자신을 키운 건 8할이 바람이라고 했습니다. 만일 그대가 지난 4년 동안 정문에서 시작되는 메타세콰이어 가로수 길을 걸어 들어와 학문의 바다에서 유유히 헤엄치고, 세상과 삶과 인간을 진지하게 성찰했다면 자신을 키운 건 8할이 대학, 전남대학교라고 서슴없이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대학 문을 나서는 그대는 우선은 훈풍이 아니라 매서운 칼바람 앞에 마주 서야 할지도 모릅니다. 취업이 쉽지 않다고 하고, 뜻한 대로 되기란 더더욱 어렵다고 합니다. 사람이 빵 없이는 살 수 없지만 그렇다고 빵만으로 사는 것은 아닙니다.

  지금 당장 여의치 않더라도 견인불발(堅忍不拔)의 자세로 참아내십시오. 마치 목욕탕에서 열탕과 냉탕을 번갈아 경험하듯 인간의 삶에는 오르막길도 있고 내리막길도 있습니다. 오르막길에서 자만에 빠져서는 안 되고, 내리막길에서도 좌절하면 안 됩니다.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는 오름길과 내림길이 실은 같다고 했습니다. 또 그는 우리가 활을 쏠 때 화살을 뒤로 많이 잡아당기면 잡아당길수록 앞으로 멀리 나아간다는 이야기를 합니다. 이 이야기는 소중한 삶의 진리를 담고 있습니다. 화살을 뒤로 조금 잡아당기면 앞으로도 조금밖에는 날아가지 않고, 뒤로 많이 잡아당겨야 앞으로도 멀리 날아간다는 것입니다.

  혹여 지금의 상황이 뜻대로 풀리지 않는 경우에는 앞으로 멀리 날아가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고 생각하십시오. 졸업식을 뜻하는 영어 단어 ‘commencement’가 시작이나 개시의 의미도 갖는다는 것은 되새겨볼 필요가 있습니다.

  졸업은 또 하나의 시작입니다. 이제 다시 시작입니다. 어깨는 활짝 펴고 고개는 한껏 쳐들고는 지축을 박차고 뛰어 나가십시오. 용봉골에서 익히고 체득한 지혜와 안목을 유감없이 발휘하십시오. 사랑스런 그대의 졸업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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