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가 시작되었다. 무등산 산정에서 또 향일암 앞바다에서 한 해가 시작되었음을 알리는 태양이 장엄하게 떠오른다. 별, 달, 구름 ... 뜨고 지는 건 많지만 새 날이 열림을 힘차게 알리는 것은 역시 태양이다. 타오르는 둥근 태양은 우리의 2008년을 환하게 비쳐 줄 것인가?
대선이 끝나고 심상치 않은 분위기가 감도는 지금, 대학이 헤쳐가야 할 길은 어두워지고 있다. 개인이건 대학이건 새 판 속에서 살아남으려고 몸부림치게 될 것이다. 대학은 약육강식의 경쟁에서 이기는 자만이 소유하고 지배한다는 것을 체득한지 오래 되었다. 우선 대학을 이끌어갈 지도자들을 생각해보자. 그동안 정치활동과 학문활동을 분간하지 못하는 총장, 논문 표절로 중도에 하차한 총장 후보, 교수 채용에서 금품 수수로 사퇴한 학장, 자식의 부정 입학을 도모한 입학처장 등이 많았다. 그들은 마지못해 미안하게 생각하는 듯 유감을 표명한다. 시민에게 사죄할 줄 모르고 자신에게 부끄러운 할 줄 모르는 무이념, 탈이념은 대학의 내부 깊숙이 이미 짙은 어둠을 드리우고 있다. 그와 같은 지도자들이 이끄는 대학은 어디로 향해 갈 것인가?
또 다른 어둠이 기다린다. 지배하는 자들에게 가장 성가신 존재는 말을 잘 듣지 않는 집단이다. 그 중에서 대학, 특히 국립대학은 자유가 몸에 베어있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당근과 채찍으로도 통제하기가 아주 어려운 그들을 어떻게 다스릴 것인가? 지배하려면 분리, 분열시킨다. 자발적 복종 혹은 강제적 해체를 통해서 그들을 무력화시킨다. 이를 위해 대학에 무능함을 덧씌우고 대학교수들의 무책임성을 탓한다. 권력자들은 성토한다.
대학은 경제 발전에 도움이 안 된다, 대학교수는 학생 취업에 무능력하다. 대중의 지지를 받는 회오리바람 속에서 비판적 이성과 자유사상은 결국 순치되고 말 것인가? 노자는 말했다. “온갖 지혜들이 쏟아져 나오면서 엄청난 거짓이 자행될 것이다.” 대학의 역사가 말해주듯 거짓된 지혜를 쏟아내는 무리에서 결코 대학인들은 빠지지 않았다. 온갖 재사(才士)와 책사(策士)들이 새로운 판짜기에 골몰한다. 되찾은 권력은 잃어버린 것들을 회수하고 이미 차지한 것들을 더 굳게 지키기 위해 새로운 질서를 부여할 것이다. 기본 원칙은 간단하다. 이긴 자는 강하다. 강한 자는 우수하다. 우수한 자는 부유하다. 부유한 자는 선하다. 여기서 승리, 권력, 탁월성, 재화, 도덕성 등은 뒤섞인다. 이렇게 분별이 없는 사회가 된다면 사회정의, 다원적 평등, 좋은 삶에 대한 우리의 희망은 어떻게 지속될까?
애덤 스미스는 <국부론>에서 “우리가 식사를 할 수 있는 것은 푸줏간, 술집 또는 빵집 주인의 이타심 덕택이 아니라 그들의 이기심 때문인 것이다. 거지 이외에는 아무도 시민의 의타심에만 의존하지 아니 한다”고 하였다.
스미스를 따라 권력자들은 합창한다. 정부는 경제활동에 간섭하지 말고 각자 자신의 이기심에 충실하도록 자유방임하라. 그리하면 하나님의 “보이지 않는 손”이 우리를 돌볼 것인가? 아니다. 권력자들의 보이지 않는 탐욕의 손이 우리의 미래를 장악할 지도 모른다. 영국의 수상이었던 대처는 아주 솔직했다. 사회? 좋아하네. 오직 나만이 있을 뿐이야!
숱한 조직과 기관 중에서 이념이라는 말을 끊임없이 되새기는 곳은 대학 밖에 없다. 대학 이념의 종말은 대학인의 종말을 의미한다. 대학에서 이념을 잊어버린다는 것은 ‘정신이 나간’ 대학인이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지금 세계는 한국사회가 경제를 위해 민주주의를 후퇴시키고 도덕성을 포기한 채 능력만을 내세우는 길로 돌아갈 것인가에 주목하고 있다. 그러나 이미 한국은 위험사회, 기업사회, 학벌사회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허우적거리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렇다면 지금 대학이 마땅히 추구해야 할 가치는 무엇인가? 연구와 수업에 정신없이 바쁜 와중에도 사회 현실을 생각하며 서로에게 묻자. 우리가 몸을 담고 있는 이 대학이란 무엇인가? 우리의 대학은 무엇을 위해 존재해야 하는가? 대학의 구성원으로 우리는 각자의 위치에서 무엇을 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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