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어렸을 적, 증조모님의 댁에 놀러간 기억이 난다. 증조모님 댁은 시외버스를 타고 2시간을 가서도 버스를 타고 1시간을 또 들어가야 하는 ‘깡촌’이었다. 시골 생활에 익숙하지 않았던 나는 여기저기서 보이는 시골 세간들이 마냥 신기할 따름이었다. 그 중에서 내 눈길을 떼지 못하게 한 것은 마당에 놓여있던 ‘펌프’였다. 그것은 코끼리 코처럼 생긴 주둥이(물이 나오는 곳)와 철재로 만들어진 몸통, 뒤쪽에는 긴 손잡이가 달려있는 수동식 펌프였다.

‘끼이잉~ 끽’ 아무리 손잡이를 위 아래로 흔들어 보아도 쇳소리밖엔 나지 않는다. 저만치서 나를 지켜보시던 큰어머니께서 오시더니 옆에 있던 물 한 바가지를 펌프 속에 집어 넣으셨다. 그리고 손잡이를 위 아래로 잡아 당기셨다. “우와~”, 그 펌프의 주둥이에서 시원한 물이 콸콸~~ 솟아 나왔다. 물 한 바가지를 넣었을 뿐인데 이렇게 많은 물이 나오는 것이 너무 신기했다. ‘마중물’, 펌프질을 하기 전 한 바가지 정도 붓는 이 물을 ‘마중물’이라고 한다. 손님이 오면 주인이 마중을 나가 맞이하듯이 품어져 나오는 새물을 맞이한다는 뜻에서 연유한다. 이 마중물이 없다면 땅 아래에 아무리 많은 물이 있어도 새물을 끌어 올릴 수가 없다.

#2. 북한산 자락의 청기와집 주인을 하겠다며 나서는 이들이 있다. 멀쩡한 한강과 낙동강을 이어 붙여 대운하를 건설하겠다는 사람이 있다. 그는 선거법 위반으로 국회의원직을 잃고 아들딸에 운전기사까지 위장 취업시켜 탈세를 했으며, BBK 주가 조작에 개입돼 있다는 의혹까지 받고 있다.

국민들의 간곡한 부탁에도 자신의 뜻을 ‘대쪽’같이 굽히지 않은 사람도 있다. 그는 한 유력한 대통령 후보가 법과 원칙에 걸맞지 않으며 모호한 대북관을 가지고 있다는 것에 문제를 제기하고 이를 대의명분으로 삼아 ‘내가 아니면 안 된다.’는 ‘대쪽’같은 신념과 함께 ‘차떼기’로 은퇴했던 정계에 화려하게 복귀했다.

얼마 되지도 않는 지지율을 무기로 범여권을 통일하고 싶어 하는 이도 있다. 그는 보수 세력에 대항하기 위해서는 ‘단일화’만이 유일한 길이라며 원칙도, 대의도, 명분도 없는 잡당을 만들어 청기와집의 주인이 되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

대선 등록 후보가 12명이나 된다고 한다. 과연 이들 중 청기와집의 주인은 누가될까? 마중물은 새물을 맞이하기 위해 자신을 기꺼이 희생한다. 하지만 서로 주인이 되기 위해 싸우고 있는 대선의 장에서 마중물이 되겠다는 사람은 찾아 볼 수가 없다. 다만 콸콸 쏟아지는 새물의 주인이 되고 싶은 욕심뿐이다. 새로 뽑히는 대통령은 마중물이었으면 좋겠다. 유출된 시험문제 없이도 원하는 학교에 들어갈 수 있고, 일하고 싶은 사람은 누구나가 일할 수 있는, 힘없고 약한 사회적 소수자들에게 기쁨을 품어 내어줄 수 있는 마중물, 그 ‘마중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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