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호남성 북부 동정호(洞庭湖)와 양자강이 만나는 곳에 옛도시 악양이 있다. 바로 이 악양성 서문에 위치한 악양루(岳陽樓)는 무창의 황학루(黃鶴樓), 남창의 등왕각(滕王閣)과 더불어 중국 강남 지역의 3대 명루중의 하나이다. 악양루에 오르면 바다처럼 넓은 동정호가 눈앞에 펼쳐지고, 중국인들이 입버릇처럼 자랑하는 “洞庭天下水, 岳陽天下樓”(동정호는 천하제일의 호수요, 악양루는 천히 제일의 누각이다)라는 말이 더욱 실감나게 된다.
악양루는 원래 삼국시대 吳의 장수 노숙(魯肅)이 수군을 훈련하던 열병대였는데, 당 현종 開元 4년(716)에 中書令 張說이 岳州에 귀양 내려와 누각을 보수해서 이름을 지었다. 唐代의 이백ㆍ두보ㆍ백거이ㆍ맹호연ㆍ유우석 등을 비롯해 중국 역대의 유명한 문인들이 모두 여기에 올라 저마다 아름다운 시문들을 남겼는데, 그 중 가장 유명한 유람시로 두보의 「登岳陽樓」, 산문으로 범중엄(范仲淹)의 「岳陽樓記」를 들 수 있다.
북송의 유명한 정치개혁가이자 문장가인 범중엄은 성품이 청렴결백한 애국충절자이다. 그는 1045년 악양루를 개수할 때 지은 「악양루기」에서 위정자가 마땅히 지켜야할 도리를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즉 “옛날의 仁者들은 지위나 명예를 기뻐하거나 신세를 비관하지 않았다. 조정의 높은 자리에 있으면 오로지 백성들의 노고를 근심하고, 강호의 먼 곳에 있으면 오로지 임금의 과실을 근심한다. 이는 벼슬에 나아가도 근심이요 물러나도 근심이니, 그들에게 언제나 즐거워 할 수 있느냐고 묻는다면, 반드시 ‘천하의 근심을 앞서서 근심하고, 천하의 즐거움을 뒤로 하여 (나중에) 즐거워할 것인저?’(先天下之憂而憂, 後天下之樂而樂)라고 대답할 것이다.”
이처럼 모름지기 위정자란 천하의 모든 백성들이 근심하기 전에 먼저 근심함으로써 백성들의 근심과 걱정을 덜어주고, 천하의 모든 백성들이 즐거움을 다 누린 다음에야 비로소 자신의 즐거움을 찾아야 하는 법이다. 하지만 요즘 12월 대선을 앞두고 우리 주변에서 열심이 표밭을 다지고 있는 대권 주자들과 그들을 추종하는 정치인들의 행태를 보면 그들에게 과연 ‘先憂後樂’의 마음가짐이 있는가 싶다. 모두가 장밋빛 공약만을 내세워 천하를 위한 진정한 근심보다는 인기에 영합하는 눈앞의 즐거움에만 호소하고 있으니, 오히려 국민들이 먼저 나랏일을 걱정하는 모습이다.
공자는 “군자는 자긍심을 갖되 남과 다투지 아니하고, 남과 함께 처하되 편당(偏黨)짓지 않는다."(君子矜而不爭,群而不黨. 『논어ㆍ위영공』)고 했다. ‘黨’이란 “서로 도와 잘못을 숨겨주는 것”(相助匿非曰黨.『論語ㆍ述而』註)”이라고 했듯이, 정치판의 정당들은 여야를 막론하고 모두 이러한 “당”의 폐단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정치권은 차치하고 우리 대학은 어떤가? 과거 군사독재시절에 쟁취하여 민주화의 상징으로 거론되던 대학의 총학장 직선제는 이십년이 지난 지금 그 의미가 크게 퇴색되었고, 부끄럽게도 대학의 지성들은 더 이상 직선제를 주장할 수 없게 되었다. 대학법인화 실시를 앞두고 마지막으로 치러질 내년 총장선거에 어쩔 수 없이 최선의 후보자를 선택해야 하겠지만, 학장선거만이라도 우리 대학 구성원들이 학자적인 양심과 지혜를 모아 간선제나 임용제를 선택하기를 바란다면, 이는 너무 현실을 무시하는 소치일까? 12월 대선과 내년 대학의 총학장 선거를 앞둔 지금, 눈앞에 자꾸만 ‘先憂後樂’과 ‘君子不黨’이라는 말이 떠오르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저작권자 © 전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