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뭇잎이 색을 바꾸어 가면 올해의 나이도 시나브로 채워지다가, 12월 31일이 꼴까닥 넘어가면 드디어 한 살을 더 먹게 된다. 나이가 들어선지 계절의 변화와 해넒기기에 민감해지는구나. 불확실한 장래를 견디고 지금도 어려운 전공과 씨름하고 있을 자랑스러운 제자에게 몇가지를 적는다.
학부 때 충분히 준비하지 못해서 아마도 대학원 공부가 벅찰 것이다. 그러나 너무 난감해하지 말아라. 조급해하지 말고 간단한 것부터 차근차근 알아 가면 된다. 공부를 하려면 우선 호기심으로 가득차야 하고, 작은 사항도 간과하지 않는 꼼꼼함을 길러야 한다. 사소한 내용도 정확히 알고 있어야 진짜 중요한 것을 심도있게 파악할 수 있단다. 그리고 옆사람과 비교하지 말아라. 열등감에 싸이거나 교만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동급생들은 경쟁자가 아니라 외로운 학업의 동반자이다. 혼자서 여러 면을 잘할 수 없으므로 그들과 협력해야할 경우가 많단다. 학문의 깊이와 다양성 중에 우선은 깊이를 택하거라. 젊은 시절에는 좁지만 깊은 공부를 잘하고 난 뒤, 나이 들면서 영역을 넓혀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몇 개월간 공부를 열심히 했다고 해서 당장의 효과를 바라지 말아라. 학문은 바닷가의 퇴적암층과 같이 오래오래 쌓여서 드러나므로, 꾸준히 정성을 다하여 실력을 연마해간 한~참(십수년)후에서야 비로소 미미한, 그러나 서서히 찬란해지는, 보상을 받게 되는 것이란다.
학업보다 더 중요한 것은 평생을 함께할 배우자를 잘 만나는 것이다. 공부만 하다가 이성을 사랑할 기회나 시기를 놓치지 말아라. 내가 보기에 세상에서 가장 즐거운 일은 바로 연애이다. 떨리고 설레이며 안타깝고 쓸쓸하고 그리우며 뭉클하고 야속하고 달콤하며 뿌듯하고...... 자신의 이상형에 가까운 사람을 만나려고 노력하고, 그와의 사랑을 조심스럽게 싹티우고 신뢰를 가꿔나가며 조화로운 커플이 되어가는 과정이야말로 삶의 진실 하나를 향유하는 것일게다.
상대를 만날 때는 눈에 보이는 면과 눈에 보이지 않는 면을 보아야 한다. 어려운 말이지만 인격적 성숙도를 파악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상대를 평가만 하지 말고 자신의 매력과 인격을 향상시키는 일에도 게으르지 말거라. 일단 그에게 호감이 가고, 어느 정도 만난 뒤, 판단을 하여 확신이 서면, 공부를 얼마동안 포기하더라도 과감하게 그 사람에게 다가가라. 상처받을 것이 두려워 주저하다가는 때를 놓치거나 사람이 떠난다. 매사가 그렇지만 특히 사랑은 ‘조심스럽게 그러나 용기있게’ 임해야 한단다. 정열적으로 휘몰아치면서. 하지만 좋아하는 마음만으로 성공할 수는 없다. 테크닉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자신의 감정과 의사를 부드러우면서도 솔직하게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
많은 이야기를 피상적으로 늘어 놨구나. 위에서 말한 공부와 연애를 제대로 실천하기란 상당히 어렵겠지. 그래도 무엇이 중요한지와 어떤 방향으로 갈 것인지를 알고 노력하는게 더 낫지 않겠니? 사실 나도 이것들을 잘 못했기 때문에 더더욱 너에게 당부하는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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