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그리고싶어 교사 그만두고 대만으로, 상해로… 

그림을 그리는 게 좋아 평생직장이라는 교사를 그만두고 대만으로 향했다. 살아가는 게 힘들어 후회도 해보고 그림과 이별도 해봤다. 하지만 어느새 그림을 그리는 일은 그의 삶의 목적이 되었다. “나는 그림을 그리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라고 거침없이 말하는 임소연 동문은 오늘도 삶을 위해 그림을 그린다.

순수했던 시기, 교사생활을 하다

5·18에 대한 항의가 가장 빗발치던 시기인 82년, 임소연 동문은 우리 대학 미술교육과에 입학했다. 당시 우리 대학에 미술과 관련된 학과는 미술교육과 뿐이었다. 유화를 전공했던 임소연 동문은 중국 수묵화에도 관심을 가지고 있어서 중국어를 배우기도 했다. 또 데모가 끊이지 않던 시절, 데모에 참여하기도 하면서 대학시절을 보냈다.
졸업 후 스물 다섯 살, 가장 순수했던 시기에 그는 신안군 압해도에 있는 압해중학교로 첫 발령을 받아 교사로서 첫발을 내딛은 후 2년 동안 학생들에게 잘 해야겠다는 각오를 가지고 열정적으로 가르쳤다. 임 동문은 “처음 담임이 됐을 때 60명의 학생들의 반짝이는 눈을 보니까 마치 ‘너 자격 있어?’라고 물어보는 것 같았다”며 “때로는 매를 휘두르기도 하고 함께 어울리면서 즐겁게 지냈다”고 회상했다.

수묵화를 배우기 위해 대만으로
교사가 된 후에도 수묵화와 서예를 배우면서 그림에 대한 끈을 이어가던 임소연 동문은 계속 그림을 그리기 위해 교사로서의 길을 그만두기로 결심한다. 그렇게 임 동문은 눈물을 흘리시던 어머니를 뒤로 하고 1989년 수묵화를 배우기 위해 대만으로 떠났다. 대학교에 다시 입학해 수묵화를 배우려고 했던 그는 주변 사람들의 만류로 바로 대학원에 진학하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유화를 전공한 임소연 동문이 수묵화로 대학원에 합격하기란 쉽지 않았고 세 번의 고배를 마셨다. 임 동문에게 대만에서의 생활은 모든 게 새로운 시작이었고 동시에 고생의 연속이었다. “이것도 해보고 저것도 해보다가 그림만 잘 그린다고 되는 게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는 그는 결혼을 했고 ‘다시 그림을 그리면 사람의 자식이 아니다’라고 독하게 마음을 먹고 그림을 접었다. 그러던 중 그의 남편이 시험을 보라고 권유를 했고 결국 다시 그림을 그려 결국 유화로 시험에 합격한 임 동문은 아이들을 데리고 대학원에 다니면서 여러 미술계에 있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고 6년 만에 졸업을 했다. 대학원을 졸업한 후 1년 동안 작업실을 얻어 그림을 그리던 그는 아무리 해도 작품이 잘 나오지 않자 다시 한 번 그림을 그만 두려고 했다. 그 때 대만에서 발생한 심각한 사건은 임 동문이 그림을 그리기로 마음을 먹는 전환점이 됐고 14년간의 대만 생활을 접고 2003년 남편과 함께 상해로 건너가는 계기가 됐다.

그림은 메시지를 전달하는 창구
상해로 온 임소연 동문은 사건을 통해 깨달은 것들을 바탕으로 그림을 그렸고 지난 해 두 번째 전시회를 열었다. “그림은 정신적인 활동이지 자기 묘사력을 자랑하는 것이 아니다”는 임 동문은 사실적인 묘사를 필요로 하는 부분들을 제거하고 감정을 투입시켜 사람들이 잘못 생각하고 있는 부분들, 잃어가는 것들에 대해 쉽게 전달하고 싶어서 간단한 형태로 그림을 그렸다. 그러나 전시회에 온 사람들이 그의 그림을 잘 이해하지 못해 충격을 받았다.
그는 “예술은 생활 속에서 나오기 때문에 예술과 삶이 연결되지 않는 것은 있을 수 없다”며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그림을 삶과 연결시켜서 바라보지 않는 것에 대해 안타까워했다. “그림을 가지고 사람들에게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다면 성공이라고 생각한다”는 임 동문은 “그림을 즐기는 사람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고 바람을 전했다.
최근 임 동문은 현대인의 자화상을 주제로 새로운 그림을 그리기 시작해 어떻게 하면 좋은 그림을 그릴 수 있을지 고민 중이다.
하고 싶은 일, 잘 할 수 있는 일을 하면서 살고 싶어하는 사람은 많지만 실제로 그런 삶을 사는 사람들은 드물다. 특히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해서 성공하기에 미술 분야는 인정받기 전까지 경제적인 보장이 전혀 없이 스스로 해야하는 것이기 때문에 더 힘들다. 임소연 동문도 지금까지 그림을 그려오기까지 남 보기 좋은 모양새가 나오지 않을까봐 걱정하는 두려움, 수입에 대한 두려움과 같은 장애물들이 있었지만 뛰어넘었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위해서는 죽어도 좋다, 바닥에서라도 자겠다’라는 강한 의지가 있었기에.
“나처럼 살라고 말하고 싶다”는 임소연 동문은 “자리를 잡기 위해 노력한 나머지 표준에 잡혀서 자기 인생을 못사는 사람들을 보면 공허함을 느끼면서 살아가는 것 같아서 안타깝다”고 말한다. 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아무것도 생각하지 말고 할 것. 이것이 임 동문이 후배들에게 가장 해주고 싶은 말이다. 바로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이유 하나로 대만과 상해라는 외진 곳에서 계속 그림을 그리다보니 소개해주겠다는 사람들도 생겨나고 있고 길이 생긴다는 임소연 동문의 삶에서 나온 조언이다. 임 동문은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제대로 준비해두면 기회는 언제든지 온다”며 “그렇게 해서 성공할 수 있다는 걸 내가 보여줄 것”이라고 각오를 드러냈다.
마지막으로 임소연 동문은 “괴롭지 않고 얻을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며 “힘들더라도 참고 성공하는 사람들을 보면 비꼬지 말고 존경해줘야 한다”고 당부했다.
상하이 = 국 화 기자 cookka@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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