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흥 청도 총영사관 총영사(영문․76학번)

유신 말기에 대학을 다닌 김선흥 동문은 데모로 학창시절을 보냈다. 당시 신문을 보면 지명 수배자나 데모 주동자로 자신의 얼굴을 볼 수 있을 것이라며 과거를 회상한다. 전남대 영문과를 졸업한 뒤 서강대 대학원을 나오고 뒤늦은 나이에 군대를 가게 됐다. 마음을 정리하고 군 입대를 위해 떠났는데, 척추이상으로 귀향조치를 받고 1년을 기다리라는 통보를 받게 된다. 군대를 가기 위해서 머리도 깎았고 수중에는 돈도 한 푼 없어 1년 동안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른 채로 고향으로 내려갔다. 마음을 추스르고 화순 유마사라는 절에 들어가게 된 김선흥 동문은 대학시절의 추상적이었던 생각들을 정리하고 외교관을 준비하기로 결심한다. 1차 시험을 합격하고 화순군청으로 영장이 나오면서 규칙적인 생활 속에서 공부할 수 있는 시간을 더욱 많이 갖게 되었다. ‘대학의 차이에 대한 생각 없이 탈락하면 내가 공부를 못해서 떨어진 것이지 전대생이기에 탈락하는 것은 아니다’는 마음으로 시험에 임했고 그 결과 전남대인 최초로 외무고시에 합격하게 됐다.
김선흥 동문은 샌프란시코에서의 외교관 생활 중에 일어난 에피소드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샌프란시스코에서 외교관 생활을 하던 무렵, 김대중 대통령 재임시절 이희호 여사가 샌프란시코 방문 계획을 알려왔다. 영부인이 오면 샌프란시스코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에 위치한 곳에서 식사 대접을 하는 전례에 따라 김선흥 선배도 이에 맞춰 준비를 하게 되었다. 예약이 모두 완료되고 만찬 장소에 대한 의견을 한국에 보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이에 대한 아무런 응답이 없었고 이희호 여사가 방문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희호 여사는 대사관 측에서 준비한 장소가 아닌 산왕반점이라는 곳에서 식사를 하겠다고 했다. 산왕반점은 매우 허술한 자장면 집이었다. 장소에 대해 응답이 없었던 것은 자장면 집에서 식사를 한다고 말하면 분명 대사관 측에서 이런 저런 말들이 많고 만류했을 테니 식사 장소에 대한 통보 없이 방문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이희호 여사는 왜 이곳에서 식사를 하려고 했을까? 사연인 즉 김대중 씨의 망명시절 이곳 자장면 집의 주인은 김대중 씨의 사정을 알고 밥값을 받지 않고 식사대접을 했으며 차비까지 챙겨줬다는 것이다. 세월이 흘러 김대중 씨가 대통령이 되고 이에 대한 보은을 하기 위해 이희호 여사가 대통령인 남편을 대신해서 왔던 것이었다. 대단한 에피소드라면서 귀를 기울이고 있는 취재원에게 김선흥 선배는 매우 많은 에피소드들 중 겨우 한 개라면서 웃음을 짓는다.
저녁식사를 하며 김선흥 동문은 중국에 대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중국인들은 먹는 것을 좋아하는데 먹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평화를 추구하고, 정의와 진리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전쟁을 추구 한다는 것이 선배님의 생각이었다. 또한 한국 사람들이 빼기를 좋아하고 배타성을 많이 지니고 있는 반면 중국 사람들은 더하기를 좋아하고 포용적이라면서 중국 사람들에게 배울 점들이 정말 많다는 말을 하셨다. 지난 외교관 생활 중 중국에서의 생활이 가장 마음에 드느냐는 취재원의 질문에 “미국에 있었을 때는 그때가 가장 즐거웠고, 일본에 있었을 때는 그 때가 또 가장 즐거웠다. 마찬가지로 지금 나는 중국에 있고, 이때가 가장 즐겁다”고 말했다. “내가 즐기면 내 것, 행복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주위에서 찾아야 한다”며 웃음을 짓는 선배님의 모습 앞에 어느새 고개가 살며시 숙여졌다.
‘세계인이 되어라’ 라는 화두는 요즘 청년들은 누구나 꿈꾸는 목표이다. 세계로 시야를 넓히고 세계무대로 뛰어나가는 것이다. 그런데 김선흥 선배는 묻는다. 지역공동체, 광주에 발을 붙이고 살면서 어떻게 세계인이 될 것인가? 김선흥 선배님은 학생들에게 glocalite를 제안한다. 세계인과 지역인의 합성어로서 제안한 glocalite는 매우 지역적인 색깔을 가지면서도 세계와 소통할 수 있는 사람을 가리킨다. 그러면서 예로 든 것이 바로 허백련 씨와 복분자이다. 허백련 씨는 무등산 산자락에서 오랜 세월 있었지만 허백련 씨의 그림은 세계를 오고 갔고 수많은 세계인들이 무등산을 찾았다. 복분자는 지극히 지역적인 술이지만 와인의 본 고장 프랑스에서 호평을 받고 세계인의 입맛을 사로잡고 있다. 이처럼 지역과 어울리고 화합하면서 세계로 열려있고 나아갈 수 있는 사람이 되라는 것이 김선흥 선배가 우리에게 제안하는 모습이다.
중국 칭다오=정찬엽 기자
cub39@hanmail.net

광주일고 졸업
전남대학교 영어영문과 76학번
서강대학교 대학원 졸업
80년 14회 외무고시 합격
20여 년간 세계 각 국에서 외교관 활동을 함.
2006년 주 칭다오 총 영사관 총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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