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로스쿨(Law-school)이라고 부르는 법학전문대학원이 2009년 3월 1일부터 개원하게 된다. 로스쿨은 종래의 법과대학과 사법시험에 의하여 구성된 현재의 대한민국 법률가가 ‘비민주적’이고 ‘무능력’하다는 다수 국민의 인식과 비판에 따라서 제도화에 이른 것이고 ‘민주적’이고 ‘유능’한 법률가를 목적으로 하는 것이다. 나는 오늘 ‘민주적’인 법률가상에 대하여 다시 생각해 보고싶다.

국민들이 오늘날 대한민국의 법률가가 ‘비민주적’이라고 여기는 이유는 변호사·검사·판사를 중심으로 한 법률가들이 업무과정에서 보여주는 모습이 국민들과 눈높이가 맞지 않고 정감 있는 이웃사람으로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판사(10년)·변호사(9년)·법학교수(7년)로 다양한 입장에서 법률가를 직접 경험해 왔는데, 법률가가 ‘비민주적’이라는 일반 국민들의 인식에 대하여 일부 동의하고 일부 부동의한다.

예컨대 나는 법관의 업무수행을 95%는 신뢰하지만 나머지 5%의 불신 때문에 결론은 ‘70% 불신’이라고 말하고 싶다. 즉 내가 변호사로서나 분쟁 당사자의 친구로서 재판을 지켜볼 때, 대부분의 사건은 제대로 처리된다고 믿는다. 그러나 애매하고 어려운 사건이라면, 나는 제대로 처리될 지에 대하여 매우 걱정한다. 친구가 쉬운 사건을 문의해 오면 ‘걱정말라’고 말한다. 그러나 만약 여러운 사건이라면, 변호사 추천부터 사양하게 되고, 재판결과에 대하여도 예측해 주지 못한다.

한편 우리나라 일반 대중들은 법률가의 직무에 대한 편견도 많은 듯하다. 법률가의 직업이란 본질적으로 ‘잘 해야 본전’ 격이다. 내가 보기에, 법률가의 직무는 변호사이든, 판사이든, 그리고 아마도 검사이든 간에 마치 교수의 직무처럼 완벽이 불가능한 무한량의 노력을 요하는 성질이 있다. 만약 ‘사무처리에 있어서 나에게 잘못이 전혀 없다’라고 자부하는 법률가가 있다면, 그는 자신의 직무를 잘못 이해하고 있다고 본다.

내 경험에 의하면, 판사로서든 변호사로서든 내가 마친 일에 대하여 항상 미흡함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 그러므로 법률가의 업무에는 언제나 허점이나 실수는 있게 마련이라고 믿는다. 우스운 이야기이지만 앞으로 법률가 상대로 한 손해배상사건의 전문변호사는 아마도 성업하리라 예측해 본다. 법률가들로부터는 공포의 대상이 될 것이다.

사건 당사자는 사법(司法) 과정에서 상대방 본인에게 적의를 드러내는 일은 생각보다 드물다. 왜냐하면 법정에 오는 과정에서 이미 싸울만큼 싸웠고 미움을 키울만큼 키우다가 거의 체념의 단계에 이른 것이 보통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수사관이 상대방 편을 드는 것 같아서 밉고, 오판하는 판사가 밉고, 상대방을 위하여 거짓말을 서슴지 않아 보이는 상대방 측 변호사가 더 밉다. 심지어는 자신이 의뢰한 자기 측 변호사가 미운 경우도 많다. 이들 수사관, 판사, 변호사가 바로 법률가들이다.

여기에서 보듯이 사법(司法) 과정을 경험해 본 일반 대중들로서는 숙명적으로 법률가들이란 미덥지 않는 사람들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사법개혁이 논의될 때 법률가를 옹호하는 사람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일반 대중이 표출하는 사법불신은 사실(fact)보다는 분명 과장되어 있다. 다시 말해서 법률가의 직업이란 본질적으로 ‘잘 해야 본전’ 격이다.

참여정부 초기에 그 유명한 ‘대통령과 검사의 대화’가 TV생중계로 실시된 적이 있었는데, 그 때 어느 검사가 자신들은 밤샘근무가 다반사라고 말했지만, 그 말에 귀기울이는 일반 대중은 없어 보였다. 그 검사의 말은 내가 아는 한 분명 진실하다. 그러나 나는 일반 대중에게 검사의 얘기에 귀기울여야 한다고 말하기보다는 검사에게 일반대중의 불신을 직시하라고 말하고 싶다. 현재의 법학도와 장래 로스쿨의 예비법조인에게도 해주고 싶은 말이다. 법률가에 대한 일반 대중의 인상은 실제로 존재하는 법률가의 실상과 다소 거리가 있기 마련이다.

그러나 사법(司法)의 사명은 ‘실제로 적정공평한 사무처리’를 하는 것에도 있지만 그에 못지 않게 사법(司法)에 접하는 일반 대중으로부터 ‘적정공평한 사무처리를 한다는 신뢰’를 이끌어내는 것에도 있으며, 로스쿨로 상징되는 사법개혁을 외치는 우리나라 국민들은 후자의 부족에 목말라하고 있는 것이다. 로스쿨을 염두에 두고 있는 젊은이들은 ‘국민과 눈높이를 같이하는 정겨운 이웃’이라는 자기확인을 습관화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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