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대학교가 낳고, 무등산이 기른 용봉인의 아들 이현조. 그 빛나던 별은 2007년 5월 16일 새벽 2시경에 다시는 돌아 올 수 없는 먼 길로 사라졌다.

이현조는 한국 최초 에베레스트등반 성공 30주년을 기념하는 “한국 에베레스트 남서벽 신루트 개척 등반대”에 선발되어, 본 등반과정 중 가장 난코스인 Camp4를 오희준 대원과 한조가 되어 천신만고 끝에 설치하였다.

C4는 까치집이라 불린다. 직벽 3000여m 주변에 텐트 한 동을 겨우 칠 수 있는 공간. 그동안 여러 차례 시도했지만 매번 실패했던 C4. 정상 공격 전에 1박을 하는 곳이며 보급물품들을 보관하는 정상등정 전진기지. 이번 등반의 성공도 C4의 설치 여부에 달려 있었다. 두 대원은 이 C4를 성공적으로 설치했다. 그러나 함박눈이 내리는 새벽 2~3시경 박영석 원정대장과 교신하던 중 눈사태에 휩쓸려 7800m 지점에서 1400여m나 추락하여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천상의 세상으로 가버렸다.

사고가 난 5월 16일은 이현조에게 특별한 날이었다. 작년에 전남대학교 산악인들로만 구성한 “2006년 전남대학교 초모랑마(에베레스트 : 8848m) 원정대”가 정상등정에 성공한 날이자, 본인이 이 등반대에 참가하여 정상에 등정한 바로 그날이었다.

이현조는 1992년 전남대학교 불문과에 입학했고, 그해 산악회에 입회하여 산과 인연을 맺게 된다. 주요 등반으로는 1999년 9월 네팔 마칼루(8,463m) 등반, 2000년 5월 마칼루 등정, 동년 7월 파키스탄 브로드피크(8,027m) 등정, 동년 10월 네팔 시샤팡마(8,027m) 등정, 2003년 2월 북극점(90˚N) 원정, 2004년 1월 남극점(90˚S) 도달, 2005년 7월 파키스탄 낭가파르밧(8,125m) 루팔벽 등정, 2006년 5월 16일 티벳 초모랑마(8,848m) 등정을 꼽을 수 있다.

이현조는 미담의 주인공이었다. 시샤팡마 남서벽을 등정하고 하산하던 중, 그는 불의의 사고로 지옥 같은 크레바스에 추락하게 되었고, 이 삶과 죽음의 질곡에서 불굴의 용봉인 정신으로 탈출하는 데 성공하였다. 그런데 동행했던 선배대원이 저 먼 산위에서 탈진하여 의식을 잃고 쓰러져있는 것을 발견했다. 탈진한 몸을 이끌고 그는 선배를 구출하러 갔고, 기적같이 베이스캠프까지 생환하여 돌아왔다.

 

그의 미담은 오랫동안 장안의 화제가 되었고, 생사를 함께하는 산사나이의 모범이 되었다. 그는 또한 세계적인 등반가였다. 2005년 7월, 인간을 거부한다는 파키스탄 낭가파르밧(8,125m) 루팔 벽(4800m 직벽)을 정상 등정하여 세계인을 놀라게 하였으며, 이로 인해 세계적 슈퍼스타로 인정받는 등반가가 되었다. 이러한 혁혁한 공으로 ‘2006년 대한민국 산악상’, ‘고산등반 상’ 등 수많은 상을 수상하였다.

인간적이고 세계적인 등산가 이현조는 비록 시기심 많은 히말라야의 백설공주(눈사태)와 영원히 결혼했지만, 우리에게 남기고간 불굴의 정신과 순수한 인도주의는 모든 이의 마음속에 영원히 남을 것이다. 이러한 정신을 후배들에게 남기기 위하여 추모사업을 제안하면서 이 글을 맺는다.


이 계 윤
체육교육과 교수
2006전남대초모랑마원정대 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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