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에 산 지 2년 반이나 됐다. 일본에서 한류가 아직 계속 되고 있다는 것은 우리 어머니의 전화로 잘 알고 있다. 요즘 어머니와의 통화는 이런 식으로 있었다.
 

“이번에 ‘욘사마’의 드라마가 시작한다면서. 근데 친구가 ‘욘사마’ 만날 수 있는 행사를 찾고 있는데 좀 알아봐 줄래?”
 

“엄마 싫어요. 정말로 그런 부탁 하지 말아요.”
 

“네가 한국에 있으니까 친구들이 여러 가지 부탁을 하는 거야. 네가 해주니까 선물을 가지고 오시는 거야. 그러면 엄마도 거절할 수 없잖아.”
 

유학생활의 어려움을 상상도 할 수 없는 나의 어머니는 웃으면서 어물어물 넘기고 어떻게든 딸에게 이 일을 억지로 떠맡기려고 하는 것이 분명했다.
 

이전에는 어머니 친구분이 ‘욘사마’에게 보내는 러브레터의 번역을 떠맡았다. ‘○○ 사랑해요. 다시 한번 만나고 싶어요’그런 열광적인 러브 레터를 보았을 때 ‘일본의 아줌마들은 제정신인 것일까’라고 생각하면서 이후의 한·일 관계에 대해 조금 생각해 보았다.
 

2002년의 한·일 월드컵 공동 개최, 겨울연가의 궤도에 올라 일본에서 일어난 한류 붐은 확실히 한국의 문화나 언어에 대한 흥미를 가지는 일본인이 늘어나 한국 여행자수 증가에 큰 영향을 준 것은 확실하다. 일본 내에서도 ‘욘사마’의 ‘좋아해요 키시리토르’ 나 장동건의 ‘당신이 좋아하기 때문에’라는 CF는 지금 친숙한 CF가 되었다. 한편 2000년도의 일본 문화의 개방은 이전보다 많은 일본 영화나 음악 등의 일본 문화를 한국에 가져왔을 것이다. 그러나 그 관심은 ‘즐거운 것’, ‘재미있는 것’이라는 외형만을 가지는 레벨로 끝나고 근저에 있는 문제에는 아직 도달하지 못했다. 현재의 자본주의 사회 속에서 인간의 감정까지도 상업화되면서 사람들은 진실을 보는 눈을 잃어버리고 있는 이 현상을 우리는 다시 한번 생각 해 볼 필요성이 있다.

 
실제로 광주에 살면서 느낀 한국은 많은 식민지 시대의 유산이 남아 있었다. 노인들의 유창한 일본어, 일본에 대한 혐오감, 그리고 일본식의 건물 등을 보고 느끼면서 요즘 나오는 한일 교류라는 말은 아주 멋있는 말이지만 실제는 ‘made in korea는 좋아하지만 한국은 싫다(관심이 없다)’라는 차원에서 아직 멈춰 있다고 느꼈다. 이러한 것들은 한국에서는 어떨까? 일본의 애니메이션, 음악, 영화에 흥미를 가지는 젊은 세대들 시선 앞에 있는 것도 ‘made in japan는 좋아하지만 일본은 싫다(관심이 없다)’인 것일까?
 

한국에 사는 일본인 유학생은 일본인의 입장도 아니고 한국인의 입장도 아니다. 그런 나에게 있어서 슬픔의 눈물이 아직 마르지 않은 사람들이 사는 한국에 와서 즐거움만을 원하는 일본여행객의 모습에서 실은 복잡한 마음이 생긴다. 시간의 흐름은 막걸리와 같다. 시간이 지나면 바닥에 침전물이 쌓인다. 막걸리를 흔들지 않고 마시면 본래의 맛을 알 수 가 없다. 막걸리를 잘 섞어서 마셔야 진짜 막걸리의 맛이 나며 흐린 막걸리색이 난다. 한·일 양국의 밑바닥에 쌓여 있는 침전물을 모두 혼합해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날이 오지 않으면 진짜 한일 우호의 맛을 우리는 알 수가 없는 것이 아닐까.

쯔네야마 토모요(사회학 석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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