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산과 들이 연녹색으로 새롭게 치장을 할 이맘 때 쯤 이면, 나는 뭔지 모를 희망인지, 새로움에 대한 설레임 때문인지, 맘이 잡히지 않고 초조해진다. 그저 멍하니 정신을 놓지만 가슴속 저 밑바닥에서 뜨거운 무엇이 끓어올라 나를 옭아맨다. 그러면 심한 몸살을 앓은 것처럼 온 몸에 힘이 빠지면서 아무 것도 할 수가 없다. 어딘가로 떠나야한다는 의무감에 가슴이 답답해지면서 뛰쳐나가고만 싶어진다. 이 계절이 주는 축복이자 저주인 것이다. 그러나 나의 방황은 항상 목적지가 없는 그‘어딘가??였다. 그 어딘가에 그 무엇을 하러 가야하니 얼마나 황당하고 막막한 일이겠는가.
 

다행스럽게도 올 봄에는 미국의 거장 존 스타인벡의‘찰리와 함께한 여행(Travels with charley in search of America)’이라는 책에서 신선한 목적을 발견했다. 제목만 접했을 때는 아름다운 경치를 찾아 사람들로 북적대는 관광지들로나 도배된 ‘여행기’같지만, 저자는 병들고 나이 들어 미국이란 거대한 나라가 어떤 나라인가를 발견해 보리라고 마음먹고, 참된 미국의 언어를 듣고, 풀과 나무와 시궁창의 진짜 냄새, 또 산과 물, 일광의 빛깔을 보고자 58세에 중병을 치르고 난 뒤, 차를 타고 책 사이사이 볼 수 있는 그 끔찍한 고독을 이겨내며 미국을 찾겠다고 그의 개 charley를 데리고 길을 나선다.

 

당시 유명작가였던 그는 미국의 변화를 책이나 신문을 통해서만 알았다며,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해 쓴 것에 죄책감을 느끼며 변화를 직접 몸으로 느끼겠다고 했다. 아마 나였으면 그 나이에 몸 생각해서 그냥 눌러앉아 편안함만을 갈구했을 것이다.
 

지금까지 여행은 그저 고단한 현실에서의 도피쯤으로만 생각해온 나로서는 거장의 무게에 다시 한 번 고개를 숙이게 되었다. 이 나라에 살면서 단 한 번도 우리의 것을 돌아보려 하지 않았으며 우리의 문화, 우리강산, 우리말에 관심을 가져보지 않았다. 영어를 배우면서도 영어 자체에만 신경을 썼지 그 아래 더욱 더 탄탄하게 자리 잡고 있어야 할 우리말에 노력을 기울여 본 적은 없다.

 

“영어만 잘하고 국어는 못하면 그게 외국 사람이지 우리나라 사람이냐?”라는 어느 교수님의 말씀에 가슴이 뜨끔한 적이 있었다. 남의 것을 동경만 하고 부러워만 했지 내 것에 대한 소중함을 느껴보지는 못했다. 말로만 아름다운 우리 강산, 자랑스러운 한글이라고 했지 내가 모르는 우리 말과 우리 나라의 시골길은 얼마나 많을까? 눈길 한번 받아보지 못한 돌멩이, 풀뿌리는 또 얼마나 많을까?
 

열정과 패기 못지않게 존 스타인벡은 매우 인간적인 사람이었다. 소소한 사람들과의 만남과 미국을 이루는 작은 사물들을 아주 소중하게 여겼고 그게‘미국적’인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지혜’라고 하는 것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살아가는데 있어서 매우 중요한 것을 만들어 낸다. 지혜에서 결단력을 유도하는 힘이 나오고, 그러한 힘에서 우리가 세울 ‘목표’가 나온다. 뭔가를 하겠다는 목표에서 앞으로 밀고 나갈 정신에너지가 만들어지고, 그 목표가 사람을 끌어당기는 힘이 되어 진보한다.

 

삶이 무르익은 위대한 작가의 ‘지혜’와 ‘목표’에서 나의 소박한 목적이 생겼다. 작은 것으로부터 큰 것을 끌어낼 수 있는 힘을 배웠으니, 이제는 방황에서 벗어나 나의 주위부터 돌아봐야겠다. 늘 함께였지만 무심코 지나친 작고 사소한 것들을 돌아봄으로써 그 속의 우리의 것을 볼 수 있는 ‘지혜’를 쌓을 수 있길 바란다. 라디오에서 나오는 광고방송에서 우리나라 사람들이 세종대왕의 이름을 거의 모른다고 한다. 거기에 귀를 기울임으로 작은 실천을 시작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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