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물이 무너져 몇 십 명이 죽었다는 신문 보도에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단지 몇 십 명이 죽었다는 사실 뿐이다. 죽은 남자가 어떤 일을 했는지, 죽은 여자가 어떤 취향의 향수를 좋아했는지, 죽은 아이가 어떤 색의 옷을 좋아했는지는 전혀 알 수 없는 사실이다’
 

영화감독 ‘장 릭 고다르’가 어떤 책에서 이와 같은 의미의 말을 한 적이 있다. 그때 나는 작은 충격을 받았고 한동안 이 말을 종이에 적어놓고 간직하고 다녔었다.
 

지금 문득 이 말이 생각나는 것은 나 자신 때문이다. 지난 주 강원도 횡성군에서 병사 두 명이 사고로 숨진 사건이 있었다. 뉴스에서 그날 사고를 접하고 사람 두 명이 죽는 것은 큰 일이 아닌 냥 지나쳐 버렸다. 하지만 다음 날 죽은 병사 중 한 명이 나와 인연이 닿았던 사람임을 알고 큰 충격에 휩싸였다.
 

그 충격은 나를 더 깊은 고민 속으로 끌고 갔다. 지인임을 알기 전의 나의 모습과 후의 모습이 대치되면서 지금까지 나는 얼마만큼 죽어간 이들을 그냥 지나쳤을까 하고 말이다. 세상의 모든 죽음을 지인의 죽음처럼 받아들인다면 그것도 괴롭겠지만, 조금이라도 그런 마음이 있다면 세상일에 무관심은 없을 것이다.
 

‘요즘 아이들은 타인이나 사회에 관심이 없다’라는 말 또한 곰곰히 생각해 보면 대상을 마음으로 보지 않기 때문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진정으로 내 마음 속에 받아들여지는 것이 아닌 신문 속의 죽은 이의 수처럼 객관적인 눈으로만 보기 때문이다. 퀴즈에서 FTA의 긍정적, 부정적 효과는 똑똑히 말하지만, 진정으로 농민들이 외치는 소리에는 공감할 수 없는 것도 이런 이유일 테이다. 몇 번의 학습과 토론으로 습득한 지식을 시간이 지나면 잊어버리는 것도 단지 머리로서만 대상을 알려고 하기 때문일 것이다.
 

한미 FTA, 조승희 총기 사건, 3대 쟁점 법안(사립학교법, 로스쿨법, 국민연금법), 학내 등록금 투쟁…이 사안들에 대해 마음의 눈으로 먼저 접근해 보자. 등록금을 얼마 더 내고 받는 가를 넘어 후세에 우리 후배들과 아이들이 어떤 환경 속에서 교육을 받을까 하고 말이다. 그럴 때 좀 더 깊이 나의 일, 우리의 일로 받아들여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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