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상(無常)은 일정한 때가 없음, 또는 덧없음, 상주(常住)함이 없음을 뜻하며 보통은 허무(虛無) 또는 덧없음의 뜻으로 사용된다. 한자 뜻대로 한다면 항상(恒常)인 것은 없다는 뜻이다. 다시 말하면 모든 것은 변한다는 것을 뜻한다. 인생무상이라 하면 일반적으로 인생의 덧없음을 뜻하지만, 실제로 무상한 것은 우리의 삶이 아니라 우리 속에서 끝없이 살아나고 소멸하며, 증폭되고, 괴로워하는 생각들이다. 생각들은 내가 만들어 내며 끊임없이 변한다, 그러므로 무상(無常)하다.
 

근래에 젊은 연예인 몇이 스스로 그들의 삶을 버렸다. 그 들뿐만 아니라 삶을 안타깝게 결정한 젊은이들 소식도 들린다. 그들이 괴로워하였을 무의미함과 외로움과 좌절, 그로부터 매일 찾아 왔을 견디기 어려운 고통을 느끼며 이를 슬퍼한다.
 

추운 겨울이 지나면 봄이 채 오기도 전에 맨 먼저 땅바닥 한쪽 귀퉁이에서 꽃을 피우는 작은 풀꽃들을 본 적이 있는가? 그 꽃들은 너무 작아 우리가 알아보지도 못하고 지나치는 경우가 많다. 방금 머리 위를 날아간 새들은 어디로 날아갔으며 지금은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머리위로 날아간 새를 보았더라도 우리는 대개 금새 잊는다. 저 멀리 떠나 있는 친구를 지금 손을 뻗어 닿을 수 있는가?

 

아무리 만나려 하여도, 또 머리 속에 그려 보려 하여도 그리기조차 어렵다. 당신이 앞의 일을 구상하고 있지만 정말로 어떻게 전개될 지 알 수 있는가? 우리는 실존주의적 실존처럼 불안하고 고독하며 숙명적인 것으로 생각된다.
 

우리는 너무 많은 생각을 일으키며 산다. 그 생각들은 앞을 다투며 나를 지배한다. 잠시 생각의 흐름을 나 밖에서 관조해 본다. 생각은 계속 바뀌고 사라진다. 작은 풀꽃이 혼자서 애써 꽃을 피우고 있는 것에 대해서도 의문을 가져본다. 이봄이 지나면 꽃은 지고 내년에 새로운 싹이 돋고 또 다른 꽃이 핀다. 머리위로 날아간 새는 어디에선가 쉬고 있을 것이다. 멀리 떠나가 있는 친구에게는 안부 편지를 띄운다. 실존주의적인 불안과 고독은 길바닥에서 열심히 꽃을 피운 풀꽃에게는 없다.
 

생각은 끝없이 생멸한다. 풀꽃도 봄이 되면 꽃을 피우고 잎을 키우고 가을을 맞는다. 공중의 새도 날아 지나가고, 친구도 항상 옆에 둘 수 없다. 이것이 항상 같지 아니하다는 무상이다. 항상 변한다는 것은 과거를 의식하고 미래를 의식하는 것에서 나온다. 과거와 미래를 생각하는 한 무상하다.

 

무상하니 허무해 진다. 과거라는 생각을 버리고, 미래라는 생각을 버리면 지금이 남는다, 풀꽃에게는 과거도 미래도 없다. 오직 지금 꽃을 피우고 지금 잎을 키워가고 있을 뿐이다. 이것이 허무가 아닌 무상이다. 성경말씀도 ‘공중의 새를 보아라’ ‘들의 백합꽃이 어떻게 자라는지 살펴보아라’고 한다. 왜 지금 근심을 하고 있는가? 생각을 만들어 내지 아니하면, 풀꽃을 볼 수 있고, 공중의 새를 볼 수 있고, 친구도 볼 수 있고, 너와 내가 함께 있을 수 있다.
 

생각은 실체가 없는 영화화면과 같다. 영화화면의 음식은 냄새도 없고 먹을 수도 없으며 상영이 끝나면 사라진다. 내가 만들어 낸 허상의 많은 생각을 멈추고, 풀꽃들처럼, 공중을 날아다니는 새처럼, 지금 여기에서(卽如), 있는 그대로(如如), 주위 사람들에게 사랑과 자비를 주기 위하여, 지금 자신이 할 일(實用, correct function)을 단지 하기만(오직 할 뿐)하라. 사랑하는 젊은이들이여.

정우남 교수(기계시스템공학부 교수·열전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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