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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에서 만나다 ②] 바라나시의 친구들
김근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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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07.04.06  15:5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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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와 네팔 여행중에 가장 오랫동안 머물렀던 도시는 바라나시였다. 인도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갠지스강에서 인도인들이 목욕을 하는 그 장면이 있는 그 곳이다. 바라나시에 한번에 오랫동안 머무른것은 아니고, 처음에 바라나시에 가서 며칠간 머물다가 네팔에 들러 인도로 오면서 바라나시에 다시 오게 되었고 또 며칠간을 머물렀다.

   
   
처음 머물렀을 며칠과 돌아와서 머무른 며칠을 합하면 일주일이 조금 넘게 머무른것 같다. 바라나시에서 머무를 때, 항상 같은 게스트 하우스에 묵었다. 아제이 게스트 하우스. 처음 이 곳에 묵었을때 위치도 좋았고 친절하고 식당도 겸하고 한국 사람들도 많아 편했다. 그래서 다시 바라나시에 돌아왔을때도 이 곳에 묵었다.

이 바라나시에 내 이웃들이 있다. 바라나시의 건물들은 오밀조밀 건물과 건물들이 딱 붙어있다. 그래서 옥상에 올라가보면 옆 건물에 담만 넘으면 갈 수가 있다. 내가 묵었던 아제이 게스트 하우스도 물론 마찬가지 였다. 아제이 게스트 하우스의 옆건물은 게스트 하우스가 아니라 일반 인도인들이 거주하는 건물이었다. 나는 처음 바라나시에 묵었을때 아제이 게스트 하우스 건물 옥상에 옥탑방에 묵었다.

바라나시의 아이들은 낮이면 좁은 골목보단 보다 넓은 옥상에 올라가 연을 날리거나 하면서 논다. 어른들도 넓은 옥상에서 일을 한다. 내 방은 옥탑방이었기 때문에, 옆 건물과 담 하나 차이로 넘나들수 있고 아이들이 노는거며 어른들이 일하는 모습을 항상 볼 수 있었다. 옆 건물에는 2-3세대가 살고 있는데 아이들은 옥상에 항상 올라와서 어울려 놀았다. 얼마간 매일같이 외출은 안하는 날이면 매일같이 서로 얼굴을 보는지라 처음에는 눈웃음으로 인사를 하며, 조금 지나면 나마스떼~ 하고 인사도 하면서 친해졌다.

   
 
  ▲ 디파와 친해지기 전, 몰래 사진을 찍다 걸렸다.  
 
제일 기억에 나는건 디파다. 세자매중에 둘째인 디파. 낙천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던 디파는 나를 보면 항상 웃곤 했다. 어느날은 방에서 빨래를 하고 문 밖에 빨랫줄에 널고 다시 남은 빨래를 하다가 다시 빨래를 널기 위해 나갔는데, 좀 전에 널어둔 내 바지가 없어진 것이다. 바람에 밑으로 떨어진 것도 아니고 주변을 찾아봐도 없다.

그 때, 옆에 있던 디파가 몽키~ 몽키~ 스틸~ 그러는 것이다. (바라나시의 원숭이들은 난폭하고 성격도 더럽다. 음식도 훔쳐가고 사람들도 공격한다.) 그러면서 원숭이를 가리치면서 한 쪽으로 가더니, 그 곳을 바라본다. 나도 따라가서 그 쪽을 보니 내 바지가 옆 건물 낮은 옥상위에 떨어져있는 것이 아닌가. 이런! 가기에도 좀 힘든 곳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원숭이들이 위협하고 공격하기 때문에 가기가 쉽지않다. 나중에 게스트 하우스 직원이 구해다 주긴 했다.(자세한건 나중에 바라나시 원숭이에 대한 여행기를 쓸때) 옥상에는 항상 원숭이들이 지나다니고 했는데, 디파는 그 때마다 몽키~ 댄져러스~ 하면서 주의를 줬다.

디파에 대해 가장 기억이 남는건 내가 네팔에서 인도 바라나시로 돌아왔을 때다. 똑같이 아제이 게스트 하우스에 묵었지만, 이전에 묵었던 옥탑방은 비어있질 않아서 아래층 레스토랑 옆에 묵었다. 바라나시로 돌아온 다음 날이던가, 어디론가 향하며 골목길을 걷고 있었는데 어디선가 "끄누~끄누~" 하는 것이다. 깜짝 놀래서 두리번 거리니, 디파가 날 보고 있는 것이다.

   
 
  ▲ 사진 찍기 전, 일단 얼굴과 옷모양새를 가다듬고  
 
반가운 마음, 놀라운 마음, 고마운 마음에 나도 얼른 이름을 불렀다. "군자~~" 헉! 이름을 햇갈렸다. 군자는 언니 이름인데.. 하핫. 디파가 나를 째려봤다. 아이구 미안해라. 나를 이렇게 기억해주고 내 이름까지 기억해주는데, 나는 이름을 햇갈리다니. 그래도 너무 반갑고 고마웠다. 그렇게 나를 째려보고 있던 디파에게 머쩍은 미소를 지으며 언니 군자는 뭐하냐고 어디에 있냐고 물으니 집에 있단다.

몇마디 나누고 나중에봐~ 하면서 디파를 뒤로하고 가던 길을 가는데, 마음이 너무나 뿌듯했다. 저렇게 작은 아이, 낯선 곳에서 이만리 삼만리 이렇게 먼 곳에서 짧은 시간동안의 만남에 나를 기억해주고 나를 알아봐주고 나의 이름을 불러주는 사람이 있다니. 그 사람이 조그만 아이라는게. 한달이 넘어가던 여행중에 가슴을 뛰게하고, 벅차오르게 했다.

디파가 마음을 따뜻하게 해주었다면, 마음을 안쓰럽게 했던 이웃도 있다. 이름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이상하게도 여행 중에 썼던 일기에도 이름이 적혀 있지가 않다. 군자와 디파와는 다른 집의 아이이다. 사진에 나와 있는 남자아이인데, 이 애는 다리를 절었다. 정신적으로도 여느 아이들과 조금 달라보였다. 말도 어눌하고, 약간 지체가 있다고 할까. 그래도 가장 이야기를 많이 나눈 아이였다.

다리는 어째서 그러냐고 물어보니, 어릴 때 아팠단다. 어떻게 아팠냐고 물으니, 자신도 잘 알지 못하는건지 영어로 표현할 수가 없는지 제대로 말을 하지 못한다. 원숭이들 조심하라고 주의도 주고, 밤이되면 다른 아이들은 집으로 다 내려가는데도 가끔 옥상에서 혼자 나와있어 나와 이야기를 나눴다. 어느 밤엔, 갠지스강에 소원을 비는 초들이 줄지어 떠다니는 그 불빛을 보면서, 내가 이것저것 묻기도 했다. 그러다가 잠시 둘다 말이 없어져 조용해졌을때 내가 슬며시 쳐다보았는데, 왠지 슬퍼보였다.

평소때도 몸이나 정신이나 지체적인 것 때문에 그늘이 져 있는듯 했는데, 그 날 저녁 그 애의 실루엣이 그렇게 슬퍼보이고 안쓰러워 보였다. 처음 바라나시에 있을 ??, 이제 어디로 갈거냐고 묻기에 네팔로 갈거라고, 가서 트레킹도 하고 그럴거라고 하니 다시 바라나시에 돌아오냐고 묻는다. 나는 다시 돌아올거라고 했다. 항상 먼가를 응시하는 눈빛, 그렇지만 멍해보이는. 그늘이 배어있는 모습과 눈빛을 가지고 있던. 지금도 이야기 나누다가 말이 없어졌을 때, 슬며시 쳐다본 그 모습과 눈빛을 떠올리면 마음이 안쓰럽다.

   
 
  ▲ 목걸이를 팔고 있는 군자와 디파  
 
군자는 디파의 언니이며 큰언니이다. 군자는 옥상에 올라와 악세서리를 봉투에 담는 일을 한다. 나이는 16살정도인데, 나는 처음에 나와 같은 또래인줄 알았는데 나이를 알고 나서 조금 놀랬다. 나이가 나이이다보니 내가 외간남자여서 그런건지, 수즙음 때문인지 나와는 엮일 거리가 없었다. 그저 가끔 얼굴을 마주치는 정도였다. 친해지게 된 계기는 디파가 나섰기 때문이다. 디파와 사진을 찍으며 노는데, 언니 군자도 찍어주라는 것이다.

나도 꽤나 수즙음이 있어서 웃기만 했는데, 디파가 보챈다. 그래서 군자를 찍으려고 하니까 군자도 수줍어 한다. 디파가 나서서 웃으면서 사진을 찍으려고 하니까 그제서야 군자도 웃으면서 카메라를 쳐다본다. 그 후에 하던 일을 멈추고 이야기도 하면서, 내가 내 일기장에 뭐라도 써주라고 해서 내 이름도 힌디어로 가르쳐 주고, 나는 군자에게 서툰 영어도 가르쳐 주면서 급속하게 친해졌다.

그리고나서 내가 단체사진을 찍자하니, 살짝 빼긴 했지만 군자와 디파, 그리고 다리를 저는 그 아이 모두 내 숙소쪽으로 넘어왔다. 군자는 사춘기 숙녀답게 사진 찍기 전에, 얼굴도 옷차림새를 가다듬는다. 군자는 여행을 하면서 만난 사람들중에 유일한 성숙한 여인이다. 문화적인 이유로 바깥 출입도 남자들보단 덜 하게 되기에, 여행객들도 쉽게 현지 여인들과 만날 수가 없다.

군자가 특별하게 느껴지는건 내가 만난 유일한 현지 여성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여느 그 나이대 여자 아이들처럼 소녀다운 모습이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내가 사춘기를 거치면서 봐오던 그런 사춘기 소녀들처럼.

마지막으로 소개할 막내. 군자와 디파의 동생이다. 그다지 이야기 할만한 기억은 없지만, 항상 눈이 마주치면 어린아이의 순수한 웃음과 미소를 보여줘서 귀엽고, 자꾸 쳐다봤었다. 사진을 찍으려니 그 작은 몸으로 담에 훌쩍 매달려 천진난만한 미소를 보여주던. 가끔식 그 미소가 그리워진다.

   
 
   
내 마음을 따뜻하게, 또는 안쓰럽게 해주었던 나의 바라나시 이웃들. 내가 다시 바라나시에 간다면 또 아제이 게스트 하우스 옥탑방으로 갈것이다. 그 때가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그 때도 나의 이웃들을 옥상에서 담 한켠을 두고 볼 수 있을까. 그 때도 디파는 나를 기억하고 내 이름을 기억하고 내 이름을 불러줄까. 다리를 절던 안쓰러운 아이는 아직도 그런 슬픔이 배인 눈빛을 갖고 있을까. 나와의 짧지만은 않았던 대화들을 기억할까. 군자는 그 때 쯤이면, 누군가에게 시집을 갔을까. 좀 더 성숙한 여인이 되어 있겠지.

귀여운 막내는 내가 못 알아볼 정도로 훌쩍 커 있겠지. 내가 너의 어릴적 사진을 들고 갔을 때, 넌 어떤 표정을 지을까. 다들 우리가 어울려 찍은 사진을 보면 어떤 생각을, 표정을 지을까. 내가 다시 가는 날, 그 때도 그 곳에 다들 있을까. 그리운 나의 이웃들. 그 때에도 꼭 볼 수 있기를. 그리고 이만리 삼만리 먼 곳에서 온 낯설은, 하지만 낯설지 않은 너희들 잠시동안의 이웃을 반겨주기를..
<경영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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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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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우철
근우 씨 정말 가셨군요.ㅎㅎ
멋진 청년입니다~

(2008-02-11 18:33:17)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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