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많은 사람들은 삶은 어둡고 괴로운 것이라고 말할 것이다. 그러한 삶의 고통이 피할 수 없는 숙명이라면 현실이 무의미한 순간이라 느끼고 회피하는 것이 좀 더 쉬울지도 모른다. 그러나 피할 수 없는 숙명에 대항하여 좌절을 각오하더라도 노력을 통해 극복하고 삶이 지닌 희열을 맛볼 수 있다면 삶이 그렇게 고단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페스트는 의사인 리외가 진찰실에서 나오다가 층계에 죽어있는 쥐 한 마리를 발견하면서 시작한다. 결국 쥐의 창궐로 인해 도시에 페스트가 만연하게 된다. 그러나 누구도 페스트의 존재를 진심으로 인정하지 않고 개인적인 관심사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고, 페스트로 인해 고립된 현실이 ‘견딜 수 없는 휴가’라며 자신들이 해방될 시기를 결코 생각지 않는다. 비유하자면 그들에게 견딜 수 없는 휴가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방법은 초인종의 반복된 소리를 들으면서 시간을 메워가는 것이었다.

이 때 리외와 타루는 페스트에게 굴복하는 것은 끝없는 패배임을 인식하고 그것을 없애고자 노력한다. 리외를 중심으로 의료자원봉사대가 발족하고, 질병과 싸우는 도중에 회의와 무기력에 빠지기도 하지만 묵묵히 페스트에 저항한다. 마지막에 페스트의 최후의 희생자로 타루가 쓰러지고 페스트는 언제 그랬냐 싶게 갑자기 물러간다.

작품에서 페스트는 모든 종류의 악 혹은 고통을 의미한다. 페스트가 물러갔을 때 온전히 악이 제거되었다고 할 수 있을까? 악의 형태가 변화하거나 잠정적으로 잠자고 있는 것일 뿐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무너지지 않는 악과, 끊임없이 대항하고자 하는 인간의 의지가 서로 모순 되고 부조리하더라도 끝없는 패배가 싸움을 중단시키는 이유가 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부조리한 세계에 얽매여 절대적 고독 속에 내던져진 이방인의 삶보다 부조리에 맞서 대결하는 리외의 삶이 훨씬 인간다운 삶이기 때문이다.

페스트가 물러간 뒤 늙은 병자가 자신을 진찰하는 리외에게 “다른 사람들은 ‘페스트를 이겨 냈습니다’하고 난리를 치죠. 좀 더 봐주다간 훈장이라도 달라고 할 판이죠. 그러나 페스트가 대체 무엇입니까? 인생이에요. 그게 전부에요”라고 말한다. 그렇다. 인생은 페스트이지만 인간의 가치는 페스트를 이겨내려고 하는 의지와 노력에 있다. 결국 페스트가 사라지지 않는다 할지라도.

 

장일훈(법학·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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