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라믹공학과 01학번 신의철 군은 지난 동계 방학동안 우리 대학 국제교류센터에서 실시하는 국외봉사활동 프로그램 중 '국제워크캠프'로 아프리카에 다녀왔습니다. 신의철 군의 아프리카 봉사활동기를 통해 함께 느껴보시죠.

 

아프리카 하면, 예전 우리에게 소개되었던 부시맨이 콜라를 먹고 있는 게 생각날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아프리카도 많은 관광객들로 인해 제법 도시화가 이루어졌고 많은 사람들이 현대식 건물에, 현대식 생활을 하며 살아가고 있다.

내가 봉사활동을 했던 곳은, 탄자니아라는 인도양에 접해있는 꽤 큰 나라인데, 우리에게는 세렝게티 평원과 조용필이 불렀던 ‘킬리만자로의 표범’의 만년설이 덥혀 있는 킬리만자로 산으로 많이 알려져 있다.

그 국토의 일부 중 ‘잔지바르’라는 섬이 나의 봉사활동 캠프 가 자리잡고 있는 곳이었는데, 윈도우 배경화면에서만 보아 왔던 그런 에메랄드 빛 인도양의 바다위에 떠있는 섬이었고, 홈쇼핑 CF에서 자전거 타고 가는 원주민, 마사이족이 살고 있는 곳이기도 하였다.

그럼 본격적으로 나의 생애 첫 아프리카에서의 봉사활동기를 적어보려 한다.

우리 학교 국제교류센터에서 실시하는 국외봉사활동 프로그램 중, ‘국제워크캠프‘가 있는데, 이것에 지원함으로서 나의 아프리카 여정이 시작되었다.

2006년 11월달에, 1박2일간 장성수련원에서 총 34명의 해외 봉사활동자들이 오리엔테이션 및 단합대회를 가졌었는데, 그 때 참여자들의 노는 모습과 행동을 보며, 역시 보통 마인드를 가진 사람들이 뽑힌게 아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들 활달하고 적극적인 성격에 나또한 고무되었다. 이틀동안 받은 교육은, 나중에 아프리카 친구들에게 한국식 놀이문화와 정서를 전달하는데 적지않은 역할을 해내었다.

사실 나는 봉사활동이란게 어떤 것일까, 특히 외국에서의 봉사활동은 어떤 것일지 무척이나 궁금해서, 영어실력이 뛰어나진 않았지만 외국으로 나간다는 것에 매력을 느껴서 지원하게되었다..

하지만, 같이가는 한국인도 없고 홀홀단신 머나먼 땅에서 어떻게 버틸지라는 생각을 할때마다 지금이라도 늦지 았았으니 취소해버릴까 하는 걱정이 앞서곤 했다. 그러다 어느덧 차근차근 비행기 티켓팅, 여권발급, 탄자니아 행에 관련된 준비가 되가고 있었고 막상 출국하루전에야 비로소 실감이 가는 것이었다.

부랴부랴 여행가방에 한국을 알릴 수 있는 고추장, 복분자술, 홍삼비타민제 등을 준비하면서 오리엔테이션 후 2~3개월간의 시간을 너무 안일하게 준비하지 않았나 하는 후회가 밀려오는 듯했다. 영어회화라도 좀 공부해 둘껄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출국 당일 날, 홀로 인천행 버스에 몸을 싣고 그제서야 이제부턴 내 스스로가 해결해가야 한다는 굳은 심지를 갖고 인천공항에 도착을 했다. 홀로 티켓팅을 해본 경험이 없는지라, 항공사 앞에 길게 드리워진 줄을 보고 이러다 비행기 못타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들면서부터, 다음 경유하는 곳부터는 영어로 해야 된다는 부담감과 이곳을 떠나면 한국인은 나밖에 없다는 생각 등., 갑자기 이 프로그램을 선택한게 후회스럽다는 생각까지 들기 시작했다.

그래도 선택의 여지가 없기에, 다시금 마음을 다잡고, 부모님과 친구들에게 한국에서의 마지막(이때는 정말 마지막이란 생각이 들었다.,아프리카에서는 국제전화를 못쓸줄 알았기 때문에..;;) 통화를 드리고 첫 번재 경유지인 홍콩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높은 상공에서 내려다보이는 우리나라와 서해를 지나가면서, 그제서야 마음이 놓이면서 왠지모를 뿌듯감과 도전의식으로 내가 가려는 곳의 기대감이 싹트기 시작했다.

한국인으로선 혼자지만, 분명가면 좋은 사람들과 만나서 재미나게 지낼 수 있을 거야 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곳 잔지바르는 예전 술탄이 지배했던 곳이었는데 이슬람 문화의 색채가 강한 곳이었다. 사람들 대부분 술과 담배를 입에 대지 않고, 땡볕이 내려쬐는 가운데도 항상 챠도르와 종아리를 드러내지 않는 옷을 입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슬람 예배 또한 규칙적으로 잘 지키는데, 하루 5섯번씩 메카를 향해 절을 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탄자니아 자원봉사자들 중 Ali가 기도를 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 사실 위에 콜라 마시는 친구 Ali는 개그맨 뺨칠 정도로 재미있고, 분위기 메이커인데 예배를 아주 진지하게 드리는 것을 보고 이슬람 종교에 대한 엄숙함을 느낄 수 있었다.

우리는 잔지바르 시의 ‘마쿤두치’라는 바닷가와 인접해있는 마을에서 봉사활동을 하였다.

한 일은 매일 다른 곳에 가서 하였는데 마을 주민들의 농사일 거들기와 학교짓는 공사장 투입, 나뭇가지치기, 국립공원 쓰레기 치우기, 병원청소하기 등 그다지 어려운 일들은 아니었다. 점심이 지나가면 뜨거운 땡볕 때문에 일하기가 힘들다고 오전에 두 세시간만 일을 하였다. 같이 일을했던 국제봉사자들은 한결같이 일이 적었으면 적었지 전혀 힘들거나 부담되진 않았다고 했다. 나또한 물론 일이라고 생각하기 보다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으면 무료하니깐 한번씩 해주는 정도로만 느끼기 까지 했다.

같이 일을 했던 친구들은 총 아시아계 4명, 흑인계 6명, 백인계 4명으로 12명이었다. 핀란드인 두명, 독일인 1명, 일본인 2명, 그리스인 1명, 아프리카인 6명이었는데, 각자 자국의 특성을 지닌 개성있는 친구들이었다. 특히, 유럽 친구들은 신선한 충격을 많이 던져주었는데, 일단은 언어구사 능력이 2개국어 이상된다는 것이 나또한 언어실력을 늘려야겠다는 진지한 생각이 들게 하였다. 스무살 그리스 친구같은 경우는 그리스어, 영어, 독일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 것을 보고 부러움까지 느꼈다.

삼면이 바다로 쌓여 외부와의 교류가 별로 없었던 우리나라의 역사적 환경이, 개방적인 유럽친구들과 비교해 볼 때 많은 부분 신선한 문화적 충격을 안겨준것이다.

가장 기억이 남는 것은 매일 밤마다, Culture Night이라는 프로그램을 진행했었는데, 각자 자기 나라에 대해 준비해온 물품이나, 자료를 팀원들 앞에서 발표하는 시간이었다.

난 준비해간 고추장과 홍삼비타민제, 복분자 술을 소개하고 이야기를 했는데, 모두들 가장 관심있어하는 부분은 유교문화와 교육 부분이었다.

특히, 교육부분에서 고등학생들이 아침 7시부터 밤10시까지 공부한다는 사실에 경악을 금치 못해하였고, 대학생들이 방과후에 대개 술을 마신다는 것에 의아해 했었다.

발표를 하면서 느꼈지만, 우리나라 젊은이들이 술을 꽤 많이 마신다는 편임을 느꼈다.

또, 같이 활동했던 한국인 형에게 내가 인사하고 존칭어를 쓰는 것이 흥미로워 보여서 많은 질문을 했던거 같다.

가장 많은 준비를 해온 나라는, 자국의 봉사활동자들 답게 탄자니아 친구들이었는데, 탄자니아 전통차와 향신료를 준비해서 맛을 보았고, 사진에 보다시피 전통 의상을 입고 나와서 탄자니아 전통춤을 선보여주기도 하였다.


또, 탄자니아의 역사와 국경에 대해서 설명을 할때에는, 유럽 다른 친구들의 식민지 관련 질문이 많았는데 밤 10시가 넘어가도록 까지 적극적으로 참여한 시간들이었다.


마지막에 헤어질 때쯤에선, 다들 시간의 빨리감에 굉장히 아쉬워하는 분위기였고 각자의 메신저 주소를 주고 받으면서, 계속적으로 연락하자는 것에 약속을 꼭꼭 다짐하였다.

아프리카는 지금 변화하고 있다.

태고의 원시림과, 각종 야생동물들을 보전하면서, 아프리카 특유의 문화와 외부 문화를 적절히 융합시켜 발전을 꾀하고 있는 것이다. 너무나 순수한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지금까지 너무 한쪽으로 편향된 아프리카에 대한 정보를 갖고 있던 내 모습이 부끄럽기까지 했다.

살갗이 따가우리만큼 내려쬐는 햇빛에 새까맣게 타는 고생도 하였지만, 멀리 인도양의 바다내음에 묻혀오는 함께 동고동락했던 그들의 해맑은 웃음이 그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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