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달 초 먼 곳으로 이민가 살고 있는 오랜 친구로부터 초청장을 겸한 편지가 하나 날아왔다. 친구들을 위한 음악회를 갖겠다는 내용이었다. 환갑이 넘은 나이에 갑작스레 무슨 음악회? 하면서도 짚이는 것이 있었다.

그 친구는 중학교 때 아버지의 사업실패로 고생이 많았다. 그럼에도 그는 음악을 좋아했고 노래 잘하는 친구로 통했다. 배가 고플 때도 노래만 부르면 모든 것을 잊게 된다는 말을 했을 정도로 그 친구는 정말 음악에 푹 빠져있었다. 대학진학 후 다른 친구들이 가정교사 아르바이트를 할 때, 그는 카페에서 통기타 치는 가수로 학비를 벌었다. 을지로에 있던 인디언이라는 카페에서 노래 부르던 그를 찾아갔던 기억이 남아있다.

MBC대학가요제에 나가 큰상을 받기도 했던 그는 아마도 여건이 허락하여 한길로 매진했더라면 지금쯤 꽤나 유명한 대중가수가 되었으리라 믿는다. 대학을 졸업하자 그는 가족부양을 위해 가수가 되는 불확실한 꿈을 접고 평범한 생활인의 길을 택했다.

외국어대학에서 닦은 어학실력을 무기로 그 친구는 종합상사 해외지사 영업사원으로 들어가 주로 미주시장에서 일했고, 나중에 독립된 회사를 차려 미국에서 꽤나 많은 돈을 벌었다고 들었다. 미국을 다녀오는 친구들이 전하기로는 찾아오는 친구를 집에 불러 기타를 치며 같이 노래 부르는 것을 무척 좋아한다고 했다. 그러던 그가 귀국길에 스스로 극장을 빌리고 프로그램을 준비하여 오랜 친구들을 찾은 것이다.

 

음악회가 있던 날 약속된 장소에는 이제 반백이 된 고등학교 동창들이 부부동반으로 하나 둘 모여들었다. 예술의 전당 길 건너편 골목 안에 있는 150석이 채 못 되는 작은 콘서트홀의 무대에서 그 친구는 정말 오랜만에 옛날처럼 마음껏 노래 부르며 즐거워했다. 노래를 부르는 사이사이에 우리는 무대와 객석을 서로 오가며 고교시절로 돌아가 꾸김없는 대화를 나눴다. 친구는 가수가 되고 싶었던 그의 빛바랜 꿈에 대하여 말했다.

친구는 비록 세속적으로 인정받는 가수는 아니었으나, 그는 집에서, 직장에서, 친구 앞에서, 그리고 그의 생활 속에서 항상 음악을 사랑하는 가수의 삶을 살았다. 그래서 친구의 작은 음악회는 먼 옛날 잉태했던 꿈을 아직까지 버리지 않고 간직했다가 형식과 무대가 초라한 것일지라도 친구들과 그것을 나눠보겠다는 충정이 드러나는 시간이 되었다. 자신이 정말로 좋아하는 일이 하나 있다는 것, 그리고 그러한 일을 하면서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이 사람을 얼마나 행복하게 만드는지를 일깨워주는 밤이었다.

우리의 눈에는 친구가 참으로 아름답고 행복한 가수로 비쳤다. 음악회가 끝나고 친구들은 자리를 뜨지 않고 로비에 삼삼오오 모여앉아 포도주를 마시며 오랜 시간 이야기를 나누고 노래를 불렀다. 그리고 누군가 말했다. 좋아하는 일을 시작하기에 너무 늦은 나이는 없다고. 돌아오는 길에 상쾌하게 볼을 스치는 찬 공기를 마시며 정말 오랜만에 밤하늘의 별을 헤아려 보았다. 그리고는 김광규의 시를 떠올렸다.

“4.19가 나던 해 세밑/ 우리는 오후 다섯 시에 만나/ 반갑게 악수를 나누고/ 불도 없이 차가운 방에 앉아/ 하얀 입김을 뿜으며/ 열띤 토론을 벌였다/......결론 없는 모임을 끝낸 밤/ 혜화동 로터리에서 대포를 마시며/ 사랑과 아르바이트와 병역문제 때문에/ 때 묻지 않은 고민을 했고/ 아무도 귀 기울이지 않는 노래를/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노래를/ 저마다 목청껏 불렀다/ 돈을 받지 않고 부르는 노래는/ 겨울밤 하늘로 올라가/ 별똥별이 되어 떨어졌다.”

 

최 협(인류학과 교수·문화인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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