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판엔 누런 나락 단풍이, 고향집 돌담 아래로 빨간 홍시는 떨어질 듯 말 듯, 자연도 사람의 마음도 영글어가는 10월은 가을 중의 가을이다.  

들판엔 누런 나락 단풍이, 고향집 돌담 아래로 빨간 홍시는 떨어질 듯 말 듯, 자연도 사람의 마음도 영글어가는 10월은 가을 중의 가을이다. 달랑거리는 홍시를 봐도 괜히 꼬쟁이로 찔러보고 하얀 시멘트 바닥에 주황물을 들여 보고 입으로 쪼옥 소리 내고 싶어지는, 10월은 모든 것이 예술과 놀이로 승화된다. 예술과 문화가 꽃피는 10월, 광주는 지난 달 새로 창립한 극단 ‘솟대 쟁이패 허방’으로 마음이 풍성하다. ‘솟대 쟁이패 허방’은 열악한 환경과 재정적 어려움, 사람들의 소외로 점점 어려워지고 있는 광주 연극계의 현실 속에서 꿋꿋이 서 그 의미가 더욱 크다.


노래패에 반해 5년을 단원 활동

‘솟대 쟁이패 허방’은 전통적으로 극단을 지칭하는 말인 ‘솟대 쟁이패’와 함정이라는 뜻을 가진 전라도 방언 ‘허방’이 합쳐졌다. “인간의 실존은 무기력하며 불행하다고 보기에 함정이라고 생각한다”는 그는 “인간의 실존 문제를 다루는 연극을 하고 싶어 이렇게 극단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나는 돈키호테! 하고 싶으면 무작정 빠져들어요”

그가 연극을 하게 된 배경과 그의 삶도 한 편의 연극이었다. 경제학과 학생이었지만 국문학과에 입학하지 못한 것을 후회한 그는 전공은 밀어두고 문학 동아리에서 활동하며 열심히 시를 썼다.

“군대를 가기 전 친구에게 나는 군대를 가서 시를 쓸테니 너는 이 곳에서 열심히 시를 써서 제대 후 공동 시집을 내자”고 약속했던 문학도는 당시 반공이데올로기로 뿌리박힌 사회 속 군대에서 항상 시를 쓴다는 이유로 사상 의심자 취급을 받아 시를 몽땅 빼앗기고 문학에 대한 회의감마저 갖게 됐다.

제대 후에는 대학원 진학도 포기하고 우연히 본 민중가요 노래패에 반해 5년을 노래패 단원에서 활동했다. ‘우루과이 라운드’ 반대 퍼포먼스로 노래패 단원들과 뮤지컬을 하게 된 계기로 연극에 관심을 갖게 된 그는 서른의 늦은 나이로 국문학과 대학원에 입학했다. 그렇게 다시 꾼을 펼칠 수 있게 된 그는 꾸준히 희곡을 쓰고 전남대, 광주대 등에서 강의를 하면서 평소 꿈꾸던 극단을 창립했다. 김영학 씨는 무등일보(1995), 서울신문(1998), 신춘문예에 당선되고 2000년에는 대산창작기금을 받았다. 주요 작품으로 박관현의 삶을 다룬 ‘너를 부르마’ 명량대첩 때의 민중들을 주인공으로 한 ‘만월’ 등이 있다.


첫 작품 ‘가출’ 중년의 성과 사랑 담아

“5년 전 쓴 희곡을 연출할 마땅한 연출자가 없어 내가 하게 됐다”는 김영학 씨. 극단의 탄생은 이 작품의 공로가 크다. 영화 ‘처녀들의 저녁 식사’를 보고 중년들의 성담론을 다뤄보고 싶었다는 김영학 씨는 “이 작품은 중년의 나이가 지나면 할 수 없을 것 같았다”고 한다. 실제 김영학 씨는 40대 중반으로 중년의 기로에 서 있다. 

‘가출’에는 중년들의 성과 사랑을 통해 삶의 여러 단면들을 담고 있다. 성에 소극적인 남자, 결혼 전의 비밀을 간직한 여자, 프리섹스 주의자, 첫사랑 여자 등의 인물들이 엮는 이야기는 관객들에게 자신의 삶을 되돌아 볼 수 있게 한다. “사소한 일상을 확대해 관객들에게 자신의 삶을 반성할 수 있게 하고 싶었다”는 그는 “일상의 발견에 대한 이야기를 좋아한다”고 한다. 가출은 나약하고 힘든 인간을 삶을 보여주지만 그러나 희망은 있다고 말한다. 가출의 마지막이 완전한 해피엔딩이 아닌, 상황의 가능성을 짐작할 수 있게끔 끝난 것도 이런 희망의 메시지를 함축한 것이 아닐까. 가출은 지난 달 창립 기념 공연을 한 바 있다.

“극단을 설립하며 재정부족으로 자신의 집을 사무실로 이용하고 있다”는 김영학 씨는 그래도 “희곡을 쓰는 것보다 연출이 더 재미있다”고 말한다. 평소 인맥을 통해 배우를 모집하고, 극단의 소극장이 없어 장기공연 요청을 들어줄 수 없었지만 ‘솟대 쟁이패 허방’은  더 큰 활시위를 당기고 있다. 다음 공연은 “사람들을 서늘하게 만드는 공포와 잔혹함, 괴기스러움이 있는 비사실주의 극이 될 것이다”는 그는 단원들을 모집한다고 귀뜸한다.(문의 kyh9263@hanmail.net)


“연극의 매력은 현장성입니다”

“광주는 다른 지역보다 연극에 대한 관심도 적고 예산도 적다”고 김영학 씨는 말한다. 광주문화중심도시에 대한 말은 많지만 실제 문화 예술에 대한 투자가 외관에만 치우친다는 비판의 소리가 많은 현실이다. 연극의 경우만 해도 소극장 운영의 어려움, 변변한 극장이나 사무실을 갖지 못하는 극단이 많음에도 재정적 지원은 없다. 김영학 씨는 “광주문화예술회관이나 궁동예술극장 같은 국가운영 기관을 예술인들을 위해 무료로 제공한다면 시민들도 예술 관람을 저렴하게 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또 “작은 농촌 지역인 밀양은 이윤택 씨가 왕성하게 연극 활동을 할 수 있게 폐교를 무상으로 제공하고 있지만, 담양만 해도 놀이패 신명에게 임대료를 받고 있다”며 “지역단체에서도 예술인에 대한 투자를 늘려야 한다”고 했다.

또 대학생들이나 사람들의 문화, 예술에 대한 관심부족도 지적했다. “대학에서 강의를 하며 학생들에게 연극에 관련된 리포트를 내어주지만 90%가 연극을 처음봤다고 말하거나 20~30%가 연극을 보지 않고 리포트를 제출한다”고 했다. 하지만 “연극을 보고 난 후 반응은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같다”고 했다.

“지루하고 어려울 것 같았는데 실제 보니 실감나고 재미있다”고.

모든 사람들이 말하는 연극의 매력을 그는 다시 한번 강조한다. “연극의 매력은 현장성입니다”

/장옥희 기자 sushoo@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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