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에 있는 작은 골목길을 지나면 ‘세종한글학교’라는 간판과 함께 양철 대문이 나온다. 넓은 운동장 대신 학생들에게 작은 쉼터를 마련한 포도넝쿨과 뽕나무, 선생과 학생이라는 엄격한 거리감을 두지 않는 교실과 교무실의 열려있는 문들. 그 사이로 학생인지 선생인지 모를 깔깔거리는 웃음소리가 들려온다.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에 있는 작은 골목길을 지나면 ‘세종한글학교’라는 간판과 함께 양철 대문이 나온다. 넓은 운동장 대신 학생들에게 작은 쉼터를 마련한 포도넝쿨과 뽕나무, 선생과 학생이라는 엄격한 거리감을 두지 않는 교실과 교무실의 열려있는 문들. 그 사이로 학생인지 선생인지 모를 깔깔거리는 웃음소리가 들려온다.

방학동안 대학진학 준비반 학생들만 모은 한국어 특강수업, 자신의 장점을 ‘노래’라고 말한 학생이 앞에 나와 열심히 한국어 노래를 불렀다. 웃음소리의 정체는 아마 이 때문이었나 보다.  뒤를 이어 자신에게 가장 소중한 것을 발표하는 수업 시간, 학생들의 여러 가지 대답들 뒤로 선생님의 발표순서가 이어진다.

“선생님에게 가장 소중한 것은 학교입니다. 학교는 선생님의 마음입니다” “가족보다 더 소중한 것이 학교”라고 말하는, 선생님의 눈은 빛난다. 세종한글학교의 교사이자 교장인 허선행 동문, 허 동문은 우즈베키스탄과의 수교 첫 해인 1992년, 한국대사관과 한국교육원보다 먼저 고려인의 한글 교육을 위해 우즈베키스탄으로 왔다. 허 동문은 전남지역 유지들이 재소 고려인의 한글교육 목적을 위해 중앙아시아 5개 지역에 세운 학교의 하나인 세종한글학교를 14년간 이끌어가며 3천여 명의 졸업자를 배출시켰다.

“구소련 지역의 고려인에 대한 한글 교육이 시급하다는 지도교수의 말에 감흥을 얻어 우즈베키스탄으로 왔다”는 허 동문은 달랑 건물 하나 있는 곳에 직접 학생을 모집하고 한글 교육을 하며 세종한글학교를 지금의 교육기관으로 발전시켰다. “유학자금까지 학교를 위해 썼지만 학교의 환경은 열악했다”는 허 동문은 “이곳에서 내 꿈을 펼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마저 들었다”고 회상한다. “지붕이 세서 비가 오면 양동이를 놓고,  난방기나 선풍기 하나 없는 곳에서 수업했다”는 이곳에서 허 동문을 무려 14년 동안 버틸 수 있게 한 힘은 ‘열정적으로 한글을 공부한 학생들이었다’고 한다. “처음 한글학교 학생 모집 광고를 냈을 때 5대 1의 경쟁률을 보일 만큼 한글 공부에 대한 높은 관심이 있었다”고 당시 한글 교육에 대한 우즈베키스탄 고려인의 갈증을 설명한다. 또 학생들은 선생님의 작은 우렁각시였다. “총각이어서 그랬는지 학생들이 선생님을 위해 음식을 가져와 학교 냉장고에 넣어두었다”며 허 동문은 “아직도 그때의 냉장고를 버리지 못한다”고 한다. 허 동문의 학생 자랑은 긴 포도넝쿨처럼 이어진다.

“우리 학생들은 공부도 열심히 하고 놀기도 아주 잘 놀아요” “1년 동안 세종한글학교에서 배운 것을 발표하는 ‘문화의 밤’ 행사 때는 나이트클럽을 통째로 빌려 학생들이 준비한 연극, 무용, 춤을 똘똘 뭉친 끼로 보여줘요”

허 동문의 유별난 학생 사랑은 교육철학과도 일맥상통한다. 교사 회의 시간에 모든 선생님들에게 “왜 교사입니까”라고 물으며 “학생들을 사랑으로 가르치지 않으면 실력이 있어도 존경받지 않는다”며 “학생들을 사랑으로 안아라”고 당부한다. “이런 교육철학은 한글학교 건립의 창단 멤버이자 세종한글학교의 지원자인 김종채 한글협회 회장의 가르침이었다”고 그는 말한다.

허 동문이 사랑으로 교육을 실천하며 학생들에게 가장 중요시 하는 것은 예절이다. “한국말은 꼭 잘 못해도 예절바른 학생이 되어라”고 강조한다. “예절을 중시하다 보니 학생들이 담배를 피다가도 감추고, 인사도 고개를 꾸벅 숙여서 한다”고. 그러고 보니 칠판 옆에 붙어 있는 교훈도 ‘한국의 얼을 배우자’이다. 허 동문은 “민족이라는 것은 마음속에 담고 있는 것이기에 다민족 사이에서는 말하기 어려운 문제”라며 “학생들의 마음속에 민족의 얼을 심어주고자 교훈으로 지었다”고 한다.

7월 무더운 여름, 세종한글학교 한쪽에서는 완공중인 건물들이 학생들을 기다리고 있다. “소강당이 완공되면 성공 기업인들의 특강이 진행될 것”이라고 한다. 또 “학생들이 한국의 문화를 직접 체험할 수 있는 김치 담그기, 음식 만들기를 할 수 있는 시설도 준비 중”이라고.

앞으로도 세종한글학교에서 허 동문이 할 일은 많다. “올 9월에는 학생들에게 우즈벡어를 가르칠 예정”이라 한다. 고려인들은 유창한 러시아어에 비해 우즈벡어를 못해 우즈베키스탄의 공무원 사회 진출이 어렵기 때문이다. 허 동문은 “앞으로 유학센터를 건립해 학생들이 유학의 길에 오르기 쉽게 도우고 싶다”고 자신의 포부를 밝혔다.

“스물여덟, 인생의 황금기를 타국에서 한국어 교육을 하며 바쳤지만 한번도 후회한 적 없다”는 허선행 동문. 그는 오늘도 학생들에게 말한다. “여러분, 돈은 벌지 못해도 보람과 기쁨이 있는 일을 찾으세요”

/장옥희 기자 sushoo@hanmail.net





허선행 동문은…

▶85년 윤리교육과 입학

▶92년 우즈베키스탄 한글학교 교사

▶현재 우즈베키스탄 세종한글학교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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