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민으로 얼룩진 존재 인간 

번민으로 얼룩진 존재 인간

로마 신화를 보면 걱정, 근심, 불안, 우려의 신인 쿠라(Cura) 여신이 인간을 만들고자 했다. 우선 땅을 차지하고 있는 신을 찾아가 육체의 재료인 흙을 얻어 인간을 빚었지만 아직 생명이 없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영혼을 관장하는 신을 찾아가 영혼을 얻어 그 인간에게 불어넣었다. 처음에는 흙과 영혼을 빌려준 신들이 대단치 않게 여겼는데, 막상 인간이 완성되자 사정이 달라졌다. 세 신 모두 인간을 소유하고 싶은 욕심이 생긴 것이다. 저마다 인간을 소유하겠다고 다투다가 급기야 재판관에게 판결을 내려줄 것을 간청하기에 이르렀다. 이 재판관은 세 신을 모두 만족시키는 이른바 솔로몬식 판결을 내렸는데, 그 판결이 곧 인간의 운명이 되었다고 한다. “이 인간이 죽으면 흙을 빌려준 땅의 신은 육체를 되돌려 받고, 영혼을 빌려준 신은 그 영혼을 도로 차지하라. 그러나 이 인간이 살아 있는 동안에는 쿠라 여신이 소유하라.” 이렇게 해서 인간은 살아 있는 동안 끊임없이 걱정, 근심, 불안, 우려의 노예가 된다는 것이다. 돌이켜 보면 누구에게나 늘 근심거리가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별 일 아니었지만 그때는 얼마나 큰 걱정거리였는가? 어머니가 아끼던 그릇을 깨뜨리고, 혹은 친구들과 놀기에 바빠 어머니가 해 놓으라는 일을 하지 않고는 야단 맞을까 걱정이 되어 날이 저물어 어둑해지도록 대문 멀리에 숨어 있다가, 들어와서 밥먹으라는 어머니 말씀에 왈칵 눈물을 쏟았던 기억이 없는가. 어린 시절뿐만이 아니다. 학교에 다니던 시절, 결혼해서 아이 낳아 기르던 시절, 그 아이들이 다시 결혼하고 아이 낳기에 이르기까지 걱정과 불안은 그 내용을 달리 하면서 계속된다. 실로 인간은 온갖 번민으로 얼룩진 존재이다. 프랑스 시인 아르튀르 랭보(Arthur Rimbaud)의 시구처럼 상처 없는 영혼이 어디 있겠는가?  

‘대한불안장애학회’가 전국의 성인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개별 면접조사를 실시한 결과 전체 응답자의 25%가 “불안한 상태에 있다”고 답했다고 한다. 한국인 4명 가운데 1명은 불안 증세를 겪고 있는 셈이다. 의사들은 약물 치료, 인지ㆍ행동 치료, 상담 치료를 받을 것을 권한다. 그런데 이런 경우 항우울제(Prozac)를 복용할 것이 아니라 철학(Platon)을 하는 게 좋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네 혼을 돌보아라”

앞에서 소개한 쿠라 신화는 현대철학의 거장 하이데거(M. Heidegger)의 대표적 저서인 ‘존재와 시간’에 등장한다. 이 쿠라라는 신의 이름에서 대문자인 첫 글자를 소문자로 바꾸면 보통명사 cura가 되는데, 바로 이 단어로부터 영어의 care라는 단어가 나왔다고 한다. 라틴어 cura, 영어 care에 해당하는 독일어 단어가 Sorge이다. 하이데거는 쿠라 신화로부터 자신의 핵심 개념 Sorge를 끌어낸다. 그런데 매우 흥미로운 것은 독일어로 목사직, 사제직을 Seelsorge라고 하고, 목사나 사제를 Seelsorger라고 한다는 사실이다. 목사나 사제가 하는 일은 ‘혼을 돌보는 일’이요, 목사나 사제란 ‘혼을 돌보는 자’라는 것이다. ‘혼을 돌보는 일’이란 표현은 대뜸 소크라테스를 떠올리게 한다. 대화편 ‘파이돈’의 끄트머리에서 오랜 친구이자 제자인 크리톤이 그 자리에 모인 사람들에게 마지막으로 지시할 일이 무엇인지를 소크라테스에게 묻는다. 이에 대한 소크라테스의 대답은 이렇다. “자네들이 자네들 자신을 돌본다면, 자네들은 나를 위해서도 내 가족을 위해서도 그리고 또 자네들 자신을 위해서도 기쁠 일을 하게 될 걸세.” 여기에서 ‘자네들 자신을 돌본다면’이라는 표현은 ‘진정으로 자네들 자신을 돌본다면’을 뜻하고, 이는 더 나아가 ‘진정한 자네들 자신을 돌본다면’을 의미하는데, 그 ‘진정한 자신’이란 바로 그들 자신의 혼을 가리킨다. 결국 소크라테스가 마지막으로 남긴 말은 ‘네 혼을 돌보아라’로 요약된다. 그래서 ‘혼을 돌본다는 것’, 희랍어로 epimeleisthai tes psyches를 소크라테스 철학의 핵심으로 보기도 하는 것이다. 위에서 소개한 독일어 Seelsorge는 한 치의 오차도 없이 희랍어 표현 epimeleisthai tes psyches와 일치한다.

자신의 혼을 돌본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에게 있어서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예수가 십자가를 매고 골고타 동산을 올라갈 때 많은 이들이 길가에서 이 참혹한 광경을 보고 울었다. 이때 예수는 나를 위해 울지 말고 네 자신을 위해 울라고 한다. 네 자신을 위해 울라는 것은 다름아니라 네 자신의 혼을 위해 울라는 것이요, 이것은 네 자신의 혼을 보살피라는 것과 다르지 않다. 같은 맥락에서 덴마크의 실존 사상가 키에르케고어(S. Kierkegaard)는 성서의 표현을 따서 비록 온 세상을 얻는다고 할지라도 네 혼을 다친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냐고 묻는다. 몸이 아프면 병원이나 약국을 찾지만, 혼이나 마음이 아프면 어떻게 해야 할까? 신경정신과, 심리 상담소, 성당이나 교회도 도움이 될 수 있겠으나 어떤 사안의 경우에는 오히려 철학에 도움을 청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1981년 독일 철학자 게르트 아헨바하(Gerd Achenbach)는 철학진료연구소(Institut fur Philosophische Praxis)를 개설했다. 아헨바하가 말하는 ‘철학 진료’란 철학자의 진료실에서 전문적으로 시행되는 철학적 생활 상담을 가리킨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철학 진료에서 우리는 철학의 교사가 아니라 철학자일 것을 요구받는다. 철학의 구체적 모습은 철학자이다. 철학자가 곧 하나의 기관으로서의 철학 진료소이다. 철학 진료는 자유로운 대화로 철학 이론을 처방하며, 철학적 사고를 작동시킨다.” 1982년에는 독일에서 ‘철학 진료 협회’(Gesellschaft fur Philosophische Praxis)가 창설되었다.

마음의 지속적 평화 PEACE


아헨바하의 생각을 이어받아 철학 진료를 세계적인 현상으로 확대시킨 사람은 미국의 철학 교수 루 매리노프(Lou Marinoff)이다.

그는 ‘미국 철학 진료 협회’(APPA: American Philosophical Practitioners Association)를 창설했으며 지금도 회장 일을 맡고 있다.

독일어 표현 ‘philosophische Praxis’는 영어로는 ‘philosophical practice’로 번역된다. 이때의 Praxis나 practice는 첫째로 의사의 개인 진료소나 변호사의 개인 사무실, 둘째로 개업의나 개업 변호사가 하는 일을 가리킨다. APPA라는 표현에 들어 있는 영어 practitioner는 개업의(開業醫)를 말한다. philosophische Praxis는 짧은 시간 안에 하나의 중요한 개념으로 확립되기에 이르렀다. 독일어권에는 중요한 철학 개념의 역사적 변천을 보여주는 ‘철학 개념사 사전’(Historisches Worterbuch der Philosophie)이 있다. 모두 12권으로 된 이 방대한 사전은 중요한 철학 개념들을 표제어로 삼아서 각각 고대에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어떤 변천을 거쳤는지를 자세히 보여준다. philosophische Praxis가 이 사전에 등재되었다는 것은 이례적이다. 그것은 생겨난지 얼마 안 되는 개념이 아주 빠른 속도로 ‘이성’, ‘존재’, ‘인식’ 등과 나란히 서게 된 몇 안 되는 사례 가운데 하나라고 할 것이다. philosophische Praxis를 우리말로 무엇이라고 할 것인지도 쉽지 않다. ‘철학 상담’이나 ‘철학 카운슬링’ 혹은 이런 일을 하는 장소인 ‘철학 상담소’라고도 번역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마음의 병, 영혼의 아픔을 고친다는 뜻에서 ‘철학 진료’나 그런 일을 하는 곳인 ‘철학 진료소’로 번역하고자 한다.

매리노프는 ‘질병’(disease)과 ‘불편함’(dis-ease)을 구별한다. 만일 당신이 ‘질병’을 앓고 있는 것이라면 적절한 의학적 진단과 치료를 받아야 할 것이다. 그렇지만 신체에는 이상이 없는데 ‘불편함’을 겪고 있는 것이라면 당신의 사고 방식과 생활 방식을 점검해 보아야 한다. ‘질병’의 경우에 의학과 약이 도움을 준다면, ‘불편함’의 경우에는 철학이 도움을 줄 수 있다. 그래서 매리노프는 ‘불편함’의 경우에는 항우울증 치료제 Prozac을 복용할 것이 아니라 철학으로부터 도움을 받는 것이 올바른 방법이라는 의미에서 “Plato not Prozac”이라는 표현을 동원한다. 메리노프의 철학 진료는 모두 5 단계로 구성된다. 첫 번째 단계는 ‘문제’(Problem)의 단계이다. 이 단계에서는 나를 불편하게 만드는 것이 도대체 무엇인지를 분명히 하고 그것을 자신의 문제로 삼는다. 두 번째 단계는 ‘정서’(Emotion)이다. 앞의 ‘문제’가 발생시킨 정서를 검토한다. 세 번째 단계는 ‘분석’(Analysis)이다. 이 단계에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방법과 대안을 열거하고 평가한다, 네 번째 단계는 ‘명상’(Contemplation)이다. 이 단계에서는 보다 넓은 전망을 확보한 상태에서 전체적 상황을 철학적 관점에서 통합한다. 다섯 번째 단계는 ‘평형’(Equilibrium)이다. 내가 당면한 문제의 본질을 파악하고 타당한 조치를 취한 다음 평온한 마음을 회복하는 단계이다. 매리노프는 자신의 진료 방법을 이 다섯 단계를 가리키는 다섯 단어의 머리글자를 조합해서 ‘마음의 지속적 평화를 가져다 주는 방법’이라는 뜻으로 PEACE라고 칭한다.      

철학 진료를 둘러싼 움직임은 결코 새로운 것이 아니요 알고 보면 철학의 오랜 전통을 회복하는 일이기도 하다. 소크라테스와 소피스테스들 그리고 고전 시기 이후의 여러 학파들은 철학이 삶의 기술(ars vivendi)도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했고 실제로 가르치기도 했다. 오늘날 서양 여러 나라에서 철학 전공자의 직업 전망을 논하는 글들을 보면 ‘철학 상담원’(philosophischer Barater)을 꼽고 있는 것을 흔히 본다. 철학자가 의사, 변호사, 심리학자처럼 진료소 혹은 상담소를 차리고 상담에 응하는 것이다. 현대 사회의 특징 가운데 하나는 급속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어서 멈출 수도 없고 속도를 조절하기도 어렵다는 점이다. 그래서 현대를 광속(光速)의 시대라고 부를만하다. 이런 광속의 변화는 그 미친 듯한 속도(狂速)로 인해 철학 진료를 필요로 하는 많은 사람들을 생겨나게 할 것이고, 철학은 이 과제를 기꺼이 떠맡음으로써 현실 연관성을 회복하는 다시없는 기회로 삼을 수 있을 것이다.

                                                 



 


이 강 서

(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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