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우리 역사책의 출판 경향에서 주목되는 현상 중의 하나는 역사를 보다 쉽고 재미있게 서술하면서도 의미 있는 내용을 담아 전달하려는 시도들이 많이 이루어지고 있는 점일 것이다. 이런 시도는 역사를 일반인들이 친숙하게 접할 수 있게 한다는 점에서 바람직한 일이라고 평가되지만, 그러나 너무 대중의 호기심 충족에 치우쳐 역사적 사실을 오해시키는 것 아닌가 하는 우려가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얼마 전 우리 학교의 김당택 교수가 {우리 한국사}란 이름의 책을 펴냈다. (푸른역사 간, 2002. 10.5 발행, pp. 534) 이 책은 최근의 "재미있으면서도 유익한 역사책"을 펴내자는 분위기를 일정부분 따르면서도 동시에 일정부분 이를 비판하는 목적을 담은 것이다.
이 책은 몇 가지 점에서 특징이 있다. 우선 정치사라는 하나의 주제로서 한국사의 체계적 정리를 시도하였다는 점이다. 크게 4장으로 나누어, 고대 귀족국가의 성립에서부터 최근 김대중의 북한방문 까지를 다루고 있다. 정치사 전문학술서는 종종 있어왔지만, 개설서를 이처럼 정치사라는 하나의 주제만으로 구성한 것은 처음의 시도 아닌가 싶다. 또 저자 자신의 독특한 관점에 입각한 새로운 시대구분이 눈에 띈다. 이제까지 일반적으로 사용해 온 것은 시간의 원근에 의한 구분, 사회발전단계설에 입각한 구분, 왕조에 의한 구분 등이었다. 저자는 사회지배세력의 변천과정을 기준 삼되, 여기에 우리에게 익숙한 시간의 원근에 따른 삼분법, 또는 사분법을 연계시켜 활용하였다. 저자는 고려와 조선을 양반이 지배하던 동질적 사회로 파악하였다. 그래서 고대 귀족사회, 중세 양반사회, 근대 시민사회, 현대민주사회의 4단계로 나눠 체계화시키고 있다.
이 책의 또 다른 특징은 저자의 역사인식을 강하게 드러내는 서술을 하고 있는 점이다. 예컨대 고려시대의 삼별초에 대해 "몽고병 보다 더 나쁜 삼별초"(P. 164)라거나 4.19이후의 사회상을 "자유를 요구하는 것은 혼란인가"(p.471)라는 표제로 드러내며, "제주민중항쟁"(p.438)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등이 그러하다. 삼별초나, 4.19 이후의 사회상, 제주 4.3사건의 용어 등에 대해서는 평가가 엇갈린 점이 없지 않은데, 저자는 민중 입장에 선 자신의 견해를 명확하게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또 쉽고 재미있는 서술에 애쓰고 있는 점도 큰 특징이다. 짧고 간결한 문장을 구사하고 있는 점이나, "견훤은 광주 출신의 군인"(p.100),"임금을 깔보는 관리들에 분노한 연산군"(p.237),"장희빈에 의해 정권이 두 번 바뀌다"(p.269)라는 식으로 흥미 있어 할 토픽을 표제어로 내 건 것들이 이런 예일 것이다. 저자가 서문에서 밝히고 있는 것처럼 "재미있으면서도 앞뒤가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한국사 서술을 추구한 것이라고 여겨지고 이 점에서 이 책의 가치는 각별하다 할만하다.
그러나 이처럼 여러 특징을 지니고 있지만 그 특징이 곧 장점이라고 만은 할 수 없을 것 같다. 무엇보다 정치사라는 단일 주제만을 다루어 모든 역사적 사건의 배경이나 과정을 ’정치세력간의 갈등’만으로 설명하는 것은 지나치게 단선적인 이해를 심어주는 것 아닌가 하는 염려가 든다. 연산군의 정치도 "왕의 권위를 세우기 위해"서이고 숙종이나 영조의 정치도 "왕의 권위를 세우기 위해"이며 6.25전쟁의 원인도 "김일성과 박헌영의 권력다툼"에서 비롯된(p.457) 것으로 설명하는 예들이 그러하다. 역사가 단순하고 단일한 부문의 전개 양상만이 아니라, 다양하고 총체적인 인간 삶의 여러 면들의 교묘한 결합 발전일진대, 저자가 강조하는 바 역사학 본래의 기능이 "현재를 사는 사람에게 지혜를 제공하고 미래를 전망하는데 기여해야 할 것"(p. 5)이라면 경제, 사회, 문화의 제 분야를 제외하고서 단지 "정치세력간의 갈등에 초점을 맞추어"이해함으로서 "우리 민족 모두가 평등한 상태에서 자유스럽게 살 수 있는 방법을 모색"(p.5)하는 것이 과연 가능할런지 의문인 것이다.
이런 점들을 굳이 한계로 지적하긴 했지만 우리 역사의 정치사적 흐름에 관해 재미있고도 체계적인 역사이해를 원하는 독자에겐 매우 유익한 책이 될 것으로 믿는다. /김동수 교수(사학, 한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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