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오콘의 미국이 주도하는 세계질서의 폭력적 재편과 우리의 온 삶을 압박하는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시대에 우리는 오랫동안 소중하게 가꾸어온 공동체적 유대와 나눔, 사랑에 대한 기대를 포기하고 ‘안전을 위한’ 공포, 감시 및 인권유보 밑에서 묵종하고 있으며, ‘벗어날 수 없는’ 무한한 경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오직 내 한 몸을 건사하고자 허우적거리고 있다. 민주주의의 축제인 선거는 다가오지만 인민이 주인으로서 뜻 깊게 선택할 수 있는 정책대안들은 보이지 않고 비슷한 본색에 무늬만 다른 정파들 사이에서 우리는 투표의 가치를 느끼지 못하고 있다. 지난 1980-90년대 그렇게 어렵게 피 흘리며 쟁취한 민주주의는 아래로부터의 건전한 참여가 아니라 엘리트 - 그 중에 상당수는 과거에 민주화운동을 했다는 전력으로 정치를 시작했건만 - 에 의한 지배, 국가(관료)에 의한 지배, 자본에 의한 지배로 대체되어가고 우리 민초들 다수는 ‘목적’을 잃은 삶, 살기위해 살아가는 삶속에 점점 빠져들어 가는 듯하다. 냉전이 종식되고 현대 한국의 모든 것을 억압해온 분단의 질곡구조가 본격적인 변화의 길로 접어든 지도 6년여가 지났건만 남북한관계에 관하여 단순한 이념이상의 원초적인 반목, 불신 및 분노로 점철된 ‘남남갈등’은 여전하기만 하다. 자주의 정신은 입술로만 되뇌며 오직 미국에 의존한 ‘생존을 위한’ 국제정치만 추구하는 우리(?) 국가가 국익이라는 이름으로 심지어 군인들까지 동원하며 늙은 농민들을 제 땅으로부터 강제로 폭력적으로 내몰고 있는 실정이다.  


 

 

 

 

 

 

 

 

 

 

 

 

 

 

 

 

 

 

 

 

 

 

 

 

 

 

 

 

 

 

 

 

 

 

 

 

 

조정관

(전남대학교5․18연구소 전담교수, 정치외교학과)

cho8759@chonnam.ac.kr


   네오콘의 미국이 주도하는 세계질서의 폭력적 재편과 우리의 온 삶을 압박하는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시대에 우리는 오랫동안 소중하게 가꾸어온 공동체적 유대와 나눔, 사랑에 대한 기대를 포기하고 ‘안전을 위한’ 공포, 감시 및 인권유보 밑에서 묵종하고 있으며, ‘벗어날 수 없는’ 무한한 경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오직 내 한 몸을 건사하고자 허우적거리고 있다. 민주주의의 축제인 선거는 다가오지만 인민이 주인으로서 뜻 깊게 선택할 수 있는 정책대안들은 보이지 않고 비슷한 본색에 무늬만 다른 정파들 사이에서 우리는 투표의 가치를 느끼지 못하고 있다. 지난 1980-90년대 그렇게 어렵게 피 흘리며 쟁취한 민주주의는 아래로부터의 건전한 참여가 아니라 엘리트 - 그 중에 상당수는 과거에 민주화운동을 했다는 전력으로 정치를 시작했건만 - 에 의한 지배, 국가(관료)에 의한 지배, 자본에 의한 지배로 대체되어가고 우리 민초들 다수는 ‘목적’을 잃은 삶, 살기위해 살아가는 삶속에 점점 빠져들어 가는 듯하다. 냉전이 종식되고 현대 한국의 모든 것을 억압해온 분단의 질곡구조가 본격적인 변화의 길로 접어든 지도 6년여가 지났건만 남북한관계에 관하여 단순한 이념이상의 원초적인 반목, 불신 및 분노로 점철된 ‘남남갈등’은 여전하기만 하다. 자주의 정신은 입술로만 되뇌며 오직 미국에 의존한 ‘생존을 위한’ 국제정치만 추구하는 우리(?) 국가가 국익이라는 이름으로 심지어 군인들까지 동원하며 늙은 농민들을 제 땅으로부터 강제로 폭력적으로 내몰고 있는 실정이다. 

   바로 이 시점에, 성년의 세월을 훨씬 넘어 26돌을 맞는 5․18은 우리에게 어떠한 의미인가? 5․18은 도대체 우리에게 무엇을 줄 수 있을까?

   이제는 모두가 알다시피 5․18은 군부독재를 실현하려고 국가권력을 탈취한 신군부에 대항하여 일어선 학생․시민들에게 가해진 엄청난 국가폭력으로부터 인간다움을 지키기 위해 시작된 저항의 투쟁, 즉 항쟁이다. 1980년 5월, 열사들, 부상자들, 투옥자들, 함께 했던 시민들, 그리고 나서지는 못했지만 소리로 몸짓으로 마음속으로 함께하던 모든 한국인들은, 그 모두는 인간성을 말살하는 극단적인 고문과 죽음의 공포를 딛고 일어서 폭압적인 군대의 한가운데를 향하여 돌진했었다. 그들이 외쳤던 것은 가장 기본적인 인간의 존엄성이요, 그들이 지키려했던 것은 국가에 짓눌리지 않는 공동체의 평화요, 그들이 요구했던 것은 국민의 생명과 인권의 보호를 기본으로 하는 민주주의 국가였다.

   돌이켜보면, 1980년 그 시대는 민중에게 묵종할 것을 요구했었다! “서울의 봄,” 그 시대의 소위 ‘지배층’은 박정희의 죽음을 기회로 그 질식할 것 같던 독재의 종료와 민주주의의 시작을 요구하던 국민들에게 안보를 빌미로, 경제를 빌미로, 질서를 빌미로, 권위를 빌미로, 자중하라고 요구했었다. 잘살기 위해서 민주주의는 뒤로 미루자고 고상하게 설교했었다. 그리고 많은 한국인들은 폭력의 지배를 구축해가던 신군부 장교들의 만행에 대해 눈을 감고 귀를 막고, 진실을 가리는 그들의 거짓말에 짐짓 스스로 속아가면서 편안하고 안전한 삶을 꿈꾸려고 하였다.

   그러나 5․18 광주의 민중은 그러한 허위와 굴종을 거부하였다. 그들은 거짓으로 안위를 꿈꾸지 않았다. 그들은 군부의 권력침탈에 정면으로 대항하며 민주를 쟁취하고자 하였으며, 살인적인 군대의 만행을 전하고 분노하며 거리로 나섰다. 그들은 공포를 딛고, 눈앞의 편안함을 딛고, 굴종적인 타협을 거부하며 거리로 나섰다. 그들은 인간으로서 포기할 수 없는 기본적인 가치를 지키고자 목숨을 걸었다. 그들은 의미 없는, 가치 없는 생애보다는 의미 있는, 가치 있는, 목적 있는 죽음의 길을 선택하였다. 5월 26일 밤 도청의 마지막 결사항전을 앞두고 윤상원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끝까지 싸워야합니다....... 우리가 비록 저들의 총탄에 죽는다 할지라도 그것이 우리가 영원히 사는 길입니다.” 바로 이 정신이 1980년 항쟁이후 끊임없이 이어진 민주투쟁을 가능하게 하였고 5월 광주의 진실을 밝히고 민주화의 달성과 끝내는 신군부가해자의 처벌까지 이끌어낸 토대가 되었던 것이다.  

   항쟁의 승리는 어디에서 왔을까? 1980년 5월 18일부터 27일까지의 항쟁 전개과정에서 뽑아낼 수 있는 5․18의 선명한 특징의 하나로는 무엇보다도 공동체 정신의 집약체인 “대동(大同)주의”를 꼽을 수 있겠다. 엄청난 국가폭력에 맞서서 남녀노소, 계급․계층이나 이념의 차이를 넘어서 함께 싸우고 서로 돕고 함께 울고 함께 결정하는 운명공동체, 혹은 ‘절대공동체’를 만들어냈던 5월 광주는 우리에게 함께하는 것의 전형적 가치를 남겨주었다. 그래서 1980-90년대 민주화운동 세력은 1970년대와는 달리 ‘민주’와 더불어 ‘민중’과 ‘평등’을 고귀한 목표로 끌어안고 단순한 정치적 민주화를 넘어서 사회적 모순을 극복하려는 열정으로 부대꼈고 이는 한국사회 진보의 원천이 되었다. 방법적 측면에서도 5․18이후의 운동은 1970년대까지의 지식인 위주의 운동이 아니라 민중의 조직과 전 국민적인 연대를 시도하였고 이는 결국 1987년 6월 항쟁이라는 또 하나의 대동투쟁을 낳고 정치적 민주화를 실현시킨 동력이 되었다.                        

   5․18항쟁이 한국사회에 가져다준 거대한 전환중의 하나는 우리 사회 모순의 뿌리로서의 분단구조에 대한 인식확산과 ‘민족자주’에 대한 깨우침이었다. 항쟁이 있기 전까지 대다수 한국인은, 그리고 많은 민주화운동가들도 독재와 분단 및 한반도의 외세지배간의 깊은 연관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다. 유신 하에서도 대다수 민주화세력은 다른 한국인들처럼 ‘반공’이라는 분단 이데올로기를 맹목적으로 추종하고 있었고 자본주의의 압축적 성장에 따라 자연스럽게 확산되고 있던 계급모순의 시정과 평등을 요구하는 민주주의론을 본격적으로 받아들일 자세는 가지고 있지 않았다. 유신독재의 국가가 누구를 위한 국가인지, 그 사회경제적 기반이 무엇인지에 대한 성찰은 ‘서울의 봄’에서는 겨우 초기단계에 머무르고 있었다. 그래서 여전히 민주주의 투쟁의 주축은 4․19에서 그랬듯이 정의를 요구하는 학생과 지식인이 주축이리라고 믿어왔다. 또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투쟁에서 미국은 우군 혹은 적어도 중립자로 인식되고 있었다.

   그러나 5․18항쟁은 그 발발 배경에서부터 전개과정, 그리고 항쟁이 끝내 도청살육으로 일단 마감될 때까지의 과정에서 군부독재의 후원자 혹은 적어도 방조자로서의 미국의 책임이라는 문제를 정면으로 제기하였다. 항쟁이후 전개된 1980년대 민주화운동의 반미투쟁 및 미국의 책임제기는 외세의 본질을 드러내고 점진적으로 주체적 민주화와 민족자주의 길을 열어가는 역할을 담당하였다. 또 5․18은 “불순세력”에 의한 것, 즉 북한의 위협과 관련이 있다는 군부독재세력의 조작과 선전이 항쟁이후 5․18의 진실을 찾는 투쟁으로 무너져 내리면서, 민주화의 도도한 물결이 분단이라는 장애물을 넘어서는 발전이 실현되었다. 대표적으로 민주화의 중대 고비였던 1987년의 6월 항쟁에서는 북한의 위협이나 ‘불순분자론’이 설 자리를 잃게 되었고, 궁극적으로는 소위 일부 불순세력의 대표격으로 지목되던 김대중이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되고 6․15남북공동선언까지 일구어내는 엄청난 변화가 지난 26년 사이에 일어난 것이다.

   5․18은 오늘의 우리에게 불의에 굴복하지 말라고, 순간의 욕망을 위해 현실에 타협하며 무의미하게 살지 말라고 가르쳐준다. 이 어려운 시대에도 5․18은 우리에게 목적을 향한 삶, 가치 있는 삶, 옳음을 쫓는 삶, 주체적으로 걸어가는 삶을 살아가라고 재촉하며 그 길을 선택하고 계속해갈 수 있는 용기를 북돋아준다. 극단적인 개인주의와 피폐한 인간관계가 넘치는 속에서 길을 잃고 있는 우리에게 5․18은 경쟁을 넘어서, 각종 차별과 구별을 넘어서, 함께하는 공동체, 나눔의 공동체에 대한 기대를 포기하지 말 것을 이야기한다. 소외받고 억눌린 주위에 시선을 돌리고 손을 내밀 것을 요구한다. 공동체를 위한  자발적이고 희생적이며 책임 있는 참여를 격려한다. 5․18은 우리에게 오늘의 왜곡된 엘리트 민주주의를 고쳐나가고 우리의 손으로 아래로부터 민중이 함께하는 진정한 민주주의를 만들어나갈 것을 요구한다. 5․18은 민족자주의 정신으로 분단을 극복하고 통일을 향하여 우리가 나아갈 것을 명령한다. 지난했지만, 엄청난 희생이 따랐지만 끝내는 승리한 5․18은 지금 우리에게 이 모든 것도 그것이 옳다면 마침내는 실현되고 말리라는 것을 확신시켜준다.

   26돌의 5․18은 지금 우리에게 “심상치 않게” 다가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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