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모짜르트가 태어난 지 250년이 되는 해다. 모짜르트가 태어난 오스트리아는 물론이고 전 세계에서 그의 탄생과 업적을 축하하는 각종 음악제나 행사들이 줄을 잇는다. 모짜르트의 생애와 음악세계, 작품 등에 대해 소개한다.<엮은이> 

올해는 모짜르트가 태어난 지 250년이 되는 해다. 모짜르트가 태어난 오스트리아는 물론이고 전 세계에서 그의 탄생과 업적을 축하하는 각종 음악제나 행사들이 줄을 잇는다. 모짜르트의 생애와 음악세계, 작품 등에 대해 소개한다.<엮은이>


Oh! Mozart!!


        2006년 1월 27일은 천재적인 음악가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가 태어난 지 250주년이 되는 날이었다. 모차르트가 태어난 오스트리아의 잘츠부르크는 물론이고 전 세계 이곳저곳에서 그의 탄생 250주년을 기념하는 음악제가 올 한해 풍성히 열릴 예정이다. 

        35세의 젊은 나이에 생을 마감한 이 음악 신동은 미완성으로 남긴 '레퀴엠 (진혼곡)'을 끝으로 620곡이 넘는 작품을 남겼다.  어려서부터 뛰어난 음악성을 보인 모차르트는 3세 때, 이미 누나 난넬이 연습하는 클라비어 곡을 듣고 3도 음정을 알아맞힐 수 있었으며, 4세 때는 한번 들은 곡은 대부분 기억하고 연주 할 수 있었다고 한다.  바이올리니스트였던 아버지를 첫 음악 스승으로 삼아 5세 때 부터 작곡과 클라비어 교육을 받으며 연주 활동에 들어간다. 3세 때부터 이미 신동으로 소문이 난 모차르트는 미처 6세가 되기 전부터 뮌헨을 기점으로 연주 여행을 시작하여 빈 여행에서는 황제 프란츠 1세 앞에서 신동다운 연주를 했으며 왕실 뿐 아니라 수많은 귀족들에게 초대 되어 연주 활동을 하곤 했다. 1763년부터 3년간 긴 연주 여행을 시작한 모차르트는 프랑스에서는 루이 15세 앞에서, 영국에서는 조지 3세 앞에서 연주 하는 등 바쁜 일정을 보낸다. 1769년에서 1772년 사이에는 그의 부친과 함께 이탈리아를 연주 여행하며 작곡 활동에도 박차를 가한다.  이러한 긴 연주 여행을 통해 여러 가지 음악과 음악가들을 접하며 모차르트는 풍부한 자극을 받을 수 있었고, 이는 그의 음악적 성장에 큰 계기가 되었다.  1777년 무렵에 그는 잠시 고향의 궁정 악단의 악장과 교회 오르가니스트로 있기도 했는데, 교회나 궁정 관계자들의 입맛에 맞게 작곡하고 연주 활동을 해야만 했던 그 당시 궁정 음악가라는 직책에 염증을 느끼고 1781년부터 빈으로 진출하여 독립 음악가로 새 출발하게 된다. 그 후로 모차르트는 그의 생을 마칠 때까지 10년간 이곳에서 활동했는데, 화려했던 궁정 음악가로서의 삶과는 달리 가난한 생활 속에서 작곡 활동을 계속 해야 했다.  이 무렵 아버지의 반대를 무릅쓰고 콘스탄체와 사랑에 빠져 결혼하고, 바흐와 헨델의 작품에 영향을 깊이 받으며 모차르트의 작품들은 원숙기에 돌입하게 된다.  1783년이 지나면서 경제적인 어려움은 점점 더 그를 옹색하게 만들고 설상가상으로 평생 아들의 천재성을 위해 평생을 바쳤던 아버지 레오폴트 모차르트가 유명을 달리하며, 모차르트의 어린 자녀들의 잇단 죽음은 모차르트에게 큰 아픔을 준다.  이러한 불행한 상황 속에서도 그는 끊임없이 훌륭한 작품들을 쏟아 낸다. '다 폰테'의 대본에 의한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이 한 예로, 1786년에 완성되어 대성공을 이룬다. 그의 마지막 오페라 [마술피리] 역시 1791년 9월말에 완성해서 성공적인 초연을 치르게 된다. 어린 나이부터 너무 재능을 발휘해서 일까? 30대 초반인 그의 체력은 이미 소진 되어 모차르트가 [마술피리]를 완성시킬 즈음, 레퀴엠 (진혼 미사곡)의 작곡을 의뢰받은 모차르트는 이것을 자기 죽음에 대한 신의 예고라 믿고 열심히 작곡한다. 그러나 끝을 내지 못한 채 1791년 12월 5일, 티프스로 짧은 생을 마친다. 어느 귀족의 도움으로 간신히 최하급의 장례를 치렀으나, 매장은 인부들에게 맡겨져 버려 아무도 그가 매장된 장소를 모르게 되고 말았다고 한다. 

        모차르트의 이러한 극적인 생은 1984년 Milos Forman 감독에 의해 '아마데우스'라는 영화의 모티브가 되기도 했다. '살리에리'라는 화자를 모차르트의 숙적으로 설정하여 그를 모차르트의 재능에 질투심에 불타는 자격지심에 빠진 작곡가로 그리고 있다. 이 영화에서는 레퀴엠의 작곡을 살리에리가 사주한 것으로 되어 있지만 사실 살리에리는 그 시대에 높이 존경받던 궁정 음악가로서 이 영화는 픽션의 성격이 강하다고 할 수 있겠다. 하이든과 더불어 빈에서 주로 활동한 모차르트는 18세기 후반 음악사의 주류를 이루었던 고전주의 음악 양식의 확립에 큰 기여를 했다.  모차르트의 음악은 천진난만한 동심과 더불어 고귀한 귀품을 가지고 있으며, 그의 멜로디는 순수 음악미의 정수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아름다우면서도 그의 음악의 밑바닥에 흐르는 한 가닥의 비애는 그의 순탄하지 못했던 짧은 삶의 고뇌를 비추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겠다.

        이러한 그의 극적인 인생 이야기나, 모차르트가 남긴 수많은 음악 유산들로 인해 클래식을 잘 모르는 사람들도 '모차르트'를 모르는 이는 드물 것이다. 몇 해 전에는 '모차르트 효과'라 하여 태교 음악이나 심리치료 용 음악으로 편집된 모차르트의 음반이 날개 돋친 듯 팔린 적도 있고 그의 탄생 250주년을 맞고 있는 요즘 잘츠부르크에서 발매된 기념주화를 비롯하여 초콜릿에서부터 심지어는 치약 같은 일상품까지 모차르트의 초상화가 그려진 기념품들이 전 세계 적으로 기획 판매 되고 있다. 그야말로 상업주의와 예술의 만남이라 할 수 있겠다.  한편에서는 지나친 물량주의와 이러한 상업화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하지만 모차르트의 고향인 잘츠부르크와 활동 근거지였던 비엔나 현지의 실제 표정은 예상과 달리 차분하다고 한다. ‘모차르트는 항상 우리 곁에 있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니 탄생 250주년이라고 해서 특별히 유난 떨 것 없다’는 것일까. 실제로 잘츠부르크 경제에 큰 도움을 주고 있는 모차르트 기념 사업부의 기념품들은 예년과 다르지 않고, 대신 양질의 음악회들이 열리는 콘서트 장들은 차분하게 객석을 채워나가고 있다고 한다. 잘츠부르크에서 모차르트의 생일날 기사를 전했던 오미환 기자는 "오스트리아 인들은 그저 숨 쉬듯 자연스럽게 생활의 일부로, 그리고 진지하게 모차르트를 만나고 널리 알리려 애쓰고 있다"라고 현지의 모습을 전해 주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올 한 해 동안 기획 되어 있는 모차르트 탄생 기념 연주회가 수십 건에 이른다.  필자는 이렇게 풍부한 기념사업들이 단순히 일회성 이벤트로 끝나게 되거나, 먹을 것 없이 소문만 난 부실한 음악 잔치가 되지 않길 진심으로 바란다.  그리 하여 음악사 뿐 아니라 인간 역사 상 위대한 유산을 남긴 한 작곡가의 탄생 250주년에, 그의 음악적 향기를 곱씹으며, 작곡가의 숨결을 다시금 느껴 보는 의미로서의 알찬 행사들로 채워지길 기대 해 본다. 평상 시 클래식 음악에 관심이 없었더라도, 만물이 꿈틀대며 활기로 채워지는 이 봄날, 모차르트의 음악에 한번 빠져 보는 것은 어떨까?

박재은 음악교육과 시간강사

 

 

저작권자 © 전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