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대통령 선거일이 언제인지 모른다. 나는 도서관에서 "그런 소설"을 가끔씩 빌려보기도 한다. 하지만 정치에 관심이 없다는 이유로, 도서관에서 "고작 환타지나 무협소설"을 자주 빌려읽는다고 해서 비난을 받고 ’타이름’의 대상이 되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다.누군가 나를 "애처롭게"봐 주길 원하지도 않는다.

이런 글들을 대할 때 마다 논리적이라는 생각보다는 ’fantastic’하다는 생각이 먼저 드는 건 왜 일까?
두 가지로 요약해 보고자 한다

첫째,나는 <용봉 칼럼>;의 글쓴이의 어투는 논리적으로 독자를 설득하려고 하기보다는 적당한 수치를 이용해서 독자를 밀어붙이는 어투다. 논리적인 비약과 더불어 지나치게 단정적이고 선동적인 말투는 오히려 반발감을 일으킨다.특히, 투표에 참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대학 행정에 대한 의지가 없음’이라는 판단으로, "환타지나 무협소설"독자들을 결국에는"무서운 공공 범죄자"로 연결 시켜 버리는 글쓴이의 상상력은 최장집교수를 사상 검증 했던 조선일보의 상상력과 비견할만 하다.

둘째,선거권문제나 도서 선택문제는 개인 기본권의 범주안에 있다.고로 이러한 문제를 논할 때는 믿을만한 통계나 사실로 정중히 권유하는 정도의 설득이 적당하다.또한 선택은 개인의 영역이다. 권유 이후 개인의 선택은 타인이 왈가왈부 할 수 있는 성격의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각자 개인의 정치관과 독서 취향이라는게 있다.그저 그러고 싶어서라는 한 개인의말에 글쓴이가 "무슨 수로 반박할 것인지 궁금할 따름이다" 파시스트는 따로 없다. 남의 기본적 취사 선택까지도 간섭하고 억지로 강요하는 그런 사람이 바로 가장 무서운 공공의 파시스트인 것이다.

써놓고 나서 보니 정말 글에 감정이 실린거 같다.근데 사실이다.용봉 칼럼의 타이르는 듯한, 꾸짓는 듯한 어투는 정말 나를 불쾌하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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