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일 오전 용봉포럼에서 ‘패러다임의 변화와 인생 불루오션 전략’을 주제로 강연을 마치고, 오후에는 (재)전남대학교동원장학재단 설립 기념식 및 장학금 전달식에 참석한 김재철 동원그룹 회장을 대학본부 5층 접견실에서 만났다. 바쁜 일정과 고희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김 회장은 시종 밝고 여유가 넘치는 모습이었다. 그 비결은 역시 참치라고 한다.

지난 2일 오전 용봉포럼에서 ‘패러다임의 변화와 인생 불루오션 전략’을 주제로 강연을 마치고, 오후에는 (재)전남대학교동원장학재단 설립 기념식 및 장학금 전달식에 참석한 김재철 동원그룹 회장을 대학본부 5층 접견실에서 만났다. 바쁜 일정과 고희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김 회장은 시종 밝고 여유가 넘치는 모습이었다. 그 비결은 역시 참치라고 한다.  - 엮은이

 

 


‘바다’는 김 회장께는 각별한 의미가 있으실 것 같습니다.


제게 있어서 푸른 바다는 청춘의 장이었고, 젊은 시절부터 생활 자체였습니다. 우리나라가 잘 살 수 있는 길은 수출을 통해서 밖에 달리 길이 없습니다. 바다는 바로 세계와 통하는 길이기도 합니다. 저뿐만 아니라 우리 국민 모두에게 각별한 의미가 있습니다. 저는 지금도 마음이 답답할 때면 바닷가에 섭니다. 거짓말처럼 마음이 트여오곤 합니다.


평소 우리나라가 대륙을 지향할 때 쇠했고, 해양을 지향할 때 흥했다는 점을 강조하셨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활발하게 바다로 나갔던 백제, 신라 말기에는 중국 연안의 많은 땅을 우리나라 사람들이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아마 그때 선조들이 점유했던 땅이 지금 우리가 사는 땅보다 훨씬 넓을 것입니다. 장보고는 동북아 해상을 장악하고 있었습니다. 15세기에 들어서야 비로소 아메리카 대륙이 발견되었는데 그것은 대서양이나 태평양과 같은 새로운 바다의 발견이기도 합니다. 장보고의 시절에 그 먼 바다는 개념 밖에 있었고, 동북아 해상이 세계의 전부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바다를 제패한 나라가 세계를 제패한다는 것은 세계의 71%가 바다라는 점만 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 땅에 살고 있는 생명들의 원천, 모천 역시 바다가 아니겠습니까.


‘해상왕 장보고 재조명 평가사업 추진 위원회(1998)’와 ‘해상왕 장보고 사념사업회(1999)’를 꾸리시고 또 각각 위원장과 재단 이사장을 맡고 계십니다. 장보고가 소설과 드라마로 재구성되는데 ‘산파’ 역할을 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얼마 전 종영된 ‘불멸의 이순신’과 더불어 바다에 대한 국민적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데 지대한 역할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감회가 남다르실 것 같습니다


아주 젊어서 바다에 나갈 때 품었던 바다가 우리의 나갈 길이라는 생각에는 조금도 변함이 없습니다. 우리 선조들이 일찍 바다로 눈을 돌려 이름 없는 섬들을 많이 차지했었더라면 우리나라 땅이 많이 넓어졌을 텐데 라는 생각을 해본 적도 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그 드넓은 바다는 무주공산입니다. 그 바다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래서 술을 마실 때도 우리들은 ‘건배’하지 않고 ‘바다로 미래로’ ‘바다로 세계로’라고 외칩니다.


하버드 대학에서도 수학을 하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배움에 대한 열정만큼 교육에 대한 남다른 관심과 애정으로 1979년에 동원육영재단을 세워 인재양성사업을 활발히 전개하고 계십니다. 대학 교육이 지향해야 할 바를 듣고 싶습니다.

 

대학교육은 대학만의 문제일 수는 없고 정책의 문제이기도 해서 짧은 시간에 이야기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닙니다. 교육이 살아야 나라가 산다는 것을 늘 새기면서 나름대로 교육에 투자를 아끼지 않고 있습니다. 서울대, 고대, 연대에 수시로 강의를 나가고 있고, 또 이화여대의 겸임교수이기도 합니다. 고려대 재단 이사를 맡고 있으며, 광주과기원 이사장, 부경대 명예총장도 제가 교육과 맺고 있는 인연들입니다. 기회가 있을 때마다 ‘시험치는 교육, 시험치기 위한 교육을 하지 말아 달라’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인생은 결코 시험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오늘 ‘(재)전남대학교동원장학재단’ 설립식을 갖고 또 장학금 전달식도 가졌습니다. 동원장학생으로 선발된 학생들에게 특히 당부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실 것 같습니다.


학생은 공부를 잘해야 하지만, 그보다도 더불어 사는 공동체, 사회에 내가 어떻게 기여할 수 있을 것인가를 늘 생각하며 공부를 해야 합니다. 캐네디 대통령이 취임 연설에 말한 바와 같이 국가와 사회가 나에게 무엇을 해줄 것인가를 바라기 전에 내가 국가와 사회를 위해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고민하는 그런 마음가짐을 가져 주었으면 합니다.


대학생에게 참치는 어느 때부턴가 참 친근한 벗이 되었습니다. 농촌활동, 수련회 때면 쌀, 김치 그리고 참치캔을 챙깁니다. 참치는 어떻게 먹으면 제일 맛있게 먹을 수 있는지 비법이 있으면 하나만 알려주십시오.


뭐니 뭐니 해도 김치찌개로 먹으면 제일입니다. 요즘도 집에서 있으면서 입맛이 없고 하면 김치찌개를 끓여 달라고 해서 먹습니다. 언제 먹어도 맛있습니다.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소위 지도층이 연루된 사건이 터질 때마다 듣는 이야기입니다. 이것과 함께 조금 생소하게 국민의 톨러런스(관용) 정신도 중요하다고 강조하셨습니다.


로마가 천년을 간 것은 지도자가 위대해서가 아니라 국민들이 위대해서입니다. 지도자는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국민이 키워내고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아홉 가지를 잘하다고 한 가지를 잘못하면 핏대를 세워 욕하고 깎아 내리기 일쑤입니다. 아홉 가지를 못하더라도 한 가지를 잘 할 때 격려해주고 힘을 북돋워주는 관용 정신이 우리 힘으로 우리의 지도자를 키워내는 일의 시작입니다. 축구 선수는 축구를 잘하면 됩니다. 사생활이 어떻게 성장 환경이 어떻게 하는 것은 정말 소모적인 흠잡기일 뿐입니다. 고함지르고 분통 터뜨리며 사는 인생은 본인의 발전에도 전혀 도움이 되질 않습니다.


이 관용의 정신은 평소 강조하시는 ‘화和’의 정신과도 통하는 면이 많은 것 같습니다.


옥편을 찾아보면 ‘화(和)’는 뒤집어서 ‘화(口禾)’로도 쓴다고 나와 있습니다. 입장이 바뀌고 처지가 바뀌면 말을 바꾸는 경우를 많이 접하게 됩니다. 먼저 다른 사람의 말을 경청하는 것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벼禾’ 뒤의 ‘말(口)’인 화(和)와 ‘벼禾’ 뒤의 말인 ‘화(口禾)’가 언제나 일관성을 유지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화(和)’의 기본 정신입니다.


전남대학교는 지역의 중심대학으로서 지역성을 강화하고 특화시켜야 합니다. 동시에 이 ‘지역성’의 한계를 벗어나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대학으로 세계 속에 우뚝 서는 대학으로 거듭나야할 과제도 안고 있습니다. 동원그룹을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수산 기업에서 세계를 대표하는 해양기업으로 이끄셨는데 이 딜레마를 슬기롭게 극복할 수 있는 고언을 듣고 싶습니다.


어느 지역이나 개인이 자기만의 특성을 가지는 것은 더 없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거기에 자족하면 스스로에게 갇히게 됩니다. 그래서는 세계화, 개방화, 다원화된 사회에서는 제 역할을 담당할 수 없습니다. 개인의 특성화는 보다 넓은 세계를 지향하는 추동력으로 모아져야 합니다. 세계화(Globalization)와 지역화(Localization) 합쳐 글로칼리제이션(Glocalization)이라는 신조어를 사용하기도 합니다. 개인들의 다원화, 특성화와 그 개인들을 힘을 역동적으로 모아 세계를 향해 나아가야 합니다. 앞서도 말씀드렸지만 우리나라의 미래는 세계와 교역을 통해서만 환하게 열릴 수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상품을 세계적인 수준으로 만들어야 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러나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사상도 문화도 세계화를 이뤄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전남대 역시 타지방에서 많은 학생들이 가고 싶은 대학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끼리만 잘 해서 이룰 수 있는 발전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지금도 한 달에 십수 권을 책을 독파하신다고 들었습니다.


처음에 원양어선을 타고 외국에 나가서 그곳 사람들을 만났을 때 도대체 할 수 있는 이야기가 없었습니다. 문학도 예술도 정치도 아는 것이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우리 동네 이야기며 내가 다닌 학교 이야기를 할 수도 없는 일이었습니다. 가난한 대학생활을 보낸 터라 폭넓은 교양을 쌓을 기회를 많이 갖지 못한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돈이 없어서 가난한 것보다 내가 아는 것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느끼는 빈곤감은 비교할 수 없이 컸습니다. 그때부터 배가 일본에 정박하면 제일 먼저 헌책방으로 달려가 저울로 떠서 파는 책을 한보따리씩 사서는 배 위에서 집에서 닥치는 대로 읽었습니다. 사회, 예술, 정치 심지어 그 당시에는 국내에서는 읽을 수 없었던 사상에 관련된 책들도 읽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쌓인 지식을 기반으로 글을 쓰게 되었고 교과서에 실리기도 했습니다.


끝으로 젊은 대학생들에게 당부의 말씀 한 마디 부탁드립니다.


대학생활의 중점은 자신을 풍요롭게 만드는 데 두어야 합니다. 우리가 대학을 다닐 때는 정말 가난해서 여유라곤 조금도 없었습니다. 지금도 어렵다, 어렵다 하지만 우리가 공부할 때와 같은 절대 빈곤은 없습니다. 가까운 아시아의 여러 나라들만 돌아보아도 우리나라만큼 젊은이들이 자유롭게 자신을 펼칠 수 있는 기회를 많이 갖고 있는 나라는 없습니다. 인생에서 자신에게 투자할 수 있는 시간을 대학시절만큼 많이 가질 수 있는 시절은 다시 없습니다. 고단하고 힘들다는 것은 살아있다는 증거입니다. 누군가도 이야기했다지만 나중에 죽고 나면 원 없이 편안하게 누워서 쉴 수 있지 않겠습니까. 주어진 여건에 대해서 불만을 갖고 불평하기에 앞서, 주어진 여건을 최대한으로 활용해서 자신을 풍요롭게 만들어 달라고 당부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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