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끗희끗한 머리, 눈가에 깊게 패인 주름, 어눌한 말투. 지난 15일 강연회를 하기 위해 전남대학교를 찾은 임권택 감독의 인상이다.

텔레비전을 통해 비춰진 엄하고 차가운 모습과는 달리 환하게 웃으며 관중에게 향해 손을 흔드는 모습이 마치 옆집 할아버지처럼 인자하기만 하다.

"숭일중학교에 다니다가 중퇴를 하고 열 일곱에는 가출을 했다"는 어린 시절 이야기로 말문을 연 그는 담담한 목소리로 그의 영화 인생에 대해 말하기 시작했다. 가출 후 부산으로 가서 우연찮게 영화계에 발을 들여놓게 된 임 감독은 데뷔 초 10년 간 50편의 영화를 찍었다. 그는 "그 시절에는 먹고살기 어려워 작품성보다는 오직 흥행을 위한 영화를 만들었다"며 "줄거리도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서 대충 만든 영화들이었다"고 그 시절 자신의 영화에 대해 ’저급한 영화’라는 혹평을 한다.

하지만 그는 80년대 들어 영화 ’만다라’를 기점으로 ’한국적 개성과 아름다움’에 대한 깊은 성찰과 깨달음을 통해 그의 영화인생의 전환점을 마련하게 된다. "한국인이 아니면 만들 수 없는 영화를 생각하게 됐다. 세계 어디에 내 놓아도 손색없는 한국의 개성과 아름다움이 살아나는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며 "내가 살고 있는 지역의 삶과 전통을 영화로 만들어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는 임 감독은 그러한 각성을 통해 이후 ’서편제’나 ’취화선’ 같은 영화를 만들어 내는데 초석을 마련했다.

인간의 고뇌와 끝없는 깨달음의 세계를 표현한 ’만다라’부터 정점을 향해 질주하는 예술가의 처절하고도 애달픈 삶을 노래한 ’서편제’, 수없이 영화로 제작된 춘향전을 판소리와 조화시켜 임 감독의 방식으로 재현한 ’춘향뎐’, 한국화를 스크린에 옮겨놨다는 평가를 받은 ’취화선’까지 그의 영화에는 한국만의 독특한 문화와 전통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일반적으로 전통문화에 대해 잘 안다고 생각하며 관심을 갖지 않는다"는 임 감독은 "우리 고유의 전통문화가 세계 속에서는 개성 있고 특별할 수 있다"며 "전통에 관심을 갖고 전통을 찾는데 힘을 쏟고 발전시켜야 한다"고 말한다.

"영화를 왜 만드냐?" 는 질문에 "단지 영화가 좋아서 영화를 만드는 것이다"며 웃음을 지으며 "영화를 통해 우리들 삶을 풍요롭게 하고 질을 높이는데 기여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며 포부를 밝힌다. "스스로 만족할만한 영화는 못 만들 것 같다"는 임 감독은 "취화선의 장승업처럼 끝임 없이 노력을 하며 영화인생을 살고싶다"고 말했다.

미래를 고민하는 학생들에게 그는 "삶의 방편일 뿐인 취직 때문에 시간을 허비한다는 것은 그만큼 손해가 아니냐"며 반문한다. "세상에 못 넘어 갈 산은 없다. 못 넘어 갈 것으로 보이는 산일지라도 넘고자 하면 넘을 수 있는 것이 산이다"며 "희망을 잃지 말고 자신의 꿈에 소신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고 당부하는 임 감독의 모습에서 여유와 치열함이 묻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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