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 고성항으로 - "오늘에야 찾을 날 왔다 금강산은 부른다"
해질 녘 속초항을 떠나 언제 북방한계선을 넘었던가. 칠흙같은 어둠속에서 멀리 불빛이 보이기 시작한다. 춘향호의 갑판위에서는 멀리 보이는 고성항의 불빛과 더불어 아름다운 선율이 울려퍼진다. "수수만년 아름다운 산 - 더럽힌지 몇몇 해/ 오늘에야 찾을 날 왔다 금강산은 부른다♬" 아줌마 노래단 허정숙 씨의 ’그리운 금강산’은 북녘 땅을 눈앞에 앞둔 이들의 마음을 잔잔하게 동요한다.
이어 신동호 시인은 "이제 우리 한몸이 되고/ 한 마음이 되어서/ 비록 하나가 되자/ 통일이라 이야기하자"며 북녘땅을 밟는 설레임을 표현한다. 드디어 고성항에 도착했던가. 꿈에 그리던 북녘땅이던가. 하지만 밤은 얄궂게도 금강산과 북녘땅의 체취를 살포시 감춘다.

#13일 개막식 - 청년학생들의 설레이는 첫 만남
새벽 내 비가 내렸는지 갑판이 촉촉하다. 먼 산으로 금강산의 알록달록함이 보이고, 바위위에 써진 글발하며 멀리 보이는 도심, 자전거를 타고 어디론가 가는 아이들의 모습까지 이곳이 북녘땅이로구나. 이 만남을 환영이라도 하듯 하늘은 이내 곧 맑게 갠다.
단일기를 흔들며 ’반갑습니다∼’라는 노래와 함께 김정숙 휴양소 운동장으로 드러선다. 환소성 소리와 함께 동포를 만난 기쁨에 젊은 처녀의 손을 덥썩 잡고, 자리에 앉는 이가 있었으니 황기조 군(김일성 종합대학 경제전공 박사과정 1년)이다. 비단 우리뿐 아닐세. 삼삼오오 처녀, 총각이 짝을 이뤄 앉는구나. 소곤소곤 속삭이기도 하다가 청년연단에서 힘차게 지성희 양(영화대학 배우)이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튼튼히 짊어지고 나가야 할 통일강령, 통일의 이정표는 6·15 공동선언이다"고 외치자 다들 일어나 "우리 민족끼리 통일하자", "청년학생들이 앞장서서 조국통일 완수하자"며 다시 한번 자세를 가다듬고 6·15 공동선언의 중요성을 새긴다.
"통일된 조국을 우리에게 물려주세요"라고 외치는 북측 소년 예술단의 절절한 목소리는 이 만남을 더욱 의미깊고 설레이게 한다.
축하공연 내내 공연보다는 서로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던 황군과 솔밭에서 점심식사를 하는 시간. 무리지어 앉아 자기소개도 하고, 노래도 부르며 술이 아니라 청량음료라는 맥주도 시원하게 들이킨다. 남자 학생들은 북과 남의 담배도 바꿔피워 보는데 남측 학생이 담배 맛이 어떠냐고 묻자 북측 대학생 하는 말 "아직 1cm도 안피워봤습네다"며 웃음꽃을 피운다.

#13일 오후 체육대회 - "우리 선수 잘한다"
’통일선봉’팀과 ’통일청춘’팀으로 나눠 치러진 축구경기. 하지만 축구보다 재미있는 것은 배꼽을 쥐게 하는 응원단장의 응원이다. "우리 선수 잘한다", "용기를 내어라" 북측대표단의 오흥철 군(연극영화대학)과 고금철 군(평양기계대학)이 서로 뒤질세라 익살스런 몸짓과 재치있는 농담으로 응원단들의 얼굴에 함박웃음을 짓게 한다.
축구는 공평하게도 2 대 2로 끝났다. 통일청춘팀의 축구선수로 참가해 골을 넣은 북측 대표단의 오금철 군(김형직 사범대학 3학년)은 "하나의 공을 차면서 22명의 마음이 하나로 합해진 것 같다"며 미소짓기도.
통일 오작교 건너기, 통일장애물 극복경기, 통일잔치상 물고기 잡기, 3km통일 달리기, 통일숫자 맞추기 등 체육오락 행사에는 남북해외 동포가 한팀이 되어 달리고, 또 달린다. 때론 장애물을 극복하며, 때론 서로 도와가면서 ’하나’가 된다. 3km달리기 여자부문에서 우승을 한 리송심 양(통계전문대)은 "이렇게 만나니 참 좋다. 통일 조국을 위해서 열심히 뛰어야겠다"며 소감을 말하기도 한다.
이 후 남측 대표단은 금강산 온천에서 신선놀음을 한 뒤, 금강산여관에서 남북해외 환영 연회를 가졌다. 북측에서 유명하다는 털게찜과 섭죽, 삼색 나물이, 그리고 가슴을 찌릿하게 하는 술 한잔이 남북해외 청년학생들의 가슴을 다시 한번 적시며 금강산의 밤은 저물어 간다.

#14일 폐막식 - "우리도 통일기차 타고 달리자우"
남과 북의 노래 대회가 열리는 내내 량일금 양(영화대학 영화평론 4년)이 북측의 노래를 세세히 설명해 준다. ’휘파람’을 부른 김은희 씨와 ’심장에 남는 사람’을 부른 양성철 씨의 노래가 일품이다. "다시 만나도, 헤어진데도 심장에 남는 사람아" 또박또박 가사를 되새기며 다시 노래를 불러주는 일금이 언니의 친절함이 새삼 따뜻하다. 남측 노래단 ’아리랑’과 ’아침의 노래’, ’우리나라’에 대한 설명은 당연 내 몫.
노래 공연의 막바지에 이르러 일금이 언니가 내 손을 부여잡고 앞으로 나가 덩실덩실 춤을 추는데, 예전에 무용을 했었다는 언니를 따라 하나씩 하나씩 하니 흥이 돋는다.
하나둘씩 사람들이 나오고, 이제는 통일기차를 만들어 달린다. 서로의 어깨에 어깨를 rue고, 허리를 부여잡고 신나게 달린다. "조국" "통일" 누가 외치기 시작했는지 모를 구호소리에 다들 소리높여 칙칙폭폭 달리는 것에 일금이 언니가 말한다 "우리도 어서 통일기차 타고 달리자우"

#14일 오후 금강산 산행 - "헤어짐은 다시 만나기 위한 약속"
이제 막 가을옷을 차려입은 금강산, 울긋불긋한 단풍과 맑은 냇물소리가 청년학생들을 반긴다. 다시 한번 짝을 찾아 산길을 오르는데, 얼씨구∼이것이 말로만 듣던 금강산이로구나.
엿보는 이도 없고, 둘 만의 밀회를 즐기는 이들, 무슨 이야기에 저리도 다정하랴. 연애이야기, 대학생활 이야기, 좀더 깊어지니 대선이야기에 미선이 효순이 이야기도 나오는구나. 하지만 뭐니뭐니해도 이틀동안 그리고 금강산 깊숙이에서 한 이야기는 모두 ’통일이야기’일세.
조선봉 양(김일성 종합대학 경제학부3)은 조심스럽게 "남측에서 대선을 어떻게 준비한답니까. 6·15 공동선언을 이행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합니다"며 "우리가 통일의 선봉대라고 하는 청년학생들이 더 열심히 6·15 공동선언 관철을 위해 노력하자"고 제안하기도 한다.
가을 단풍 아래서 함께 사진도 찍고, 흔들다리에서는 손도 붙잡아주며 청년학생들의 즐거운 산행은 끝났다. 이별식을 하며 "다시 평양에서 만납시다" "통일되면 꼭 결혼합세다"라고 말하는 이들의 얼굴마다에 눈물이 그렁그렁하다. "다시 만나자"고 약속하면서도 말이다.
재일교포 3세 김지자 양이 "한국어를 잘 몰라서 많이 혼났는데, 한가지 가슴으로 느낀 단어가 하나 있다. 그것은 ’하나’라는 말이다"라는 말처럼 통일이야기로 붉게 물든 금강산. 미래를 짊어질 청년학생들의 만남은 ’하나됨’의 공간에서 6·15 관철의 희망을 내보이는 자리로 막을 내렸다.

/이국현 기자 madpress@hanmail.net

저작권자 © 전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