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해 낸 사람이 있다. 그는 등을 보인채로 헐떡이고 있었다. 상의가 흠뻑 젖어 그의 등이 숨쉬는 것을 누구나 확인할 수 있었다. 훔쳐보기에 능란한 이라면 그가 혀를 내밀어 입 주위의 거품을 닦아 내는 것을 관찰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는 선천적으로 뒤를 돌아볼 수 없는 목을 가졌다. 할 수 없이 그는, 쫓는 대상을 확인하지 못한 채 달아나기만을 반복했다. 막다른 길에 이르러 그는 쫓는 이의 그림자를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림자에 놀라 그는 자신의 살을 베어 먹기 시작했다. 그림자는 단지, 어둠이었다. 어둠 속에서 그는 자신의 살을 베어 먹고, 찢어 먹고, 태워 먹었다. 까맣게 그을린 그의 뼈들만이 어둠 속에 남았다.   생각해 낸 사람이 있다. 그는 등을 보인채로 헐떡이고 있었다. 상의가 흠뻑 젖어 그의 등이 숨쉬는 것을 누구나 확인할 수 있었다. 훔쳐보기에 능란한 이라면 그가 혀를 내밀어 입 주위의 거품을 닦아 내는 것을 관찰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는 선천적으로 뒤를 돌아볼 수 없는 목을 가졌다. 할 수 없이 그는, 쫓는 대상을 확인하지 못한 채 달아나기만을 반복했다. 막다른 길에 이르러 그는 쫓는 이의 그림자를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림자에 놀라 그는 자신의 살을 베어 먹기 시작했다. 그림자는 단지, 어둠이었다. 어둠 속에서 그는 자신의 살을 베어 먹고, 찢어 먹고, 태워 먹었다. 까맣게 그을린 그의 뼈들만이 어둠 속에 남았다. 그러나 그 뼈들은 결국 어둠 속에 있었기 때문에 단지, 어둠이라고 불릴 뿐이었다.

이제 그는 한낱 4B 연필로 스케치한 그림이 되었으며 자신의 몸을 먹어치운 입으로 존재했다. 그저 입으로만 남은 그를 두고 “그의 입”이라는 단어가 부적절함을 잘 알고 있으나, 어쨌거나 그의 입에서, 아니 입인 그에게서 “말”들이 기어 나왔다. 그 말들은 두루마리 화장지의 끝을 잡고 천천히 풀어내는 모양으로 가냘프게, 그러나 쉼 없이 기어 나왔다. 사람들은 그 말을 소설이라 불렀다. 혹은 그 말들 스스로가 소설이 되었다. 그것들에는 곧 「생명연습」, 「무진기행」, 「서울 1964년 겨울」 등의 이름이 붙었다. 18년 동안 그의 입에서 두리번거리며 소설들이 기어 나왔고, 19년째에 그의 입에서는 신의 별칭인 하나님이라는 단어가 나왔다. 그 단어가 그의 입에서 나온 최후의 단어였으며 당연히 그의 입은, 아니 입은 그는 그림자에게 -즉 단지, 어둠에게- 잡아 먹혔다.

스무 살로 기억한다. 그때 나는 부질없는 이상주의자들을 할퀴고 싶었다. 초등학교 이후로, 그러니까 내가 TV 만화영화의 내용을 이해하게 된 이후로, 나는 늘 악당들이 불쌍했다. 그들은 어차피 싸움에 지거나, 추방당하거나, 죽거나, 결국엔 벌을 받았다. 처음엔 그들이 간혹 우위를 점할 때도 있으나 그건 나중 벌을 위한 초석에 불과했다. 승리자는 늘 주인공이었고, 어떤 정의였으며 보나마나 뻔한 결말이었다. 그럼에도 어린 내가 그 만화영화들을 끝까지 볼 수밖에 없었던 것은 진실로 악당들이 불쌍해서였다. 단 한번이라도 그 악당들이 결말에 가서 승리하는 모습을 보고 싶어서, 어차피 지고 말 그들이 그들의 운명을 거스르는 모습을 보고 싶어서였다. 그러나 처음부터 주인공이 아니었던 그들은 끝까지 주인공이 아니었다. 나는 더 이상 꿈과 희망을 준다는 이야기들을 믿지 않기로 했다.

그리고 나는 스무 살이 되었다. 그때 나는 확인되지 않은 미래를 더 나은 미래라고 믿는 이상주의자들을 만났다. 그들은 많은 곳에서 많은 노래를 불렀으며 꿈과 정의, 희망을 품는 자들이었고 주인공이었다. 물론 그들은 승리자가 되거나 되어야하며 그리하여 보다 몇 배의 “악당”들을 처벌할 것이었다. 모든 이들이 미래를 꿈꾸고 있었기 때문에 그때 나는 ‘더 이상 미래를 꿈꾸지 않는 자’이고 싶었다. “네 삶의 주인공은 바로 너”라고 호령하는 선배들에게 나는 “아니요, 전 철저하게 소외된 인간이고 싶어요”라고 이야기해야 했다. 그때 내가 원했던 것은 그들을 윽박지르고 힐난하며 얼굴과 가슴을 빈번하게 할퀴는 것이었다. 어쩌면 단 한마디 -집어치우라고!- 였을 수도 있다.

찾을 수 없거나 찾지 말아야 할 답을 찾으려 헤맬 때, 길을 안내해 주었던 이는 오래전 단지, 어둠 속의 입이었던 자였다. 그는 김승옥이라 했다. 그의 기록을 펴자 동시에 어둠 속의 입이 벌어졌고 그 입은 「무진기행」을 읽어주었다. 거기에는 처음부터 악당이었던 자가 더 완전한 악당이 되는 과정이 나와 있었다. 차례로 과장된 슬픔을 연출하고 거짓된 울음을 짓는 법을 「생명연습」과 「누이를 이해하기 위하여」가 가르쳐 주었다. 그리고 「서울 1964년 겨울」은 어느 때 억지로 웃어야 하는지도 알려주었다. 나는 그것들을 소설이라 부르기로 결심했다. 그때 나는 벌써 스무 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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