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곡(兮谷) 최순우 선생은 잘생긴 분이셨다. 사십 평생을 박물관에 몸담고서 청자니 백자니, 회화니 조각이니, 하는 우리의 문화유산에 묻어나는 잘 생긴 한국미를 찾아내셨으니 자신이 아예 사랑한 전통미의 멋과 맛을 닮아 버리셨다는 생각마저 든다. 그처럼 천연스럽게 ‘어리무던’한 한국적인 조형미와 닮은 얼굴을 예나 지금이나 찾기 힘들게다.

25년 전, 그러니까 내가 막 국립중앙박물관에 입사하여 미술사 공부를 하던 햇병아리 시절, 박물관의 유물들을 대하는 것과 동일하게 고(故) 최순우 관장의 매혹적인 자태를 마주할 수 있는 일은 큰 행복이었다. 출근하시면 곧바로 전시실을 한바퀴 돌고 관장실로 들어가시는 뒷모습을 보며, 우리 것에 대한 그분의 돈독한 애정을 흠모하곤 했다. 그때 나는 그분의 그늘 아래서 미술사에 빠져들게 되었다.

혜곡 선생은 멋쟁이셨다. 흔히 전통미하면 고루한 것으로 치부돼 사람조차 고루하게 되는 경우도 많다. 허나 선생은 우리 전통미술의 간결미와 현대미의 동질성, 조화에 늘상 심취하셨던 분이다. 이는 김환기, 이중섭, 장욱진, 이상범 등 당대 화가들과의 교우와 그들 작품에 대한 평가에도 잘 드러나며 조선시대 선비의 갓끈에 담긴 멋의 풍류를 현대 정장의 넥타이에서 찾는 대목에서도 빛난다.

그는 집무실이나 생활공간도 언제나 정갈하고 세련된 꾸밈새를 갖추고 사셨다. 한국적인 아름다움, 더 나아가 인간의 본질적인 아름다움을 몸소 삶의 일부로 체현하신 것이다. 그런 때문인지 선생의 우리 미술에 대한 글은 몸에 사무치는 표현으로 한국미의 생명력을 불러 일으킨다. 한국의 자연과 조형에 그토록 적절히 어우른 독특한 묘사방식은 우리말과 글의 아름다움을 뽐내게 한다. 당대의 어느 미술사가도 범접할 수 없고, 이루지 못한 독특한 위업을 남기셨다고 생각된다.

그는 한국미의 본바닥을 흐르는 선과 음률의 흥겨움, 그리고 익살을 찾아내어 우리 것의 건강하고 정직한 아름다움을 펼쳐 내셨다. 석굴암 본존의 장대하고 존엄한 원만미부터 풀꽃과 같은 우리 자연의 청순미에 이르기까지, 잘생긴 옛 선비의 담담한 품위와 지조의 아름다움부터 장터 촌부의 소탈미까지, 특히나 도자기와 목기 등 공예문화와 건축문화의 생활미까지 그 분의 눈길이 닿지 않은 것이 없었다.

‘백성들의 고혈’로 완공된 경복궁에서 ‘한가닥 불평도 불만도 비치지 않는 굴뚝의 쌓음새’를 보고 ‘참 우리백성은 좋은 백성이로구나’를 인식하는 따뜻한 마음은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선생만의 혜안인 듯 싶다.

‘나는 내 것이 아름답다’는 몇몇 도록이나 선생의 유고 선집인 ‘무량수전…’외에는 선생의 흔적을 찾기 힘든 상황에서 ‘한국미에 미쳐 살았던’ 선생의 인간미가 흠뻑 묻어나는 산문집이다. ‘무량수전…’이 미처 몰랐던 한국미의 아름다움을 속속 깨우쳐 주는 글이라면 ‘나는 …’은 그러한 아름다움을 볼 수 있는 마음씨를 엿보게 하는 책이다. 돌에 물을 주며 바라보고 기르는 모습, 김장 무를 잘라 내 키운 무순이 피워 낸 보랏빛 꽃에서 간절한 생명을 읽는 마음씨, 시든 가을 풀숲에서 용담꽃을 못 견디게 그리워하는 모습에서 그의 섬세한 감성을 읽게 된다.

또 중년 남자들끼리 손목시계를 바꿔 차며 석별의 정을 나눈다든지, 당나라 때 서역에 산 것으로 보이는 여인의 미라가 전쟁통에 또다시 갈가리 부서진 데 분노하고 허탈해 한다든지, 피난 가느라 남겨두고 갔던 개 바둑이와 해후하며 눈물 흘리면서 자신을 부끄러워 하는 모습을 볼 때 선생의 속정에 반하게 된다. 이 책은 아름다운 인간 혜곡 선생을 통해 우리가 진정 아름답게 사는 길을 열어주고 있다.

이태호 교수(미술사)·iya75@hanmail.net)
(동아일보 2002. 8.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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