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전협정도 맺어지기 전인 1952년 1월 1일, ‘국립전남대학교’는 발족하였다. 당시 우리가 직면한 대한민국의 현실은 참담 그 자체였다. 오랜 식민시대와 역사상 최대 비극이었던 한국전쟁으로 인해 전 국토와 산업기반은 파괴되었고, 조국은 분단되었으며, 국민은 국제기구의 식량원조에 의지해야 하는 세계최빈국의 상황이었다. 그 폐허 속에서 민족의 정기를 바로 세우고, 우수한 인재 양성을 위해 이 지역 최고 고등교육기관은 화강석과 나무로 덧댄 소박한 학사에서 5개의 단과대학으로 출발하였다. 그렇게 전남대학교 건학 70년은 시작되었다.

그 70년 사이 대한민국은 세계 10대 경제대국으로 성장했고, 식민 지배를 당했던 나라 가운데 유일하게 ‘30-50클럽’ 국가의 반열에 올랐으며, 민주주의 가치를 실현한 국가로 당당히 인정받고 있다. 어떤 면에서 전남대학교는 대한민국의 발전과 궤적을 함께 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오늘날 전남대학교는 18개 단과대학에 재학생 3만, 졸업생 25만, 교원 1200명에 직원 600명, 그리고 240개 동의 학사 및 부속시설을 갖춘 3대 거점국립대학으로 성장하였다. ‘진리, 창조, 봉사’의 교시 하에 전남대학교는 수많은 인재를 양성하였고, 우수한 연구 인력을 배출하였으며, 지역이 사랑하고 자부하는 교육기관으로 자리매김하였다. 이 모든 과정은 권위주의 정부의 압제와경제적 양극화, 그리고 지역 불균형과 차별이라는 짙은 그늘과 모진 난관을 해쳐온 결과이기에 더욱 의미가 깊다. 특히 1980년 5월 전남대가 촉발하고 지역사회가 온몸으로 품은 민주화운동의 희생은 너무도 크기에 더욱 소중하고 빛이 난다. 그때, 그리고 그 이후로도 전남대학교는 ‘진리와 정의의 빛’으로 구심점이 되어왔다.

그러나 급격한 학령인구 감소와 급변하는 4차산업혁명의 전환, 그리고 대(大) 펜데믹 이후 전개될 뉴노멀시대에서 우리는 교운을 건 기로에 서있다. 미래형 학사제도 구축에 더욱 박차를 가하고 사회와 교육수요자 맞춤형 교육과정을 혁신적으로 개편해야 한다. 교육과 연구라는 대학의 전통적 기본 소임을 넘어 지역 상생 발전을 위한 산학협력, 평생교육, 지역혁신플랫폼 사업을 우리 대학이 선도하고 있으며, 미래 신산업 부흥을 위해 소프트웨어, 인공지능, 에너지신산업 사업을 이끌고 있다. 지난 70년 전 실업 교육과 전문 교육에서 출발했던 전남대학교는 이제 AI융합대학, 데이터사이언스대학원, 그리고 미래선도형 최첨단 학과를 대거 신설하는 등 명실공히 지식생태계를 선도하는 교육과 연구 공동체로 거듭나고 있다.

기나긴 중세의 암흑기 동안 유럽은 교권이 세속 권력을 능가하고, 신비주의와 종교가 지배하면서 이성과 과학은 침체되었다. 이에 대한 반발로 14세기부터 피렌체를 중심으로 이성과 합리주의를 회복하고 찬란했던 그레코-로망의 전통을 계승하자는 소위 르네상스운동(문예부흥)이 전개되면서 근대 역사는 태동하였다. 그때 에라스무스가 주장하며 르네상스운동의 모토가 된 것이 그 유명한 “다시 근본으로(Ad Fontes)!”였다. 건학 70년을 넘어 100년을 향해 웅비하는 즈음, 우리가 다시 견지해야 할 가치는 무엇일까. 지난 70년간 우리가 성장하고 혁신할 수 있었던 그 역량의 기저에는 ‘교육과 연구, 그리고 지역 사회와 동행한다’는 우리의 근본 정도와 가치가 함께 했기 때문일 것이다. 《한서》 〈형법지〉에서는 혼란한 시대에 난관을 극복할 지혜로 ‘정본청원(正本淸源)’을 제시하였다. 이미 전남대라는 느티나무는 단단한 뿌리를 깊이 내리고 무성한 숲으로 넉넉하게 주변을 포용하고 있지만, 그럴 때일수록 다시 ‘뿌리를 바로 세우고, 원천을 맑게’한다면 그 어떤 어려움도 극복하고 더욱 풍성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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