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대선을 100여일 앞두고 정치권에서 2030 청년세대를 각자의 이유로 호명하고 있다. 정치가 청년을 찾는 계절이 돌아온 것이다. ‘청년정치’라는 모호한 개념이 부유하고 있지만, 정작 청년들은 여당이든 야당이든 별반 다를 바 없는 기성세대의 말잔치에 등을 돌린 것처럼 보인다.

어느 시대나 청년 시기엔 미래를 불안해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지금 청년들은 불안을 넘어 좌절과 번아웃 상태에 빠져 있다. 이들이 정치를 외면하는 이유는 단순히 정치 뉴스에 관심이 없거나 공적 의식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정치에 대한 관심은 자기효능감의 연장선에서 생겨난다. 가족, 친구 관계, 학업생활 등 일상생활에서 자신의 행동이 가치 있게 여겨지는 효능감이 바닥인데, 익명의 사회적 관계 속에서 자기 행동이 세상의 변화를 가져오리라는 기대가 생길 리 만무하다. “열심히 노오력하면 된다”는 정신으로 살아온 기성세대가 과연 “다시 태어나면 돌멩이가 되고 싶다”는 청년세대의 무기력과 냉소를 이해할 수 있을까? 청년세대의 마음을 그들의 입장에서 깊이 돌아볼 시점이다. 이것은 대선을 앞둔 정치가의 의제가 아니라 그들에게 미래를 맡길 모든 기성세대의 숙제다.

어떻게 하면 청년세대의 정치효능감을 높일 수 있을까? 그것은 일상에서 자기효능감을 높이는 근본적인 변화로부터 출발해야 한다. 청년 맞춤형 정책을 발표하고 나이 젊은 정치인을 내세워 청년의 요구를 반영하는 것이 선거철 들러리 행사로 끝나서는 안 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 사회 전반에 걸쳐 청년이 주인공이 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다양화하는 것이 관건이라고 생각된다.

대학에서부터 변화가 필요하다. 이런 질문을 던져볼 수 있다. 대학에서 청년은 자신을 주인공이라고 느낄까? 수업에서 학생은 자기 잠재력을 키우고 배움의 기쁨을 느끼는 주체일까? 교수자들은 그들에게 그들이 보고 듣고 느낀 것을 있는 그대로 표현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고 있는 걸까? 이 질문에 그렇다라고 대답할 수 있는 교수자는 몇이나 될까?

목표 유달동에 가면 청년들이 만든 ‘괜찮아마을’이 있다. 이름이 ‘괜찮아마을’인 이유는 쉬어도 실패해도 다시 시작해도 괜찮기 때문이다. 마을에는 청년들이 창업한 6개 가게와 10개 회사, 21개 셰어하우스가 모여 있다. 여기서는 서울에 살았으면 못했을 일들이 청년들의 힘으로 이루어진다. 빈집을 리모델링해서 영화도 만들고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 옷을 만들어 수익도 올린다. 책도 만들고 축제 프로그램도 만들어 행사도 개최한다. 인생을 다시 설계할 수 있는 대안적인 작은 사회를 만들어가고 있는 이들에게는 삶 자체가 정치의 현장일 것이다.

그렇다면 ‘괜찮아대학’은 어떤가? 대학이 쉬어도 실패해도 다시 시작해도 괜찮다는 신뢰를 줄 수 있다면 청년세대도 배움을 통해 아픈 마음을 회복할 것이다. 그러려면 학생을 대하는 학교행정과 교수자의 마인드를 민주적 방식으로 재부팅하고, 학생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소통의 공간들을 확대해야 한다. 2022 대선의 봄에는 코로나도 멈추고 대학에서부터 진정한 청년의 일상정치가 시작되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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