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오월 광주에 대한 시편들이 보이는 걸 보면, ‘전남대학교’라는 이름의 상징성을 새삼 돌아보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시간은 무심히 지나가는 듯하지만 한자리에 묶인 것처럼 어느 순간 목줄에 당겨져 앞발을 치켜들게 만들기도 합니다. 저는 내 목을 조이는 그 순간 속에 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순간은 현재의 것이지만 어쩌면 과거와 미래가 한꺼번에 체감되는 몸의 시간이겠지요. 말하자면, 달려온 시간과 달려갈 시간을 한꺼번에 보여주는 속도계 같은 것. 그런 미지가 우리에게 존재한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 또한 시가 아닐까 합니다. 나에게 침몰하는 모든 것으로서의 시 말입니다.

때문에 시 앞에서 우리는 ‘나’라는 존재가 내가 보았던 것들의 마음일지도 모른다는 느낌을 갖게 됩니다. 사물들은 그 마음을 저 바깥에 인간으로 꺼내놓은 것과 다르지 않겠지요. 저 낙엽의 마음을, 저 콘크리트의 마음을, 저 골목과 가로등의 마음을, 신은 인간이라는 생명체로 빚었을 것입니다. 우리는 그렇게 시를 통해 연결됩니다. 그때 ‘나’는 더는 ‘나’가 아니라 무심하게 눈썹을 가다듬다가 그림자를 삼키고 마는 인어(<인어-꿈-그림자-인어>)가 됩니다. 그때 ‘도서관’은 더는 ‘도서관’이 아니라 재만 남은 인류애 속에서 피 냄새가 떠도는 시공간(<어느 사서의 말>)이 됩니다.

요컨대, 제 손에 남은 두 편의 시는, ‘완성’이라는 이름으로 빽빽하게 전해지는 이야기의 정수가 아니라 ‘마음’의 흔적으로 몸 어딘가에 흩어져 있던 감각들입니다. 우리의 삶이 끝끝내 정의되지 않는 장르의 그것이라면, <인어-꿈-그림자-언어> 또한 단순히 얼굴을 치장하는 시가 아닐 것이고, <어느 사서의 말> 역시 도서관의 본질을 정의하는 시가 아닐 것입니다. 거기에는 이 세계의 그물로는 다 건져낼 수 없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익히 우리가 아는 말 건너편에 도사린 슬픔과 비의가 통점처럼 배여 있습니다. 저는 그 이상의 시를 믿지 않습니다. 여러분들의 시를 읽는 것은 그래서 큰 기쁨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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