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격자는 이른 새벽 하천에서 조깅을 하던 남자였다. 남자는 희끄무레한 사물이 물 위로 언뜻언뜻 윤곽을 드러내는 것을, 거기에 다섯 개의 발가락이 달린 것을 보았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은 그것이 사람의 다리임을 확인했다. 나머지 몸통과 안면 일부가 인근 야산에서 발견되었으나 잘려 나간 손목과 발목, 턱뼈는 끝내 찾지 못한 채로 시신은 국과수에 인계되었다. 변사자의 체형과 성별, 사망 시각을 추정할 수 있었을 뿐 지문 대조도 치과기록 조회도 불가능했다. 경찰은 발굴된 유해를 바탕으로 제작된 몽타주를 배포했으나 변사자의 신원을 아는 사람은 나타나지 않았다. 실종자의 DNA와도 맞는 것이 없었다. 턱뼈가 발견되지 않았으므로 몽타주에는 입이 없었다. 프로파일러들과 법의학자들은 범인이 피해자의 신원이 드러나는 것을 극도로 두려워할 것이라는 예측을 내놓았다.
새벽 두 시가 넘었다. 주은은 종우의 메시지에 답하지 않은 채 핸드폰을 무음으로 설정해놓고 머리를 베개에 뉘었다. 누군가 죽고 그가 누구인지조차 모르는 사건들이 언제나 있었다. 그것보다도 주은은 빨리 자야 했다. 당장 잠들어도 다섯 시간밖에 못 잔다. 그녀는 손가락 사이사이를 긁었다. 긁적긁적 긁다가 벅벅 긁다가 발작적으로 긁다가 무언가를 결심한 사람처럼 벌떡 몸을 일으켰다. 화장실로 자박자박 걸어가 샤워기를 틀고 뜨거운 물을 손가락에 끼얹었다. 호흡이 점차 안정되는 것을 느꼈다. 가려움증이 잠시 멈춘 손가락에 스테로이드 외용제를 발랐다. 한포진이 낫지 않았다.

비척비척 걷던 주은은 승강기 문이 닫히는 것을 보고 달려갔다. 네 시간도 채 못 자고 일어난 아침이었다. 누군가가 주은을 보고 급히 열림 버튼을 눌러주었다. 목례를 하고 층계 버튼을 누르려는데 주은이 가려는 층계의 버튼이 이미 눌려 있었다. 그제야 주은은 그의 얼굴을 확인했다.
“안녕하세요 선배. 날이 참 덥네요.”
서현의 큰 눈이 초승달처럼 가늘어졌다. 서현은 주은의 후배 직원이었다. 주은은 어색한 미소로 화답한 후 마스크 속 뜨거운 공기를 빼내려 마스크를 앞으로 살짝 당겼다. 땀과 수증기로 축축해진 주은의 얼굴과 달리 서현의 얼굴은 말끔했다. 서현과 같은 부서에서 일한 지 꽤 되었지만 주은은 그녀가 흐트러진 채로 출근하는 것을 본 적이 없다. 승강기가 이동하는 짧은 시간동안 주은은 입을 다문 채 층계의 숫자를 묵묵히 쏘아보았다.
한포진은 서현과 함께 일하고 한 달 후 발생했다. 어느 날 손톱을 깎다가 손가락에 난 작은 구멍의 형상들을 보았다. 피부의 겉껍질 아래, 1mm가 채 안 되는 물집들이 군집을 이루고 있었다. 검색을 통해 그녀는 그 병명이 한포진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한포진에 걸린 사람들이 으레 그러는 것처럼, 주은은 그 물집을 모조리 터뜨려버리고 싶었다. 그녀는 소독하지 않은 손톱깎이로 살갗을 조금씩 뜯어냈다. 구멍을 덮고 있던 표피가 탈락되자 투명한 액체가 배어 나왔다. 물집을 터뜨리면 병변이 더 넓게 번지고 가려움증이 심해진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는 그 일을 후회했다. 병변은 정말로 손가락 측면에서 지문 부위로 퍼져 나갔다. 참을 수 없는 가려움을 느끼며 새벽 서너 시에 깨는 하루가 지속되었다. 병원에서 항히스타민제와 스테로이드 내복약, 외용제를 처방해주었으나 약을 끊으면 곧바로 재발했다. 스테로이드는 피부층을 얇게 만들고 면역력을 저하시켜 장기간 사용할 수 없는 약물이다. 그녀의 손가락은 점점 과도하게 매끈해졌고 생리 주기가 어긋나는 나날이 늘어갔다. 약을 끊고 온갖 치료 방법을 찾아 인터넷을 배회했지만 대부분 한의원 광고이거나 잘 쉬고 스트레스 받지 말라는 불가능한 조언뿐이었다. 주은은 무심코 자기 손을 볼 때마다 끔찍한 전염병에 걸린 것 같다고 느꼈다.
그들은 승강기에서 내려 같은 사무실로 향했다. 서현 씨 오늘도 파이팅 해. 주은은 지쳐 있었지만 호흡을 고르며 인사를 했다. 네 선배님두요. 주은은 또 한 번 가늘어지는 서현의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서현이 눈을 가늘게 뜨며 웃을 때마다 주은은 께름칙했다. 마스크가 입을 가리기 때문에 웃지 않고 눈을 가늘게 뜨는 것만으로도 웃는 것처럼 보일 수 있었다. 보기 싫은 것을 봤을 때, 기분이 언짢을 때 나오는 표정이 웃는 얼굴로 자주 혼동되는 나날이었다. 주은은 때때로 서현이 자기를 보고 언짢은 표정을 지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주은 자신도 다른 사람을 보며 마스크를 쓴 채 눈을 가늘게 뜰 때가 있기 때문이었다.

사내 분위기는 환하고 정치적이었다. 명랑한 무심함으로 발화되는 말들 아래, 질투와 환멸이 폭풍 직전의 수면처럼 일렁이고 있었다. 그것을 모를 만큼 주은은 눈치 없는 사람이 아니었다. 적지 않은 눈들이 서현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 중 주은의 눈은 가장 끈질기고 집요하게 움직였다. 자기소개서에 나올 법한 화목한 가정에서 안정적인 애착을 형성한 사람만이 가지는 여유, 무언가에 쪼들려 본 적이 없는 데에서 나오는 무심함, 주은이 끝까지 연기하고 싶었던 담백하고 쿨한 삶의 태도, 와이드팬츠가 멋지게 어울리는 길쭉한 키까지. 그렇게 서현을 헤집고 있었다는 것을 자각할 때 주은은 스스로에게 소스라쳤고 부쩍 가려워진 손가락을 긁었다. 주은은 서현에게 담대하고 너그러우며, 더 오래 근무한 사람의 유능함과 노련함을 보여주려는 결심을 매일매일 새로이 했고, 결심은 매일 저녁 퇴근길에 무너졌다. 그래서 주은은 회식 자리에서 서현의 추문이 새어 나올 때마다 오줌보를 참고 귀를 기울였다.
서현이 입사한 지 얼마 안 됐을 때는 그녀가 얼마나 찬사받는 인생을 살고 있는지에 대한 소문이 돌았다. 그녀가 주식으로 큰 수익을 올리고 있으며, 인스타그램에서 수많은 팔로워를 거느리는 인플루언서라는 소문이 그랬다. 주은은 예쁘게 꾸민 플래너와 헬스장에서 딱 붙는 옷을 입은 사진을 업로드 하는 여자들을 떠올렸다. 서현이 없는 자리에서 서현의 이야기가 나올 때 주은은 그 이야기가 반은 맞고 반은 틀린, 때로는 반도 안 맞는 소문이기를 바랐다. 온 힘을 다해서 소문에 무관심한 척을 했다. 소문이 모두 사실이라는 것을 알면 주은은 추레한 자취방과 달마다 전화로 타박을 늘어놓는 엄마, 정리하지 못한 지난한 연애를 버틸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래서 주은은 서현의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남의 이야기를 옮기는 사람은 나빠, 라고 속으로 되뇌었다.
소문이 추문으로 변한 시기는 민정이 탕비실에서 주은에게 서현 얘기를 늘어놨을 때와 대충 일치했다. 주은은 회사 사람들이 서현 얘기를 할 때마다 민정의 한쪽 입꼬리가 미묘하게 일그러지는 것을 보았다. 그 행동이 썩 유쾌하지 않은 마음을 감추려 할 때 어쩔 수 없이 나오는 버릇이라는 사실을 주은은 알고 있었다. 주은에게 민정은 얼굴을 세심하게 살펴야 하는 상대였다.
민정은 주은의 선배로, 그날은 화장실에 가는 주은을 따라 걸어왔다. 민정은 마스크를 코가 드러날 듯 말 듯 걸쳐서 쓰는 습관이 있었다. 처음에는 그 모습이 퍽 조심성 없어 보여서 달갑지 않았지만, 어차피 회사 사람들과 점심도 회식도 같이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신경을 끄게 되었다. 회사에서 집단 감염이 일어났다는 뉴스에 의도적으로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민정은 변기 칸에 들어가지 않고 거울 앞에서 화장을 고치고 있었다. 그녀는 화장실에서 자주 화장을 고쳤고, 때로는 별다른 용무 없이 탕비실에 들어가 있곤 했다. 주은은 볼일을 보고 변기 칸에서 나와 세면대로 걸어가며 그녀와 눈이 마주치지 않도록 시선을 내리깔았다. 손을 씻을 때 화장을 다 고친 민정이 말을 걸었다.
“주은 씨는 요즘 그 친구하고는 좀 어때?”
주은의 눈꺼풀이 아무도 모르게 파르르 떨렸다. 머릿속에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종우였다. 어쩐지 저의가 느껴지는 질문이었다. 종우는 타 부서로, 넉살이 좋고 어깨가 멋진 남자였다. 대부분의 연애가 그렇듯이 그들의 교제는 우연스럽게 시작되었다. 폭우가 내리던 7월의 어느 날 주은이 우산을 갖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주은은 찰나 동안 회사 내에서 자신의 언행에 문제가 있었는지 빠르게 생각했다. 사내 연애를 들키는 사람들을 비웃으며 사생활을 철저히 지키고 있다고 자부하고 있었다.
“서현 씨 말이야.”
주은은 순간 작게 한숨을 쉬었다. 다시 눈을 깜박였다.
“뭐 잘 지내죠. 저보다 빠릿빠릿한 친구예요.”
마지막 문장을 말할 때 어쩐지 마음이 쓰렸다. 루주의 뚜껑을 닫고 주머니에 집어넣는 동작을 주은은 거울을 통해 조용히 바라보았다.
“너무 튀지 않아?”
민정과의 대화는 갈피를 잡기가 어려웠다. 고의인지 실수인지 그녀는 항상 중요한 무언가를 빠뜨려놓고 말했다. 그럴 때마다 주은은 딴소리를 하거나 말끝을 흐렸다. “네?”라고 되물으면 민정의 입꼬리가 일그러진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립스틱 잘 어울리시는데요.”
민정은 미묘하게 웃으며 주은의 어깨에 팔을 걸쳤다. 갑작스러운 신체접촉에 놀란 기색을 보이지 않으려 애쓰며 변기 칸들을 둘러보았다. 칸 하나가 잠겨 있었다. 잠긴 칸에서는 아무런 기척이 들리지 않았다. 주은은 화장실에 오기 직전의 사무실 풍경을 빠르게 회상했다. 서현이 사무실에 앉아 있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들은 탕비실로 향했다. 민정의 이야기는 자긴 이런 회사에 있을 사람이 아니라는 둥, 인간관계 때문에 힘들다는 둥 시시콜콜한 이야기로 시작했다가 서현의 이야기로 옮겨 갔다. 주은은 자기 속내를 드러내지 않으려 안간힘을 썼지만, 너는 그동안 불편한 것 없었냐는 질문을 계속하는 통에 턱짓이요, 하고 대답하고 말았다. 서현에게는 무언가를 가리킬 때 턱짓을 하는 버릇이 있었고 주은은 그것이 끔찍하게 싫었다. 샤워할 때, 잠을 잘 때 서현의 턱짓이 드문드문 떠올랐다. 그럴 때마다 주은은 어금니를 앙다물었다. 그 턱짓이 신경쇠약에 시달리던 엄마의 턱짓을 떠오르게 한다는 사실을 주은은 끝끝내 부인하려 했다. 도대체 사람을 얼마나 무시하고 있으면 그런 행동이 나오는 거야? 민정은 동조해준 것에 반갑다는 듯 주은의 편을 들었다.
주은은 회사 사람들의 표정과 말, 자신의 언행을 습관적으로 곱씹으며 민정과의 일을 후회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서현이 학창 시절 불량 학생이었다는 소문, 남자를 아주 삶아 먹는다는 소문, 동료 직원들을 남몰래 무시한다는 소문, 그렇지 않으면 전에 다니던 회사를 1년 반 만에 그만두고 이직을 할 리가 없다는 소문이 먼지처럼 사무실 공중으로 희붐하게 떠다녔다. 마스크 때문에 직원들의 표정을 알 수 없었다. 이따금씩 민정이 다른 누군가의 어깨에 팔을 얹고 탕비실에 들어가 자기 이야기를 하는 장면이 떠올랐다. 그럴 때마다 체한 것처럼 명치께가 무겁고 답답했다.

그 사건은 'I시 턱뼈 없는 시신 사건‘이라 불렸다. I시 턱뼈 없는 시신 사건은 특별한 것 없는 살인 사건이었으나 선거철이라는 시기와 맞물려 언론과 대중의 폭발적인 관심을 받았다. 새로운 사실이 드러날 때마다 언론은 앞다투어 보도했다. 최근에 알려진 새로운 사실은 범인이 여성일 가능성이었다. 시신 상태와 절단면의 구조로 보아 피해자가 사망한 지 시간이 꽤 지난 상태에서 시신은 훼손되었고, 훼손은 오랜 시간에 걸쳐 일어났다는 것이다. 여성 피의자의 경우 운반의 어려움으로 인하여 시신을 토막내는 경우가 많았다. 물론 완력이 강하지 않은 만큼, 시신을 훼손하는 데에는 시간이 걸렸다. 시신이 여러 군데 흩뿌려져 있는 것으로 보아 공범의 존재 가능성도 제기되었다. 피해자의 신원이 여전히 식별되지 않았고 용의자는 좁혀지지 않았다.
새벽 여섯 시, 여느 새벽처럼 주은은 손가락을 가까이 들여다보았다. 그녀는 자신만이 알아차릴 수 있는 강도로 흡 하고 놀란 숨을 들이켰다. 손가락 옆면에서 작게 시작되었던 물집이 모든 손가락 사이사이를 장악하고 지문까지 올라와 있었다. 주은은 발작적으로 스테로이드를 발랐다. 가려움이 가시지 않았다. 스테로이드를 바른 피부 위에 모기약을 분사하다가, 뜨거운 물로 손을 씻어내고 다시 스테로이드를 발랐다. 모기에 물린 것보다 네다섯 배는 심한 가려움증이 호전되지 않았고 손가락 피부는 과하게 반들반들해졌다. 반들거리는 손가락을 보다가 주은은 한숨을 쉬었다. 지문이 없어지고 있었다.
한포진이 손가락이나 발가락 끝에 발생하면 지문과 족문이 옅어진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었다. 옅어진 지문은 복구되지 않는다. 지금까지 주은의 삶에서 지문이 필요한 순간은 스마트폰 지문 인식밖에 없었으나 지문이 영영 사라진다고 생각하자 적지 않은 상실감이 엄습했다. 그러다 마치 한포진이 서현 때문에 발생한 것인 양 그녀의 턱짓을 떠올리며 눈을 홉떴다.

민정이 사직서를 냈다. 예전부터 자긴 여기서 일할 사람이 아니라는 소리를 늘어놓았으니 그녀의 결정이 전혀 이해 못 할 일은 아니었다. 남의 이야기를 주은에게 옮기고 어쩌면 주은의 이야기를 남에게 옮길지도 모르는 사람. 그녀가 퇴사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마음 한켠에서 안도감이 들어야 했을 테지만 주은이 느낀 것은 이유 모를 황황함이었다. 주은은 민정이 퇴사한 이유를 특이하고 외부적인 요인에서 찾으려 했다.
공동체에서 사람은 소문을 가장 먼저 듣는 사람과 가장 마지막에 듣는 사람으로 나뉜다는 사실을, 후자 같은 사람이 회사 같은 곳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민정 같은 사람이 필요하다는 것을 주은은 모르지 않았다. 유독 세상 물정에 어두운 주은은 민정이 가져오는 소문으로 사내 분위기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파악했다. 그것을 통해 자기가 회사에서 어느 정도의 이미지를 점하고 있는지 간접적으로 확인하곤 했다. 덕분에 주은은 회사 내에서 눈에 잘 띄지는 않지만, 그냥저냥 일을 해내는 편한 상대로 자신의 이미지를 나름대로 굳혀 나갈 수 있었다. 그것은 분명 지금까지는 성공적이었다. 그러나 이제부터는 무엇도 확신할 수 없다. 주은은 안개처럼 자욱한 소문의 한복판에 외따로 남겨졌다. 그녀가 어린아이처럼 거리를 헤매는 모습을 마스크를 쓴 사람들이 까맣고 차가운 눈으로 쳐다보았다.

소문이 사라지지 않고 있었다. 창밖으로 빗방울이 창문을 때리는 소리가 났다. 메신저 앱에는 읽지 않은 창식의 메시지가 붉은빛을 내며 쌓이고 있었다. 종우가 있는 곳에서 창식의 메시지를 받고 싶지 않았으므로 그녀는 알림을 꺼두었다.
창식을 만나는 날이 다가올 때 그녀의 손은 좀 더 가려워졌다. 종우를 만날 때마다 그녀가 떠나온 도시에서 NCS를 풀고 자기소개서를 고치고 있을 창식이 떠올랐다. 대학생 때의 그는 수업 시간에 멋지게 발표를 하고 술자리에서 후배들을 위해 기꺼이 지갑을 여는 남자였지만 동시에 졸업이 다가올수록 후락해가는 남자이기도 했다. 특이한 것이 있다면 눈 근처부터 입꼬리까지 이어진 선명한 흉터였다. 스무 살의 주은을 사로잡은 것이 그 흉터였다. 그때 그녀는 그 흉터가 눈물이 지나가는 길을 표시해둔 것 같다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운 나쁘고 안타까운 상처일 뿐이다.
주은을 만날 때 창식은 더 이상 코트를 입지 않았고, 구두를 신지 않았고, 머리를 손질하지 않았다. 데이트를 하다가 오랜 시간 공들여 화장을 하고 예쁘게 차려입은 자신을 거울 너머로 볼 때면 주은은 비릿한 모멸감을 느꼈다. 창식이 서너 살 정도 많았기에 당연히 그가 자기보다 먼저 취업할 줄 알았던 주은은 어느 한쪽이 먼저 취업하더라도 서로를 버리지 말자고 약속했었다. 그 약속의 대가로 그들은 일주일에 한 번씩 편도 세 시간의 만남을 지속했다. 그것은 점차 한 달에 한 번이 됐다가 두 달에 한 번이 됐다.
창식은 주은을 만날 때마다 술을 마셨고 흉터 때문에 면접에서 떨어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 이야기를 그는 고장 난 라디오처럼 되풀이했다. 흉터 이야기를 시작할 때 창식의 눈 주변 근육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입가 주름이 어떻게 팽팽해지는지 주은은 알고 있었다. 그의 흉터는 원래부터 그다지 문제가 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그나마도 요즘에는 마스크를 써서 더더욱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창식을 제외한 모두가 알았다. 그녀는 그날 갑자기 회사에 위급한 일이 터져서 반드시 출근해야만 하는 사정이 생겼으면 했다. 이모티콘을 섞어가며 답장을 했다. 이모티콘을 걷어내면 주은의 메시지에는 메마른 인사들만이 남았다.
주은은 핸드폰을 내려놓고 싱크대에 놓인 음식물 쓰레기봉투를 묶었다. 비가 와서 냄새가 심해지고 있었다. 후드를 대충 뒤집어쓰고 슬리퍼를 소리 나게 끌며 쓰레기를 버리고 다시 돌아올 때, 그녀는 화단 쪽에서 낯익은 여자의 모습을 봤다. 여자는 파란 우산을 쓰고 있었다. 순간 그녀는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게 숨을 들이마셨다. 기척을 느낀 여자가 그녀를 발견하고 큰 눈을 초승달 모양으로 접었다.
“여기 사시나 봐요.”
서현은 거리와 빗소리 때문에 목소리가 잘 들리지 않는 것을 아랑곳하지 않았다. 마치 주은이 가까이 다가와서 들어야 한다는 느낌이었다.
“뭐라구요? 잘 안 들려서.”
주은이 가까이 다가갔다. 집 앞에서 헐렁한 차림으로 직장 동료를 만나 낭패감이 들었다.
“여기 사시나 봐요.”
“네.”
눈이 여전히 반달 모양으로 접혀 있었다. 여자는 웃고 있는 것일까? 그보다도 서현이 이 근처에 살았던가? 머릿속에서 해결되지 않을 의문들이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서현의 우산은 눈이 시릴 만큼 쨍한 파란색이었다. 빗줄기가 점점 거세졌다.
“그런데 여기서 뭐 해요?”
“고양이 밥을 주거든요. 여기 애들이 저랑 친해요.”
서현이 마스크를 벗지 않은데다 우산을 두들기는 빗소리 때문에 말소리가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발치에는 약간의 사료가 든 작은 플라스틱 그릇과 사료 봉지가 있었다. 아직 고양이는 보이지 않았다. 이렇게 사료를 채워놓고 가면 고양이들이 와서 먹고 가는 모양이었다. 주은은 팽팽해지려 하는 입가를 웃는 모양으로 일그러뜨리며 물었다. 서현 씨 여기 살던가? 아니요. 서현은 우산을 들고 일어났다. 팔로 어설프게 비를 막으려는 주은에게 우산을 씌워주었다. 주은이 약간 뒤로 물러선다. 완전히 개방된 발뒤꿈치로 빗방울이 흘러내렸다. 우산이 너무 파래서 그 아래 있는 서현의 얼굴이 파르스름하게 창백했고, 눈의 흰자위와 검은자위의 경계가 날카로워 보였다. 비가 세차게 오는 날 우산 속에서 들리는 사람의 목소리는 평소와는 많이 다르다는 이야기를 주은은 들은 적이 있다. 그러나 그것을 감안하더라도 서현의 목소리는 차분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서현은 일전에 회사 엘리베이터에서 주은을 만났을 때처럼 미소를 지었다. 주은은 애써 입꼬리를 올리며 턱에 걸쳐두었던 마스크를 제대로 썼다. 그녀가 집에 들어가는 모습을 서현이 지켜보았다.

피해자의 신원이 확인되고 용의자와 차량이 포착된 CCTV 영상이 입수되면서 수사는 급물살을 탔다. 피해자는 20대 후반의 여성으로 가족과는 연락을 끊은 지 오래였고 다니던 회사는 2년 전에 그만둔 상태였다. 피의자는 여성으로, 인근 마트에서 관련된 도구를 구매한 사실이 확인되었다. 이후 트렁크에 뭔가를 싣고 I시로 가는 고속도로 방향으로 이동했다. CCTV에 포착되긴 했지만 신변을 감추려 애쓴 옷차림 때문에 키가 크고 호리호리하다는 점 말고는 신원을 바로 확인하기 어려웠다.
한포진이 여전히 낫지 않았다. 주은은 위장병을 앓았다. 의사는 별다른 이상이 보이지 않는 것으로 보아 신경성일 것이라고, 푹 쉬고 스트레스 받지 말라는 불가능한 조언을 내놓았다. 아침에 꿀물을 마시며 창문 너머를 바라보던 그녀는 주차장 쪽에 중년 여성 두 명과 경비가 서 있는 것을 보았다. 경비는 무언가를 집게로 집어 올려 비닐봉지에 넣고 있었다. 그녀는 눈을 가늘게 뜨고 경비의 동작을 지켜보았다. 그것은 어떻게 보나 죽은 고양이였다. 쥐약을 먹고 죽었다고 했다.

어정쩡한 사내 분위기를 아랑곳하지 않고 업무는 계속되었다. 서현은 여전히 말끔하게 출근했고, 주은은 피로에 지친 상태로 출근하고 퇴근했다. 회사 점심시간에도 회식 때에도 주은은 위장병 때문에 음식을 제대로 먹지 못했다. 머리가 잘 돌아가지 않는 아침이 계속되었다. 주은은 직원들의 달라진 태도를 지켜보았다. 민정이 있을 때는 미묘한 거리감을 표하더니 이제는 서현에게 체중 관리 방법을 묻고, 연인의 유무를 묻고, 시답잖은 이야기를 툭툭 던졌다. 돌이킬 수 없이 지친 주은의 모습을 보며 서현은 안색이 안 좋다며 어디가 아프냐고 자주 물었다. 그들은 특정 화제를 요리조리 피하는 재주가 있었다. 커피를 마시는 동안 많은 화제가 민정을 스쳐 지나갔지만, 결코 건드리지는 않았다.
“남자친구가 취업이 안 돼서 고민이에요. 그것 때문에 더 예민해져서 자주 싸우는 것 같기도 하고.”
막내 직원인 지윤이 말했다.
“연애에는 상황적인 것도 중요해. 이참에 정리하고 번듯한 사람을 만나.”
그들은 무용한 조언을 했다. 그런 일은 자주 일어난다.
“아예 독서실에만 박혀 있는 건 아니에요. 서류는 통과를 하는데 면접에서 매번 망치는 것 같아요. 그래서 더 미치는가 봐요.”
“혹시 뭔가 문제가 있어요? 얼굴에 눈에 띄는 흉터가 있다거나.”
주은은 허공을 휘젓던 젓가락질을 멈췄다. 문득 고개를 들어 서현을 바라보았다. 주은만이 느낄 수 있는 저의가 그 문장 밑에서 일렁이고 있었다. 마치 서현이 무언가를 더 알고 있는 듯한, 착란에 가까운 기분이 들었다. 이제 그 모든 대화가, 민정을 요리조리 피해가던 화제가 주은에게 날아오는 것 같았다.
서현의 얼굴 근육들은 수축과 이완을 반복하며 가장 자연스러운 표정을 직조하고 있었다. 서현의 표정에는 주은이 결코 갖지 못한 대담함이 있었다. 그녀는 사람들 사이에 있을 때 쉴 새 없이 몰아치는 어색함과 불편함의 해일 속에서 마치 그런 것을 전혀 느끼지 않는 사람처럼 보였다. 그 순간, 주은에게 그녀는 마치 표정이나 무의식적으로 나오는 몸동작, 안면 홍조를 만들고 심장을 빠르게 박동시키는 자율신경조차도 전부 제어할 수 있는 존재처럼 느껴졌다. 주은은 문득 그날 자신과 민정이 탕비실로 걸어 들어가던 모습을 서현이 봤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척이 느껴지지 않던 그 잠긴 칸에 서현은 호흡과 심장 박동마저 줄이고 앉아 있었을지도 모른다. 민정은 왜 퇴사했을까? 주은은 손가락을 긁었다. 물집이 부풀어서 두드러기처럼 되어가고 있었다. 제가 얼마 전에 인천에 다녀왔거든요. 제가 얼마 전에 인천에……인천에 다녀왔어요.
서현의 목소리가 웅웅거리며 귓가를 맴돌았다. 빨리 식사를 끝내고 마스크를 쓰고 싶었다. 이럴 때 코와 입을 노출하는 것은 너무 위험하고 무방비한 일이었다. 인천. 주은은 괜히 CCTV 속 호리호리한 여자와 고속도로와 입이 없는 몽타주를 생각했다. 입이 없는 사람의 얼굴이 입이 있는 사람의 얼굴보다 익숙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요즘에는 모두가 마스크를 쓰니까. 누군가가 죽고, 그의 신원을 파악하기 위한 몽타주가 제작된다고 해도, 누군가 알아볼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수사는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피해자의 신원이 드러나는 것을 극도로 두려워하는 범행 양상으로 보아 피해자와 범인은 원한 관계가 있을 것으로 예측되었고 그것은 들어맞았다. 경찰은 그것이 피해자가 직장을 그만둔 계기가 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추측을 내놓았다. CCTV에 드러난 인상착의와 행선지를 통해 범인을 지목했다. 체포영장이 발부되었고 경찰은 잠복 인원을 배치했다. 범인이 이제 곧 검거될 것이었다. 구속영장이 발부될 때까지 경찰은 우선 엠바고를 걸어두기로 했다.

9월이 끝나 가고 여기저기서 비가 왔다. 영원할 것 같던 더위가 물러가고 있었다. 일기예보 상으로는 오늘 내리는 비를 마지막으로 가을 추위가 시작된다. 손은 더욱 건조해졌고 그럴수록 더 가려웠다. 아무것도 바르지 않았는데 진물이 베어 나와 손이 축축했다. 주은은 가려움을 참으려 두 주먹을 움켜쥐고 걸었다. 아스팔트가 비에 젖어 번들거렸다. 걸을 때마다 튀는 물방울이 신발 안으로 침입했다. 그때 바퀴를 세차게 굴리며 달려가던 승용차가 물웅덩이를 밟고 지나갔다.
사방으로 튀긴 흙탕물이 주은을 덮쳤다. 사람들이 아유 어떡해 같은 감탄사를 뱉으며 지나갔고 주은은 망연자실하게 서 있다가 버스 정류장으로 향했다. 그녀는 돌이킬 수 없이 지쳤다. 오염 물질이 묻은 탓인지 손가락이 가려웠다. 정류장에 먼저 앉아 있던 서현이 주은을 보고 놀라며 일어섰다. 주은은 서현을 보고 자기도 모르게 괜찮다고 손사래를 쳤다.
“심하게 젖었어요. 저희 집에 잠깐 들렀다 가실래요? 여기서 가까워요.”
주은은 소스라치며 아니라고 대답했다. 아니야. 서현은 주은의 거절이 빚을 지기 싫은 성미와 나빠진 기분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했는지 몇 차례 더 물었다. 아니라는 말을 몇 번이나 했는지 모른다고 주은은 생각했다. 서현의 집에 들어가는 것만큼은 무슨 일이 있어도 피하고 싶었다. 뉴스에서 본 CCTV 장면과 민정의 얼굴이 주은의 머릿속에 겹쳐 떠올랐다. 서현은 주은의 유난스러운 거절을 받아들였고 손수건을 건넸다. 푸른빛이 도는 흰 손수건이었다.
“잠깐 마스크 벗으시고 얼굴 닦으세요. 마스크 제가 새로 하나 사올게요.”
마스크를 벗으라는 말에 정류장에 앉아 있던 사람들이 일제히 까만 눈으로 그들을 쳐다보았다. 요즘에도 손수건을 갖고 다니는 사람이 있나. 주은은 잠시 생각하다가 손수건을 받아 들고 얼굴을 닦았다. 고마워. 서현의 큰 눈이 초승달처럼 가늘어졌다. 흰자위와 검은자위의 경계가 유난히 날카로워 보였다. 주은은 미세하게 떨리는 손으로 손수건을 돌려주었다. 스스럼없는 손이 주은의 피부에 닿았다가 떨어졌다. 진물이 손수건에 묻진 않았을까 조금 걱정이 됐다.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게, 주은의 눈꺼풀이 곤충의 맞비비는 날개처럼 파르르 떨렸다. 손에서 진물이 멈추지 않았다. 민정의 안위를 알고 싶었다. 사람들이 얼굴을 완전히 개방한 주은을 쳐다보았다. 서현이 마스크를 사 올 때까지 기다릴 수 없을 것 같았으므로 주은은 시선을 견디지 못하고 도로 젖은 마스크를 썼다. 주은은 발열 없이 계속해서 아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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