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 소비’는 환경을 위한 소비를 말한다. 그러나 실제로 환경을 파괴하지 않고 생산되는 상품은 없다. 녹색 소비는 위장환경주의다. 위장환경주의는 환경주의로 위장한 기업의 마케팅을 의미한다. 스타벅스의 재사용 가능(re-usable) 컵이 위장환경주의의 일례다. 스타벅스 재사용 가능 컵의 소재는 일회용 포장재에 사용되는 폴리프로필렌이라는 일반 플라스틱이다. 폴리프로필렌 컵은 제작과 폐기 과정에서 온실가스를 배출한다. 따라서 스타벅스 재사용 가능 컵과 같은 녹색 소비는 환경을 위한 소비가 될 수 없을뿐더러 친환경적인 상품이라는 이름으로 소비자를 기만한다.

자본주의는 자연과 인간을 재화로 변환하여 착취한다. 자본주의 내에서 소비는 필수적이다. 자본주의 안에서 인간은 소비할 수밖에 없고 모든 소비는 환경 파괴의 원인이 된다. 환경을 보호한다는 합리화를 통해 이루어지는 녹색 소비는 '보통'의 소비보다 위험할 수 있다. 환경 문제에 경각심을 가지는 보통의 소비와 달리 녹색 소비는 환경을 보호한다는 명목하에 이루어지기에 무분별한 소비로 이어질 수 있다.

환경 문제는 자본에 의해 해결될 수 없다. 소비로 환경을 보호할 수 없다는 것, 자본주의 내에서 환경이 착취당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사회구조는 쉽게 변화하지 않는다. 육식을 줄이는 것, 덜 사고 덜 쓰는 것, 디지털 탄소발자국을 줄이는 것처럼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을 찾는 것이 변화의 시작이다. 개인의 행동으로 환경 파괴를 미룰 수도 사회를 변화할 수도 없다. 그래도 실천하지 않는 것보단 실천하는 것이, 환경을 외면하는 것보다는 환경 보호에 대해 생각하는 것이 낫다는 걸 알기에 그렇게 행동할 뿐이다.

인간은 환경을 ‘이용’해도 되는 존재도, ‘자연’과 분리된 존재도 아니다. 인간과 '비인간'의 공존, 지속 가능한 환경에 대해 고민할 때 자본주의 안에서 환경은 파괴될 수밖에 없다는 걸 알게 된다. 인간의 쾌락이 강조되며 윤리적인 것보다 효율성이 중요한 사회에서 환경은 파괴될 수밖에 없다. 자본주의 안에서 지속 가능한 미래를 찾을 수 없다. 그러나 현재를 살아가야 하고 미래는 존재한다. 지속 가능한 미래를 살아가는 방법을 찾는 것이 앞으로의 숙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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