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행어가 자리 잡는 속도는 물감이 종이에 번지는 속도만큼 빠르다. 두 눈과 귀를 의심하게 하는 말이 있는가 하면, 두 무릎을 ‘탁’ 치게 되는 말도 있다.

▲ 삽화=김지민 일러스트레이터

바쁘다 바빠, 현대사회! 덩달아 빨라진 우리말
갑분싸(갑자기 분위기 싸해짐), 얼죽아(얼어 죽어도 아이스), 솔까말(솔직히 까놓고 말해서)….
‘바쁘고 바쁜 현대사회’에서 줄임말이 유행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뜻을 알고 나면 재밌고, 그 뜻을 안다는 것 자체가 유행을 따라간다는 척도가 된다. 유행어로 자리 잡은 줄임말은 굳이 길게 말하지 않아도 그 뜻을 전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1분이 1초처럼 지나가는 사회, 우리는 이런 편리함을 포기할 이유가 없었다.
줄임말 유행에는 의사소통에 장벽이 생긴다는 이면이 있다. 배우 안재현이 한 예능에서 ‘팬아저(팬이 아니어도 저장)’라는 줄임말을 ‘팬이 아닌 아저씨는 빠져’로 잘못 유추해 웃음을 유발한 적이 있는데, 이는 줄임말이 해석의 모호함으로 이어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
‘ㅇㅇ’, ‘ㄱㅅ’, ‘ㅊㅋ’ 등 인터넷을 하다 보면 눈에 한 번씩은 꼭 들어오는 초성 글자 역시 줄임말의 일종이다. 이는 일명 ‘초성화’ 단계를 거친 말로, 말하는 이의 의도를 빠르고 간단하게 전달한다. 하지만 이런 편리함이 누군가에게는 해석의 여지를 안겨 답답함을 남길 수 있다.
무미건조하기 짝이 없는 자음의 향연에 알게 모르게 서운함이 느껴진다. 사라져 버린 모음과 함께 우리의 감정까지 사라져 버린 걸까? 줄임말이 주는 편리함과 온전한 단어에 온전한 마음을 담아 전하는 따스함, 무엇을 선택할지는 우리의 몫이다.

급식체는 무죄? 유죄?
‘어쩔티비?’ ‘어쩔냉장고?’
요즘 초등학생 사이에서는 상대방의 말에 대꾸하고 싶지 않을 때, ‘어쩔’이라는 말에 가전제품 단어를 붙여 받아치는 말이 유행하고 있다. 이처럼 급식을 먹는 나이인 초·중·고교생이 사용하는 은어를 ‘급식체’라고 부른다. tvN 예능프로그램 <SNL 코리아 시즌9>에서는 일명 ‘급식체 특강’ 코너를 만들어 출연자가 급식체 강의를 진행하는 모습으로 인기를 끌기도 했다.
‘ㅇㅈ? 어 인정’과 같이 온라인 커뮤니티의 표현이나 개인 방송 진행자들의 말투 등이 SNS를 통해 10대들에게 퍼져나가 급식체로 자리 잡은 경우가 많다.
급식체는 ‘한글 파괴 현상’의 주범으로 지목돼 질타를 받기도 한다. 매우 화났음을 나타내는 ‘킹받네’와 같이 속된 표현들은 의미 없는 우리말의 변형으로 언어 체계를 망가뜨린다. 특히 우리말 변형이 세대 간 소통을 방해하는 요소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점 역시 주목할 만하다.
급식체의 하위문화로 자리 잡은 ‘야민정음’ 역시 마찬가지다. 인터넷 게시판에서 유행하는 야민정음은 특정 음절을 비슷한 모양의 다른 음절로 바꿔 쓰는 은어다. ‘멍멍이’를 ‘댕댕이’로 표현하는 것이 대표적 예다. 다만 ‘롬곡(눈물)’과 같이, 본래의 형태를 유추하기 어려운 말들은 보는 사람을 당황스럽게 한다.
야민정음은 기업의 마케팅 방식으로 활용되기도 한다. ‘팔도비빔면’의 출시 35주년 기념으로 ‘괄도네넴띤’이라는 한정판 제품이 출시되는 등 새로움을 무기로 대중의 눈길을 사로잡는 야민정음은 더이상 은어만이 아니다.

‘외 않 되’가 왜 안 되는지 ‘1도’ 모르겠다
잘못된 맞춤법으로 생겨난 말이 유행어가 될 때도 있다. 가수 헨리가 한 예능 방송에서 사용해 화제가 된 ‘1도 모르겠다’ 역시 ‘하나도 모르겠다’는 표현의 맞춤법 오류에서 비롯된 유행어다. 한 연예인의 실수로 시작된 ‘1도’라는 표현은 대중 사이에서 말의 재미를 더하는 소재로 꾸준히 등장하고 있다. 메신저 이모티콘으로 출시될 만큼 자주 쓰이는 ‘외 않 되?’ 역시 맞춤법 오류를 재미의 소재로 사용한 예시 중 하나다.
의도적으로 맞춤법을 틀리는 현상은 우리말을 지켜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선사한다. 평소 급식체를 자주 접해온 중학교 2학년 최준휘 학생은 “그동안 맞춤법을 지켜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려왔는데, 그래서인지 맞춤법을 일부러 틀린 유행어를 사용하면 통쾌함이 느껴졌다”는 경험담을 전했다.
국어문화원 원장 양영희 교수(국어교육)는 “바뀐 언어 현상을 맞춤법이 수용하지 못하면서 언어 의식의 간극이 발생하는데, 이때 학생들은 맞춤법에 호의적이지 않게 된다”며 “맞춤법만 강조하다 보면 글쓰기에 흥미가 떨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우리말의 변화양상을 ‘신세대들의 재밌는 언어 놀이’로 평가하는 시선도 있다. 양 교수는 “사귀기 전 단계를 칭하는 ‘삼귀다’와 같이 뜻과 어감이 좋은 말들이 있다”며 “언어를 가지고 논다는 것은 부정적인 뜻이 아닌, 신세대의 언어에 대한 관심을 시사하는 것이다”고 설명했다. 정해진 우리말을 지키고 그대로 사용하는 것만이 우리말을 사랑하는 방법은 아니다. 시간이 멈추지 않는 한, 우리말은 끊임없이 변화할 것이다. 이를 하나의 문화로 받아들여 우리말을 다채롭게 꽃피우는 것 역시 우리말 사랑의 한 방법이지 않을까?
 

저작권자 © 전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