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 요청을 하면 호의적인 반응이 돌아오기 힘들다. 자신들에게 이득이 되는 기삿거리가 아닌 이상 방어 태세를 갖춘다. 수습기자 시절에는 미움받을 용기를 장착하고 취재를 시작하는 것이 루틴이었을 정도다. 3년째 일하다 보니 감정이 무뎌지는 듯했으나, 아직도 뾰족한 반응에 찔리면 아플 때가 많다.

마감으로 정신없는 편집국, 성비위사건 취재를 맡은 후배 기자의 표정이 어둡다. 시무룩한 목소리로 다가와 속내를 털어놓는다. 우리 대학 성희롱·성추행 사건 신고 담당 기관과 인터뷰를 진행하고 온 기자는 1시간 만에 인터뷰 내용 ‘삭제’ 요청을 받았다. 허락 없이 기사를 낼 경우 윗선에 보고해 항의하겠다는, 다소 황당한 요구.

산학협력단 성추행 사건 발생 이후 너무 많이 시달려왔다며 인터뷰를 안 한 것으로 하고 싶다고 했다. 성희롱·성폭력 관련 문제를 담당하는 기관으로서 학내 성추행 사건 발생 이후 많은 언론의 전화를 받았을 테다.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인다는 생각에 지쳤을 심정도 이해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하는 것이 문제해결 방법은 아니다. 인권침해의 해결방안을 모색하는 기관이 버텨야 할 무게다. 피해자의 입장을 대변해야 할 위치에 있기에, 그들은 성추행 사건의 취재에 응할 책임이 있다. 말할 수 없다고 입을 다물기보다는 사실과 다른 부분이 있다면 더 적극적으로 의견을 표출했어야만 한다.

껄끄러운 이야기일지라도, 정의가 지켜질 수 있다면 기자는 기사를 보도해야 한다. 소수의 입장을 대변하기 위해 지면을 기꺼이 내어주는 것이 기자의 정의다. 그들이 지켜야 할 정의는 무엇인가? 기사를 막는 것이 대안이 될 수 없다. 기사는 보도되어야 하고, 기자는 취재해야 하며, 그들은 감수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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