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글은 실패를 겪으며 쓸 수 있는 것
퇴고하는 과정으로 성장

많은 청년들이 좁고 어려운 길임을 알고도 문학가를 꿈꾼다. 한때 그들과 같은 시절이 있었기에, 강대선 시인은 현실적인 조언을 건넨다. “이 길이 아니면 안 되겠다 싶을 때는, 될 때까지 목숨을 바쳐봤으면 해요. 나중엔 그 결정을 후회할 수도 있겠죠. 현실을 선택하고 하고 싶은 일을 취미로만 할지, 꿈을 선택해 온 마음을 다할 것인지는 본인에게 달렸어요. 소크라테스의 ‘너 자신을 알라’는 말이 필요한 시점인거죠.”
동아일보 신춘문예 시조 당선, 광주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하늘의 별을 따는 것보다 어렵다는 신춘문예에서 두 번의 별을 땄던 한 시인이 있다. 지금의 강대선 시인이 되기까지, 그 또한 우리와 같은 시절을 지나온 청년이었다.

“인생이란 무대에 서서”
강 시인이 대학생일 적, 때는 정치적 격동기였다. 강 시인은 노태우 정권의 폭력 시위진압에 반대하며 분신했던 우리 대학 박승희 열사와 투쟁을 함께했다. 5월이 되면 선배들과 투쟁의 장으로 나아갔다. 그에게 대학 시절은 세상을 바로 보는 눈을 길렀던 시간이었다.
강 시인은 대학 3학년 때까지 불문과 희곡연구회의 연극배우로 활동했다. 알베르 카뮈의 <정의의 사람들>, 앤서니 버클리의 <두 번째 총성> 등 여러 작품의 주인공으로 출연하며 연극의 재미를 알아갔다. 작품 준비에 걸리는 두 달가량의 연습 기간. 딱 한 번뿐인 무대가 끝나고 나면 허탈한 감정이 찾아왔다. 수년의 세월이 지났지만 그 기억은 여전히 생생하다.
다양한 인격이 되어볼 수 있었던 배우 활동은 타인의 삶에 대한 이해를 넓혀줬다. 그는 인생이 곧 하나의 무대라는 것을 깨달았다.
“대학생 누구나 자기 인생에 대해 고민을 해요. 인생이란, 무대에 올라 모든 장면을 치열하게 살다가 내려가는 것이 아닐까요.”

현실의 벽, 그 너머로
어느 날, 한 연극배우가 생활고를 겪다 운명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취업 준비를 미루고 작품 연출에 참여할 정도로 연극에 진심을 보였던 강 시인은 현실의 벽을 느끼고 발길을 돌렸다. 이후 선배의 조언으로 마케팅 회사에 들어가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회사원으로 3년의 시간을 보내며, 반복되는 일상에 회의를 느꼈던 그.
고민이 계속됐다. 어떤 길을 걸어야 할까. 당시 IMF로 국민 모두 어려움을 겪던 시절, 다니던 회사를 스스로 그만두는 사람은 흔치 않았다. 강 시인은 마음이 가는 곳으로 향하기로 했다. 문득 가르치는 일을 하고 싶었다. 수능을 다시 본 후 타대학의 국어교육과에 진학했고, 결국 교직 생활을 시작했다. 원하는 삶을 과감히 개척했던 강 시인. 교사가 되어 문학을 사랑하는 제자들과 시낭송 축제를 기획하고 문학 책자를 만들었다.
강 시인은 ‘시’가 아름다움이 깃든 진정성 있는 표현이라고 말한다. “시에는 똑같은 말을 똑같이 하지 않는 새로움이 있어요. 나의 언어가 변화하는 지점에 시가 있다는 것이 매력적으로 다가와요. 글을 쓰면서 나라는 사람에 대해 발견하게 되는 것이죠.”

내어준다는 것은 결국 ‘돌아오는 것’
“사실 문학에, 천재는 별로 없는 것 같아요. 열심히 쓰고 퇴고하는 과정에서 문학작품이 탄생하지 않나 싶어요.”
실패를 겪어야 좋은 글을 쓸 수 있다. ‘이것도 시냐’, ‘이것도 소설이냐’라는 말들을 들으면서, 더 나은 글로 고쳐보고 그렇게 나아지는 것이다.
강 시인은 글을 잘 쓰려면 다른 사람에게 글을 보여주는 것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고 한다. 습작의 과정이 중요하다. 그의 조언에 따라, 우선 5명의 독자를 선정해 글을 보여주고 수정해보자. 나중에 그 독자가 10명이 되고, 20명이 될 것이다. 한 번에 위대한 작품을 써야겠다고 생각하지 말고, 처음 5명의 독자를 만족시킬 수 있는 글을 쓰면 된다. 자신의 글을 읽고 조언해 줄 수 있는 친구들을 만난다면, 강 시인의 말처럼 훌륭한 작가가 될 수 있다.
처음엔 그도 글을 읽어줄 사람이 없어 ‘맨땅에 헤딩’하는 시절이 있었다. 같은 길을 걷는 사람들을 만나며 새로운 인생을 알게 됐다. 그의 시 <내어준다는 것>에 이러한 깨달음이 담겼다. 더 멀리 나가기 위해선 내 어깨를 내어줘야 하고, 더 멀리 보기 위해선 내 눈을 내어줘야 한다는 것. 혼자서는 무언가를 이루기 힘들고, 결국 협력을 통해 큰 흐름을 만들어나가는 것이 필요하다.
“다 받기만 하려는 마음을 갖고선 어떤 누구도 그 테두리 안에 들어오지 않아요. 자신과 같은 길을 걷는 사람을 만나 내어줄 수 있는 마음을 지녀보세요. 내어주면 내어준 만큼 오게 돼 있죠.”
돈을 많이 벌고 좋은 직장을 갖는 성공을 떠나, 소중한 이들에게 어느 것이든 진심으로 내어줄 수 있을 때 비로소 행복해질 수 있지 않을까 하고 그는 생각한다.

시가 그에게로 오는 순간
강 시인에게 세상에 똑같은 시란 존재하지 않는다. 좋은 시어 하나를 건지면 잠이 오지 않을 정도로 설렘을 느낀다. 영감이 오는 순간, 마치 전율과도 같은 희열이 느껴진다. 시를 쓰는 이들은 이 기쁨 하나로 시를 쓰는 게 아닌가 싶다.
메모하지 않으면 소재가 다 도망간다. 강 시인은 주로 주변에 있는 것에서 작품의 소재를 얻는다. 소재가 떠오르면 그 순간 메모해야 한다. 소재가 가장 많이 찾아올 때는 산책을 할 때다. 시를 쓰는 사람은 많이 걸어야 한다는 말이 있다. 새소리를 들으며 흘러가는 구름을 바라보고 있을 때, 쓸데없는 생각 속에 시가 걸어 들어 온다.
“인생의 모든 깨달음이 시가 돼요. 산책하며 들었던 새소리도 돌고 돌아서 내게 온 것이겠구나 싶기도 하죠. 이런 생각을 할 때, 드디어 나만의 시각으로 싹을 틔우는 지점이 탄생하는 것이에요. 인생이란 결국 돌고 도는 게 아닐까요?”

길이 열리는 순간은 찾아오기에
강 시인은 조용히 스쳐 지나가는 시인이 되고 싶다. 유명한 시인으로 기억되는 것이 아니라 그냥 ‘이런 시인도 있었지’ 하며, 조용히 스쳐 지나가는 시인.
“시를 쓰고 글을 쓰는 모든 순간이 좋았어요. 누군가 강대선이라는 시인을 특별한 시인으로 기억하기보다는 그냥 ‘시 쓰는 사람이었다’라고 한마디 해주면 될 것 같아요.”
요즘 강 시인은 제주 4·3 사건 이야기를 다룬, <두 개의 섬>이라는 가제의 책을 준비 중이다. 올해 책이 발간되고 나면 내년에도 시집 한 권이 나온다. 문학과 함께하는 그의 삶은 바쁜 나날의 연속이다.
강 시인에게 앞으로의 목표를 물었다. 그는 “목표에 도달할 수 없을지 몰라도, 커다란 꿈이 있다는 것만으로 사람은 행복해진다”며 “우스갯소리지만 ‘그래, 내 꿈은 노벨문학상이야’라고 되뇌면서 다방면에 도전하고 있다”고 웃으며 대답했다.
그냥 그렇게 큰 목표를 세워두고 가는 것이다. 목표에 도달하지 못할 수도 있겠지만 계속 걷다 보면 언젠가는 가까워질 것이다.
“저도 포기하고 도망가고 싶었던 사람 중 하나였어요. 인생에 특별한 계획이 없었던 시절이 분명 있었고, 방황도 했죠. 하지만 좋아하는 것을 찾았을 때 길이 열렸어요. 많이 보고, 듣고, 생각하세요. 허황되더라도 마음을 열어둔 채로 한발 한발 나아가세요. 분명 좋은 결과가 있을 거예요. 저 역시 그랬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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