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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한 희생’에 대한 반론■사설
전대신문  |  news@cnumedi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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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1.09.12  18: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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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에서 최근 공개한 드라마 <D.P.>가 화제다. 특히 군필자들의 반응이 뜨겁다. “나 때는 훨씬 심했다”며 치를 떠는 기성세대들도 있고, “눈에 보이는 가혹행위는 많이 사라졌지만 개선해야 할 문제들이 여전히 많다”고 주장하는 Z세대들도 있다. 개인에 따라 경험도 소회도 다르나, “병영현실이 바뀌었다”며 공식적으로 유감을 표명한 국방부의 입장과는 달리 드라마가 사실을 왜곡했다고 지적하는 예비역들은 거의 없다.

2019년에 개봉한 영화 <82년생 김지영>이 떠오른다. 당시 “연인들이 이 영화를 함께 보면 헤어질 수도 있다”는 말이 돌 정도로 영화는 우리 사회에 상당한 파장을 일으켰다. “주인공이 겪었던 차별을 나도 경험했다”고 공감을 표하는 여성들도 많았고, “한국에서 여성으로 산다는 것이 이런 의미일 줄 몰랐다”며 함께 아파한 남성들도 있었다. 그리고 “왜 남성들을 가해자로 몰아가나? 남자들도 힘들다”며 불만을 표하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성별 갈등을 조장하려는 의도로 제작된 영화가 아님에도 <82년생 김지영>과 관련된 논의는 혐오와 적대감이라는 불편한 감정들을 줄곧 벗어나지 못했다.

전혀 다른 주제를 다룬 것 같지만, 이 작품들은 본질적으로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 여성이 사회에서 겪는 차별, 남성들이 군대에서 경험하는 가혹행위의 이유를 찾아 거슬러 올라가다보면, ‘대의(大義)’ ‘공동체’를 앞세워 누군가의 희생을 요구하는 위계질서와 마주치게 된다. 1960~1980년대 가난한 가정에서는 입을 하나라도 줄이고 집안을 일으킬 아들을 교육시키려 딸들을 남의 집 식모나 공장 노동자로 보냈으며, 누이의 희생 위에 교육의 기회를 잡았던 아들들은 졸업 후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야근과 과로에 시달려야 했다. 눈에 보이거나 보이지 않는 갖가지 압력에 의해 누군가는 자원하여 또 누군가는 억지로 스스로를 희생했으며, 이런 종류의 희생은 오랫동안 고결하며 당연한 것으로 인식되어왔다.

이 ‘당연한 희생’이 굳이 필요하지 않은 부분까지 확대 적용되는 경우도 부지기수였다. 후배의 아이디어가 선배의 것으로 둔갑하고, 구성원들이 장시간의 논의 끝에 도출한 결론이 최고참의 말 한마디에 물거품이 되며, 소속 기관의 비리를 알면서도 침묵해야 하는 일들이 빈번했다. ‘대의’를 중시하고 신속한 일처리를 강조하는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사람들은 위계질서에 근거하여 공동체를 바라보는 것에 익숙했다. 즉 많은 정보를 파악하고 있는 윗사람은 보안상 아랫사람들과 정보를 공유해선 안 되고, 그러다보니 구성원들이 대등한 수준에서 진행하는 논의란 사실상 불가능하며, 결국 위에서 지시하는 대로 따르는 것이 전체를 위한 것이라는 논리가 팽배해진 것이다. 이에 따라 사회적 약자의 불만은 왕왕 공동체에 유해하다고 인식되었다.

고도의 경제성장과 교육수준의 향상 위에 성장한 새로운 세대, 특히 1980년대 이후 세대는 그간의 ‘당연한 희생’에 대해 의구심을 드러내며 당당히 자신의 목소리를 높인다. 이들은 ‘대의’와 ‘공동체’라는 명분만으로는 설득되지 않고, 여러 사회적 이슈를 계기로 삼아 한국 사회가 오랫동안 감춰두었던 병폐들을 양지로 끌어내었다.

<82년생 김지영>, <D.P.>와 같은 작품들 역시 한 명의 존엄한 개인으로 인정받지 못한 약자들의 아픔을 토로하고 있다. 전자가 이제껏 누군가의 무엇으로만 살기를 강요당했던 여성의 이름을 회복하고 출산과 육아가 여성의 삶에 걸림돌이 되지 않는 사회를 함께 만들어가자고 호소한다면, 후자는 국방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인생의 가장 빛나는 시간을 바치는 청년들의 희생과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이 더 이상 어처구니없는 이유로 짓밟혀서는 안 된다고 역설한다. 두 작품 모두 약자의 희생만으로 공동체가 유지되는 시대는 저물고, 서로의 아픔에 귀 기울이며 함께 변화를 모색해야만 진정한 ‘우리’로 설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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