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도 기억하지 않는 순간, 다양한 삶의 무늬를 담아내온 독립 영화. 쏟아지는 상업 영화 속에서 또 다른 삶의 가치를 강조하던 광주의 독립영화에는 저항의 정신이 배여 있다. 광주 지역 영화인들의 연대와 실천을 이끌기 위해 설립된 ‘광주영화영상인연대(이하 영화연대)’는, 광주 시민의 영화·영상 문화 활동 참여를 독려하기 위해 광주영화인의 목소리를 담은 비평지 <씬 1980>을 만들어왔다. <전대신문>이 광주영화비평지 <씬 1980> 편집장 한재섭 씨를 만나 광주독립영화에 대한 전반적인 이야기를 들어봤다.

▲ 왼쪽부터 최성욱, 조대영, 김수진, 한재섭 씨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어떤 방식으로든 나아갈 것”
누구도 서술하지 않았던 광주영화사를 기록하는 광주영화비평지 <씬 1980>. 광주영화인의 이야기를 기록하는 <씬 1980>은 ‘기록되지 않은 것은 역사가 될 수 없다’는 신념으로 시작됐다.
한재섭 편집장은 <씬 1980>의 방향성이 ‘세계에 대한 상투적인 해석을 경멸하는 것’에 있다고 말한다. 그는 “기존의 여러 영화 매체가 다루고 있는 평이한 시각으로 광주독립영화를 바라보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다”며 “지역적 한계가 있는 광주에서 광주영화가 어떻게 제작되고 향유되는지를 우리만의 시각으로 기록하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영화를 둘러싼 기존의 주류적인 생각을 답습하는 것이 아니라, 다소 어설퍼도 영화연대만의 색깔이 묻어나는 비평지를 만들어내고자 그들은 여러 밤을 지새웠다.
<씬 1980>은 광주 독립 영화에 대한 성과와 작품을 홍보하고 광주영화인을 발굴하기 위해 나아가고 있다. 한재섭 편집장은 <씬 1980>이 모색할 방향은 ‘지역 영화감독들에 대한 무게감 있는 비평’에 있다고 말한다. 위축된 지역 독립 영화인들을 이끌어내 지면을 제공하고, 그들의 초석이 되고자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어떤 방식으로든 나아가겠다는 것이다.
한 편집장은 “대부분 수도권 중심으로 문화예술, 담론, 비평 등이 이뤄지기 때문에 광주를 중심으로 비평지를 낸다는 자체가 전무한 일이자 큰 성과라고 생각한다”며 “가능성이 무궁무진한 지역의 영화인들이 자생적으로 활발히 활동하도록 발판이 될 것이다”고 전했다.

▲ 광주영화영상인연대 실무진들

1980, ‘광주’ 또는 ‘5.18’
한 편집장은 5.18 광주민주화운동이 한국영화사에서 가장 중요한 분기점 중 하나라고 말한다. 암울한 시기를 겪으며, 영화가 상업적인 오락물에서 그치지 않고 현실 세계의 고통을 담아 변화할 수 있는 매체로서 부상하게 됐다는 설명이다.
1980년, 광주에도 영화를 찍고 싶어 했던 이들이 있었다. 한 편집장은 “1980년 이후 한국영화사와 독립영화사에 큰 족적을 남긴 영화 <광주비디오>의 경이로움을 기억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당시 우리 대학 총학생회장이었던 박관현 열사의 투쟁사가 담긴 영화 <박관현> 다큐멘터리의 행방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웃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으려 했던 ‘세계’와 ‘영화에 매혹당한 자’들에 대한 성실한 기억의 의무를 저버려선 안 된다는 것이다. 그는 “<박관현> 다큐멘터리가 사범대 1호관에서 상영됐다는 제보를 듣고 홍도에 찾아가 영화 상영 흔적을 찾아봤지만 찾을 수 없었다”며 “이 영상을 찾는다면 광주에서도 1980년 당시 영화를 찍었다는 실제 물적 증거가 되므로, 광주의 영화운동사가 한 단계 더 나아갈 수 있다”고 말했다.

▲ <씬 1980> 편집장 한재섭 씨

광주의 독립영화, 그리고 팬데믹 시대의 영화
어느새 4호까지 발간된 <씬 1980>. 광주시와 공공기관은 이들의 목소리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올해 광주영상영화진흥위원회가 출범했으며, 이 안에서 광주영화의 부흥을 위한 정책 논의가 이뤄질 전망이다.
<씬 1980>은 영화의 불모지로 여겨지는 지방이라는 무대에서 ‘광주영화’가 가진 가능성을 외부에 알릴 수 있었던 기회가 됐다. 한 편집장은 “광주영화인 배출을 위해서 소비와 향유 주체, 가치를 부여해줄 수 있는 비평 주체, 이들을 발원하는 교육 개념으로서의 주체가 동시에 이뤄져야 한다”며 우려 섞인 기대를 보였다.
또한 그는 “광주영화의 매력을 널리 알리고 우리의 색깔을 정확하게 갖는 것이 오랜 숙제다”며 “광주는 영화를 창작할 환경이 부족한 것이 사실이지만, ‘광주에서 영화란 무엇일까’라는 고민은 끊이지 않아야 한다”고 전했다.
독자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광주독립영화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한 편집장은, 2018년 청룡영화제에서 단편영화상을 수상했던 허지은, 이경호 감독의 <신기록>을 언급했다. 두 감독 모두 우리 대학 국문과 출신으로, 데이트 폭력과 가정폭력을 당하는 여성들의 연대감을 다룬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어 많은 이들이 공감을 불러일으켰다고 한다.
한편, 코로나19로 인해 극장가에 발길이 끊기고 OTT 플랫폼(개방된 인터넷으로 방송 프로그램, 영화 등 미디어 콘텐츠를 제공하는 서비스)이 성행하며 넷플릭스 등으로 집에서 영화를 보는 것이 추세가 됐다. 영화제도 온라인으로 개최되는 요즘, 시대의 흐름에 따라 영화를 관람하는 환경은 늘 바뀌기 마련이다. 한 편집장은 “20세기를 차지하던 필름 영화가 사라지고 2000년대부터 디지털 영화가 자리를 잡은 것처럼, 극장이라는 공간은 코로나 시대 속에서 문화, 민주주의의 마지막 보루가 될 것이다”고 말했다.

▲ 그간 발행된 <씬 1980>의 모습

끝으로 한 편집장은 광주독립영화관이 광주 시민들에게 오래 기억되길 바란다는 소망을 전했다. 그는 “삶의 단편적인 패턴 속에서 낙오될 때 한국 사회에서 이탈되는 심리를 겪을 수 있는데, 늘 독립영화의 존재를 기억하고 향유하길 바란다”며 “치열한 현실 속에서 감각이 무뎌질 때, 독립영화는 다른 삶의 가치를 깨닫고 존재에 대한 감각을 되찾을 수 있는 안식처가 될 것이다”고 조언했다. 

저작권자 © 전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