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퇴할까?”
재학시절 내가 동기에게 가장 많이 했던 말이다. 처음에는 진학하고 싶었던 대학 입시에 실패한 뒤 성적에 맞춰서 들어간 학과여서 적응이 안 된다고 생각했는데 여름 농촌활동을 다녀와서는 과 사람들이 재미가 없다는 심심찮은 이유도 덧붙여졌다. 농촌활동 뒤풀이 다음날, 동기가 술에 취해 선배들 앞에서 실수를 했다는 이유로 ‘자퇴할까’ 건넨 말. 동기는 농담이었지만 나는 “자퇴, 같이 하자”라고 덜컥 진심으로 답하곤 했다.

2학년 1학기 기말고사 마지막 날 아침이었다. 머릿속으로는 광주를 떠나 서울로 향할 궁리를 하고 있었다. 자퇴를 하고 평소 유일하게 재미를 느꼈던 영화공부를 서울에서 하자 싶었다.
굳은 결심을 품고서 기말고사를 보고 교수님께 시험지를 제출하며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마음 속으로 마지막 인사까지 마쳤다. 그리고는 빌린 전공서적을 제자리에 가져다두려고 학과실에 들어갔다가 학과 선배 한 명을 만나게 되었고, 결국 자퇴의 결심을 전공서적과 함께 버려 두고 나왔다.

자퇴를 하기 위한 절차는 꽤나 간단하다. 학과장님과 도서관장님의 도장을 퇴학원에 찍으면 된다. 지도교수님과 상담을 할 수도 있지만 자퇴의사를 열렬히 보인다면 그렇게 어려운 시간은 아니다.
자퇴를 하러 가는 길이라는 나에게 그 날 학과실에서 처음 만난, 자퇴했던 선배는 무심하게 툭 알려준 이야기다. 그 선배는 자퇴는 어려운 게 아니니 하고 싶으면 하라고 했다. 어차피 재입학도 자퇴만큼 쉽다고 했다. 어떻게 아냐 물으니 자기가 자퇴했다가 재입학해서 지금 여기 앉아있는 것이라 했다.

모든 일은 시작보다 끝이 중요하다는데 언제나 끝이 어렵다. 끝이 시작보다 중요한 이유를 사람들은 이렇게 설명한다. 끝은 새로운 시작이 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선배의 말을 듣고 나니 자퇴 후 나의 시작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재입학도 내 길이 될 수 있겠구나’ 염두에 두니 그동안 그려왔던 미래는 자퇴에서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 학기가 시작될 무렵 학교 내에서 작은 영화팀을 만들었다. 팀원 네 명으로 구성된 조촐한 단편영화 팀이었다. 팀 이름은 ‘50g’이었다. 팀 초기에 넷이 같이 감동적이게 감상한 새끼 원앙에 대한 다큐에서 따온 것이었다. 날기 위해 태어나서 처음으로 나무에서 뛰어내리는 새끼 원앙이 날지 못하고 바닥에 떨어져도 무게가 고작 50g이어서 다치는 곳 하나 없다는 내용의 다큐였다.

우리는 아직 가벼운 존재들이기 때문에 뛰어내려도 다치지 않는다. 나는 자퇴하지 않고 영화팀 ‘50g’을 시작했고 그 선택으로 작년 말 블록버스터는 아니지만 조촐하지 않은 규모의 단편 데뷔작을 연출했다. 다만 좋아하는 것이 있었기에 가능한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당신에게 좋아하는 것이 있고 뛰어내릴 준비가 됐다면 무엇을 시작으로 할 것인가. 아직 늦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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