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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문예작품현상공모 단편소설 부문 가작 '이별 없는 사람'■ 2020 문예작품현상공모 단편소설 부문 가작
김남수(철학·16)  |  news@cnumedi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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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0.11.12  13:3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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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 없는 사람

김남수(철학·16)

1.

엄마와의 이별은 18시간이 지났고, D와의 이별은 24시간 미뤄졌다.
나는 이별하고 있는 중이다. 이별은 끊임없이 반복되기에 우리는 언제나 이별하는 마음으로 살아야 한다. 엄마와 D, 그리고 내 고향과 국가 모든 나로부터 끊임없이 이별하고 있는 중이다. 그럼에도 불안한 것은 어쩔 수 없다. 순간적으로 내가 무언가를 소유한 것 같은 기분이 들고, 순간적으로 어떤 감정이 나를 사로잡기 때문이다. 지금 내가 느끼고 있는 불안처럼 어떤 감정은 진실로 내 감정이라고 느껴질 때가 있다. 하지만 그 불안이 영원하지 않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렇다면 ‘나’는 순간적으로 나타나는 것일까?

2.

오사카를 지나 도쿄로 올라온 태풍으로 인해 공항에 발이 묶였다. 밤은 아니었지만 밖은 어두침침했다. 구름은 빠르게 공항의 상공을 지나쳤다. 구름이 움직일 때마다 잿빛 구름의 갈라진 틈 속에서 하얀 속살이 드러났다. ‘틈을 보이면 안 된다.’, ‘허점을 들켜서는 안 된다.’ 엄마가 항상 하는 말이었다. 구름의 허점에 피식 웃음이 났다. 끊임없이 움직이다 소멸될 구름을 비웃는다고 달라질 일은 없다. 그러나 움직일 때마다 틈을 보이는 내가 어설펐다.


온갖 틈으로 이뤄진 사람에게 틈은 무엇일까? D는 그런 사람이었다. 자신의 감정을 숨길 수 없는 사람이었다. 그의 모든 몸짓에서 그의 생각을 읽을 수 있었다. 자신이 좋아하는 음식을 먹으면 눈 밑이 부르르 떨렸고, 자신이 싫어하는 광경을 보았을 때는 발을 동동 굴렀다. 이런 행동에서 뿜어져 나오는 감정뿐만 아니라, 나는 그가 밥을 먹다가 어떤 이야기를 할지 예상할 수 있었다. 그가 잠시 어떤 것을 바라보고 있을 때, 예를 들어 ‘낭만 고양이’라는 가게간판을 보고 있을 때 그는 3초 뒤에 나에게 말한다. 저 가게 이름의 뜻은 ‘낭만적인 고양이라는 것일까? 아니면 고양이가 낭만적이라는 것일까? 낭만적인 건 뭘까?’ 라는 시시콜콜한, 그러면서도 대답하기 난감한 질문에 나는 예상했다는 듯이 말한다. ‘그게 왜 중요해?’ D는 조용해진다. 우리는 도착지까지 말없이 갈 수 있다. 그리고 도착지에 도착했을 때쯤 그는 말한다. ‘그게 왜 중요하지 않아?’

피곤하다. 태풍이 오는 줄 알았으면 지금 시간대의 비행기 표를 끊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7개월 전에 날씨를 예측할 수 있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기상청의 슈퍼컴퓨터도 비가 올지 오지 않을지 예측하지 못하는데. 자연은 받아들일 뿐이다. 하지만 인간은? 선택해야 한다. 어떤 사람과 관계를 할 것인지, 그만 관계를 중단할 것인지. 선택하지 않으면 피곤해진다. 현재 D와 나의 관계처럼. 하지만 이제 끝이 날 것이다. 내가 캐나다에 도착해서 친 아빠의 집에 도착했을 때, 페이스북 메시지로 ‘그만 헤어지자’라고 문자를 보낼 것이다. 나는 그 시간을 한 달 전부터 상상해왔다.

3.

D는 나를 나리타 공항까지 배웅해 주었다. 나는 D를 하네다 공항으로 향하는 공항버스에 태운 후 화장실로 들어갔다. 사람이 많은 곳보다, 혼자 있을 수 있는 화장실이 나았다. 나리타 공항의 화장실에서는 특유의 쇠 냄새가 났다. 비릿한 듯하면서도, 계속 맡고 있으면 익숙해지는 냄새였다. 누군가의 배변냄새가 나는 것보다 훨씬 나았다. 1평도 되지 않는 화장실에서 눈을 감는다. 그러면 끝이 보이지 않는 어둠이 찾아온다. 그곳에는 평이라는 개념이 적용되지 않는다. 공간이라는 개념이 적용될 수 없기 때문에, 무한하다. 무한 속에서 나는 새로운 공간을 상상한다. 비행기에서 내리면 퀘백의 옅은 숲 냄새가 펼쳐진다. 그리고 빙하가 녹아 만들어진 호수에서 수영을 할 것이다. 아니, 아무도 찾지 않는 숲 속을 걷다가 곰과 마주칠 수도 있겠다. 그렇게 끝나는 삶도 나쁘지는 않겠지. 한국을 떠나는 것만으로도 나는 만족한다. 어떤 풍경이 펼쳐지든, 새로움을 줄 것만 같았다.

‘아 시간이 몇 시지?’

핸드폰을 화면을 보니 19시 20분이었다. 화장실에 3시간이나 앉아있었다. 사타구니가 저려왔다. 저녁을 먹는 시간이 평소보다 20분이나 늦어졌다.
‘한국도 캐나다도 아닌데 이 정도는 괜찮겠지.’

나는 화장실 문을 나섰다. 화장실에 들어오기 위해 줄 서있는 사람들이 나를 한 번 힐끗 쳐다보고는 다시 핸드폰을 봤다. 많은 사람들의 발이 묶여 있었기에 밥을 먹기 위해서는 식당 문 앞에서 줄을 서야했다. 줄 서는 시간은 지루했다. 아직 캐나다에 도착하지 못했다는 것과 상상의 시간을 가질 수 없다는 것은 내게 큰 지루함으로 다가왔다. 공항 유리창 밖으로 나무가 흔들렸다.

‘D는 하네다 공항에 도착했겠지?’

D는 사랑을 위해서라면 캐나다까지 따라올 것 같은 사람이다. 안 그래도 공항 앞에서 방학 때 캐나다에 가겠다고 이야기했다. 지금쯤 하네다 공항에 도착해 캐나다로 향하는 비행기 값을 검색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나와 같이 캐나다로 향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일주일 전 이야기이다.

D와 마지막 인사를 하고 기차역에서 헤어지려고 했다. 하지만 그는 나의 손을 잡고 이야기했다.

“오늘 하루만 같이 있으면 안 될까?”

하루만이 아니었다.

“그럴까?”

D는 어플을 켜서 싸구려 모텔을 잡았다. 그는 모텔로 향하는 내내 기차표를 취소하고 있었고, 프론트에서 키를 받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방으로 향하는 중에는 새벽 기차표를 예매하고 있었다. 오래된 모텔이라 쾌쾌한 냄새가 났고, D의 옷에서 나는 축축한 냄새는 나를 피곤하게 만들었다. 나는 모텔 침대에 누워 그에게 말했다.

“빨리 씻어. 땀 냄새나”

그는 말없이 욕실로 향했다. 싸구려 모텔인데 욕실이 반투명유리로 되어있었다. 전체가 반투명유리로 되어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의 무릎에서 목까지 반투명처리가 되어있었고, 나머지 부분은 투명했다. 나는 밖에서 그가 씻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는 특이하게 씻었다. 샴푸로 머리에 거품을 내는 동시에 얼굴에 클렌징을 하고, 얼굴에 클렌징을 하는 동시에 몸에 바디워시를 발랐다. 그 일은 순식간에 일어났다. 그가 얼굴을 돌려 나와 눈을 마주치려고 하면 나는 고개를 돌렸다. 그가 다 씻고 모텔에 있는 로션으로 얼굴을 토닥이면서 이야기했다.

“너도 씻어.”

“나는 땀이 안 나서, 내일 집 가서 씻을 게.”

그의 표정이 멈칫했다. 그러고는
“너 마음대로 해”

잠깐의 정적이 흘렀다. 하지만 이내 그는 말을 걸어왔다. 그는 페이스북 게시물을 가리키면서 말했다.

“이거 봤어?”

“뭔데?”

그 게시물에는 장거리 연애의 힘든 점에 대해 적혀 있었다. 그 글을 다 읽자 D는 내게 다른 게시물을 보여주었다. 그 글에는 군대를 기다리는 것에 대한 찬사가 적혀 있었다. 그는 웃으면서 이야기했다.

“너는 군대 안 기다려도 돼서 좋겠다.”

“…”

“너 캐나다에서 학교 다닐 동안 군대 다녀오면 되니까!”

그는 헤어짐에 대한 합리화를 하고 있는 것일까? 그의 입술은 웃고 있었지만 눈은 서글퍼 보였다. 곧 울 것 같았다. D는 얼마 전에도 나를 껴안고 울었던 적이 있다. 캐나다에 가서도 자기를 잊지 말라면서, 한강 공원 벤치에 앉아 엉엉 울었다. 우는 모습이 D같아서 안아주었다.

“너는 이미 잊을 수 없는 사람이야.”

진심이었다. 모든 연애의 순간을 기억할 수 없지만, D라는 사람이 있었고, 그와 연애를 했다는 것은 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는 옷 소매로 눈물을 닦으면서 내게 책 한 권을 건넸다. 볼프강 보르헤르트의 ‘이별 없는 세대’였다. 그는 말했다.

“지금 펼쳐보면 안 돼. 너 비행기에 탔을 때 읽어줘.”

나는 그 책을 작은 가방에 그 책을 넣어두었다.

그는 내가 누워있는 곳으로 다가왔다. 서서히 나의 몸은 어둠으로 덮여갔다. 그의 젖은 머리카락에서 나는 샴푸의 향과 얼굴에서 나는 로션향이 어우러져 나를 역하게 만들었다. 나는 속으로 ‘오늘이 마지막이니까 참아’라고 말하며 나를 다독였다. 그는 언제나 열정적이었다. 하지만 나를 만족시키지 못했다. 섹스는 노력한다고 되는 문제가 아니었다. 그럼에도 나는 연기를 한다. 신음을 낸다. 정신이 멀쩡하다. 나는 그와 섹스를 할 때 창밖 너머의 풍경을 상상한다. 어둠의 입자 뒤로 펼쳐지는 침엽수 숲, 그리고 숲길 끝에 따뜻하게 빛나고 있는 오두막이 있다. 그곳에서 만나는 새로운 사람을 만난다. 그리고 서로가 살아온 삶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자신이 인상깊게 읽은 책을 이야기한다. 그는 볼프강 보르헤르트의 ‘이별 없는 세대’를 인상깊게 읽었다고 말한다.

‘이별 없는 세대?’

가끔 상상이 어긋날 때가 있다. 다시 눈을 감는다.

나는 그 사람을 상상하면서 D와 섹스를 한다. 결국 그에게도 D에게도 실망하고 말지만. 내가 상상할 수 있는 것은 기억의 잔해들이기에 어쩔 수 없다. 상상의 한계가 명확해질수록 나는 새로운 것을 갈망하게 된다.

“좋았어?”

난감하다. 이럴 때일수록 나는 D의 말을 빌려온다.

“좋은 게 뭘까?”

D는 기분이 상했지만, 확인을 해야겠다는 듯이 물었다.

“만족했냐는 질문이었어.”

“만족했어.”

“다행이다.”

거짓말을 할 필요는 없었다. 하지만 관계를 나쁘게 이어갈 필요도 없었다. D와 관계를 할 때마다 하는 거짓말이기에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다. 그 거짓말을 할 때 나의 죄책감은 0에 가깝다. 0에 무엇을 곱해도 0이 되었다. 하지만 거짓말을 했다는 것은 기억되었다. 0을 어떤 숫자로 나눌 수 없는 것처럼. 이 관계를 끝내야 겠다는 생각을 했을 때부터 나는 D에게 잘해주게 되었다. 물론 잘 해준다는 것은 거짓이나 위선적인 행동을 해왔다는 것이다. D는 좋아했다.

D는 한동안 나를 끌어안고 놓아주지 않았다.

“네가 영영 내 곁을 떠날까 봐 두려워.”

“넌 참 낭만적인 사람이야.”

“낭만적인 게 뭔 데?”

“끝을 끝이라고 말하지 않으려는 거?”

“…”

“영원한 걸 바란다는 거?”

“좋다는 거야?”

“응. 나를 기억하고 그리워해줄 사람이 있다는 거잖아.”

영원한 걸 바란다는 것은 미래를 현재에 붙잡아 놓는 행위였다. 그것이 문제였다. 나는 그의 미래에 붙잡힌 채 살고 싶지 않았다.

“너 나랑 헤어지려고 하지?”

나는 그의 눈을 보고 말했다.
“아니.”

눈동자가 흔들리지 않게 말하는 것이 중요했다.
“나는 그런 줄 알고…”

D가 울었다. 나는 그를 안고 등을 토닥여주었다. 틈을 보이지않는 사람에게 틈은 오점으로 남는다. 하지만 일상자체가 틈으로 존재하는 사람에게 틈은 가끔씩 날카롭게 상대방의 마음을 파고드는 순간이 아닐까? D의 날카로움은 오래가지 못한다. 다시 틈으로 가득한 그의 등을 두드리면서 ‘아니야’라는 말을 반복한다. 그가 안정을 취할 때까지. 지금은 그와 헤어짐을 가질 시간이 아니다. 모든 것은 계획대로 이루어져야 한다. 엄마가 말했듯이.


4.

20분정도 기다린 후 식당에 들어갈 수 있었다. 나는 주문 기계에서 카레우동을 시키고 일렬로 된 창가 자리에 앉았다. 오른 쪽에 앉은 외국인 부부는 음식을 먹지 않고 있었고, 왼쪽에 앉은 사람은 젓가락 질이 서투른 지 우동을 포크로 돌돌 말아 파스타처럼 먹고 있었다. 스피커에서는 일본 재즈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창가 자리라 창을 바라볼 때마다 줄 서 있는 사람들과 눈이 마주쳤다. 빨리 먹고 나오라는 무언의 압박처럼 느껴졌지만, 옆에 있는 외국인 부부를 보면서 용기를 냈다. 나는 이곳에서 밥을 먹을 시간을 산 것이라고 마음을 먹고 평소의 속도대로 식사를 했다. 포크로 우동을 먹던 사람이 놓친 단무지가 내 가방위로 떨어졌다. 아이보리색 가방이 노란 반점으로 물들었다. 그가 사과하는 몸짓으로 이야기했고, 나는 괜찮다는 듯이 손을 내밀며 방긋 웃었다.

엄마는 항상 음식을 흘려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특히 다른 사람들과 함께 식사를 할 때 유의하라고 말했다. 다른 사람들과 식사할 때 음식을 떨어뜨리지 않기 위해서는 혼자 밥을 먹을 때도 주의해서 식사하는 습관을 길러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내가 7살 때였다. 엄마는 틈을 보이지 않는 사람이었다. 항상 감정을 드러내면 안 된다고 말했다. 더 나아가 상대방에게 감정을 드러내지 않기 위해서는 자신의 감정을 자신에게도 숨겨야 한다고 말했다.

나는 그런 엄마와 D가 만나는 것을 두려워했다. 둘의 성격이 정 반대였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고등학교 졸업식 때 D와 엄마가 인사를 나누게 되었다. 엄마는 졸업식에서 돌아와 나에게 말했다.
“D랑 헤어져”

“왜”

“너 유학준비 해야 하는데 연애할 시간이 있니?”

“지금 좋으면 된 거 아닌가?”

“너한테 도움이 되는 사람을 만나.”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차라리 솔직한 편이 좋았다. 나를 걱정해준다는 식의 어투였으면 헛구역질이 나왔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자신의 삶에 내가 성공시켜야 하는 프로젝트, 혹은 주식인 것 같은 태도는 오히려 진정성이 느껴졌다. 전남편과 그런 이유로 이혼하고, 새 남편과 그런 이유로 결합했으니 엄마는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나는 엄마의 말을 무시했다. 하지만 무시하지 않은 듯이 행동했다. 나는 방에 들어가 전화기를 부여잡았다. D에게 전화를 걸지 않았지만 D와 싸우는 연기를 했다.

“우리 헤어져! 실증 났어. 나는 지금을 살아가기도 버거워. 유학준비도 바쁘고, 힘들어. 그리고 엄마가 헤어지라고 했어.”

나는 엄마가 만족할 때까지 연기를 했다. 그러고는 화장실 문을 쾅 닫고, 변기에 앉았다. 고향집 내 방은 나만의 공간이 아니었다. 엄마가 몰래 카메라를 설치해 놓은 것은 아닐까? 라는 생각을 했던 적도 있다. 그래서 나는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할 때마다 화장실로 향했다. 그리고 누군가 문을 두드리면 물을 내렸다 화장실 안에서 한 모든 상상과 일탈이 물처럼 빙글빙글 돌면서 하수구로 빨려 들어갔다. 그리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손을 씻고 변기 옆에 걸려있는 수건으로 물기를 닦은 후 화장실을 나왔다.

엄마는 D가 나를 나리타 공항까지 배웅해 준다는 사실을 말하지 않았다. 마지막까지 엄마의 친절한 인생 브리핑을 듣기 싫었기 때문이다. 나는 D에게 나보다 먼저 공항수속을 통과하라고 말했다. 그 후 인천공항 면세점에서 만나자고 했다. 사실 엄마가 인천공항까지 배웅해주지 않기를, D가 나를 배웅해주지 않기를 바랐었다. 하지만 이제 곧 이별하게 될 사람들에게 진심을 드러내기 싫었다. 아니, ‘아까웠다’라고 표현하는 게 더 정확하다.

밥을 먹고 창밖을 보니, 비가 더욱 거세게 몰아치고 있었다. 사선으로 몰아치는 빗방울과 수직으로 내리는 빗방울이 합쳐지고, 분리되고 있었다. 한 번씩 부서진 나뭇가지들이 날아와 공항 유리창에 부딪혔다. 나는 언제나 부딪히고 있었다. 항상 그 대상이 달라졌을 뿐, 바닥은 곧 수직으로 솟구쳐올라 벽이 되었고, 내가 걸어갈 길에는 엄마의 말이 유리조각처럼 박혀 있었다. 유리조각을 밟으면서도 엄마에게는 안 아프다는 듯이 웃어 보였다. 불안한 기색이 있으면 그 길이 없어질 수도 있었기에.

D는 내게 언제나 물어왔다. 그가 말하지 않고 있는 중에도, 나는 그가 묻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외면했다. 그는 그 질문을 하면 내가 불편해 할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고, 나는 그것을 이용했다. 하지만 어제 하네다 공항 호텔에서 그는 내게 물었다.
“너는 왜 그 길을 걷고 있어?”

“어떤 길?”

“지금 네가 걷고 있는 삶.”

“…”

“네가 불편해 할 것 같아서 이야기 못했었어.”

“불편해 할 것 아는데 왜 이야기하는 거야?”

“네가 궁금해서.”

나도 모르게 그에게 틈을 보이고 말았다.
“오늘이 마지막인데 그만하자.”

그는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
“꼭 곧 헤어지려고 하는 사람처럼 이야기한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난 네가 좋아서 여기까지 따라왔는데 왜 그것도 이야기 못해줘. 내가 못 미더워?”

“너 마치 내가 여기까지 배웅해달라고 한 것처럼 이야기한다.”
틈을 보이고 말았다. 그는 다시 감정적으로 나에게 대답을 할 것이다. 한 번 틈을 보인 후에는 틈이 벌어지지 않게 조심해야 한다. 틈이 메꿔질 때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다. 아니면, 반창고 같은 임시방편을 사용해야 한다. D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자기를 자책하고 있을 것이다.

“아니, 나는 네가 불편할 것 같아서 그랬어.”

“…”

“네 일상을 부셔가면서까지 나를 배웅해주겠다는 게 미안했어.”

D는 여전히 말이 없었다. D가 나를 배웅해 주기로 한 것은 내가 캐나다로 향하기 이틀 전에 결정된 일이었다. D는 웃으면서 내게 전화를 걸었다. 전화의 내용은 일본으로 향하는 비행기표를 끊었고, 일본까지 배웅해주겠다는 내용이었다. 자기가 결정한 일이기 때문에 부담가지지 말라고 말했다. 부담은 되지 않았다. 싫었을 뿐. 인천공항에서 출발한 비행기가 대한민국 영해를 벗어났을 때부터 나는 자유로울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구속이 일본까지 늘어났다는 것에 오히려 화가 났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틈을 끊임없이 보이는 D의 모습에 의문이 생겼다. 모든 게 거짓이었을까? 이 모든 것이 계획된 일이었다면? 두렵다. 지금까지 나는 무언가를 잃어 본 적이 없다. 내가 먼저 그것들을 떠나왔기 때문에. 내가 그것을 잃어버림으로 인해 느낄 공허함과 슬픔을 먼저 상상하고, 마음을 정리한 후에는 그것은 나에게 필요 없는 것이 되어있었다. 어떤 사람도 마찬가지였다. 혹시 D는 자신이 먼저 나를 떠나려고 했던 것은 아닐까? 내 계획에 의해, 내 의도에 의해 이 관계가 정리되는 것이 아니라, D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라면? 나는 그 일을 상상할 수 없다.

5시간 전, 나리타 공항에 도착한 후 체크인을 하고 시간이 많이 남아 있었다. D는 내 손을 잡고 공항의 구석진 곳을 찾아 끊임없이 돌아다녔다. D는 그런 사람이었다.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이 어떻게 비춰질지에 대해 고민하고, 걱정하는 사람. D는 마지막까지 나와 키스를 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끝내 구석진 곳은 아니지만, 한적한 곳에 도착해 끊임없이 나에게 키스를 갈구했기 때문이다. 나쁘지는 않았다. 마지막까지 내게 사랑을 증명을 하라는 듯한 몸짓에 그가 안타까웠다. 그런 D가 이별을 생각한다는 것은 틈을 없애려고 노력하는 사람보다 더 무서운 것이다. 다른 사람들에게 의도적으로 틈을 보여준다는 것은 틈을 없애려고 노력하는 사람보다 더 어려운 일이 아닐까.


5.

태풍이 잦아들지 않는다. 오히려 더욱 거세지고 있다. 빗방울의 틈 속에서 바람이 분다. 바람은 빗방울을 피해 나무로, 가로등으로 유리창으로 향한다. 공항 방송이 울린다. 내일 오전이 되어서야 비행기가 출항할 수 있다는 방송이었다. 내일 아침까지 여기서 버텨야 한다. 모든 의자는 비행기를 기다리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모두 어떤 곳으로 향하는 중이었다. 걷고 있는 중에 나는 어디에 있다고 말할 수 있는가? 나는 앉을 곳을 찾아 공항 안을 돌아다녔다. 한적한 곳을 찾아 벽에 기댔다. 그 옆에는 외국인이 있었다. 문득 저 외국인에게 나는 어떤 사람으로 보일까 궁금했다. 뜬금없게도 외국인이 먼저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그의 이름은 I였다
“Are you Japanese?”

나는 일본인이 아니지만, 지금 일본에 있기 때문에 일본인이라고 답하고 싶었다.
“Yes, I’m Japanese. Where are you from?”

“I’m from Canada”

“Oh. I’m going to Canada too”

“Really?”
I는 벤쿠버에 살고 있었으며, 원어민 강사를 하기 위해 일본에 왔다고 했다. 그는 일본 문화를 좋아했다. 그리고는 나에게 왜 캐나다에 가는 거냐고 물어왔다. 나는 I에게 대학교를 캐나다로 가게 되었으며 다시 일본으로 돌아올 일은 없다고 말했다. I는 이렇게 좋은 나라를 왜 다시 돌아오지 않느냐고 물었다. 나는 I에게 사실 한국인이며, 일본에는 경유하기 위해 들렸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I는 놀란 기색이 없었다. 일본인이 아니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고 말했다. 일본인의 영어 발음이 아니었다고 말하며 웃었다. 나는 머쓱한 표정을 지었다. 그와 캐나다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내가 캐나다에 가지고 있던 환상도 점점 깨져갔다. 그가 이야기하는 인종차별적인 말들, 예를 들면 ‘아시아 여자들은 수줍음이 많다. 그런데 만나보면 더 밝히더라’라는 이야기나, 혹은 ‘중국 사람들은 마늘 냄새가 너무 많이 나서 대화할 때 힘들었다.’등의 이야기에 대해 나는 ‘Ha ha’하고 넘겼다. 그와 대화를 할수록 가슴이 턱 막히는 느낌이 들었기에 점점 I와의 대화는 줄어들었다. I는 나의 태도를 알아차렸는지 잠을 잔다고 하고 바닥에 누웠다.

I가 잠에 들고, 나는 D가 선물한 책을 꺼냈다. 그는 비행기에서 보라고 했지만, D가 옆에 없는데 그의 말을 지킬 이유는 없었다. 곧 헤어질 사람의 말에 진심을 담아 대답하지 않는 것처럼. 책의 앞을 펼치자 D의 편지가 적혀 있었다.

K에게.

나는 아직까지 너와 처음 만났던 때를 기억해. 그날 술집에서 너는 검은색 와이드 핏 슬랙스와 회색 가디건을 걸치고 있었어. 이제 이별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 이별이 끝없이 반복되면 그것을 이별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우리가 어떤 곳에 뿌리내리고 살기 때문에 어떤 곳과의 이별, 어떤 사람과 관계를 맺기 때문에 그 사람과의 이별이라고 말하는 거겠지? 하지만 요즘 그 속도가 너무나도 빠르다는 생각이 들어. 기차 차창에서 보는 바깥세상처럼, 모든 것이 빠르게 지나쳐버리는 것 같아. 그것에 대한 생각을 다 정리하기도 전에. 사실 네가 나에게 헤어지자고 말할 것 같았어. 내가 계속 너에게 묻는데도 너는 말을 하지 않더라. 그런데 묻는 나 자신도 이상해지는 거 있지? 끝내 나는 이렇게 결론을 내렸어. 사랑이라는 감정, 좋아한다는 감정만 남아 있다면 이 연애가 끝난다고 해도 나에게는 큰 상관이 없다고 말이야. 그러니까 네가 조금 더 하고 싶은 말을 하고 살았으면 해. 그것도 너라고 할 수 있겠지? 나에게는 이별이 없어. 항상 우리는 이별하면서 살고 있잖아. 영원한 걸 바라지 않아. 영원한 게 있다면 우리가 끊임없이 이별하게 될 것이라는 사실 아닐까? 네가 조금은 나에 대한 부담감을 덜었으면 좋겠다. 네가 다시 한국에 돌아온다면 웃으면서 인사하고 싶어. 캐나다에 가서 잘 지내고, 안녕.

2018년 9월 30일 해날
공항으로 가는 지하철 안에서 D가.

D의 편지를 읽고 화장실로 향했다. 화장실 안에서 D가 선물해준 책을 읽고, 또 읽는다. 이별이란 무엇인가? 나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이사를 많이 다니는 사람에게 많은 물품들은 짐이 될 뿐이다. 하루 먹고, 하루 살 수 있는 짐들, 꼭 필요한 외투, 속옷, 이불, 베게, 그리고 항상 품에 안고 다닐 책 한 권 정도만 있으면 된다. 너무 많은 것을 소유하려고 하면, 짐이 되고 어디론가 떠나기 점점 두려워질 뿐이다. 기억도 마찬가지였다. 많은 기억들을 그 시간, 공간에 옭아매려고 할 때 기억은 점점 무거워지고 신격화 되었다.
누군가 화장실 문을 ‘똑 똑’ 두드린다. 공항 관리원들이었다. 그들은 나에게 너무 오랫동안 화장실 안에 있어서 어떤 승객이 신고를 했고, 출동했다고 말했다. 나는 아까 먹은 우동이 속을 안 좋게 만들었다고 말하며 자리를 피했다. 공항의 창을 보니 점점 날이 밝아오고 있었다. 태풍이 멎어있었다. 창밖을 보니 활주로를 정비하는 사람들이 분주하게 움직였다.

나는 D에게 페이스북 메시지를 남겼다.

‘여기, 지금’ 나는 어떻게 정의내릴 수 있을까? 끊임없이 이별하고 있는 중인 우리에게 ‘이별’이라고 할 만한 것이 있을까? 나는 떠나고 있는 중이야. 우리가 언젠가 어딘가에 정착해 ‘여기, 지금’을 살 수 있었으면 해. 정말 ‘이별 없는 세상’에서 만났으면 좋겠다. 그러면 안녕. 잘 지내.

캐나다에 도착해서도 D에게 답장은 오지 않았다. 이별은 아니었다. 틈으로 가득 찬 사람에게 틈은 틈이 아니듯, 끊임없이 이별하는 사람들에게 이별은 이별이 아니었다. 캐나다에 내린 나는 다시 이별하기 시작했다. 공항과 공항 앞 택시정거장에서 지나친 사람들과 그리고 과거의 기억들과 이별하는 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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