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Χ를 Χ라고 부르지 않기■ 시 부문 당선 소감
이덕재 (철학·17)  |  news@cnumedi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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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0.11.09  22:3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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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숨 걸고 시 한 편을 써야 했던 사람이 있다. 조조의 아들인 조식이다. 왕이 된 조비는 경쟁자의 싹을 잘라내기 위해 조식을 죽이려 했다. 그러나 명분이 없었다. 조비는 조식이 시에 재능이 출중하니 자신이 일곱 걸음을 걸을 동안 시를 적어내라 한다. 시의 주제는 형제다. 단, 시에 형제라는 단어가 들어가면 안 된다. 만일 써내지 못하면 어명을 어긴 죄로 국법에 따라 죽이겠다고 한다.

조비의 이 명령은 사실 시의 본령이다. 시는 Χ를 Χ라고 말하지 않으면서 Χ에 대해서 이야기해야 한다. 세상에 완전히 똑같은 두 나무는 없다. 그런데 그 모든 나무를 ‘나무’라고 부른다. ‘나무’는 각 나무들의 고유성을 잘라내고 동일성만을 뽑아낸 민둥산 같은 개념이다. 개념은 그물코가 넓어 삶을 건져 올리지 못한다. 나무를 그저 나무라고 인식하는 순간 나무는 죽는다. 조비는 자신도 모르게 진리를 말해버린 것이다.

조식은 조비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시를 읊는다. “煮豆燃豆 (콩깍지를 태워 콩을 삶는다.) / 豆在釜中泣 (솥 안에서 콩이 흐느낀다.) / 本是同根生 (같은 뿌리에서 태어났는데) / 相煎何太急 (왜 이리 서로 들들 볶아 대는지.)” 조비에게 형제란 경쟁자에 다름 아니었다. 그런데 조식의 시는 조비의 머릿속 ‘형제’개념에 균열을 낸다. 이 시를 들은 조비는 잠시나마 조식을 향한 칼을 거두고 돌아간다. 생명조차 건져내는 언어의 힘이다.

언젠가 내 시가 누군가의 목숨을 건져내길 바란다.

※ 시 합평하고 있으니 같이 공부하고 싶은 분은 dlejrwosi@naver.com으로 연락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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