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획 > 특집
Χ를 Χ라고 부르지 않기■ 시 부문 당선 소감
이덕재 (철학·17)  |  news@cnumedia.com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승인 2020.11.09  22:36:12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요즘 네이버 구글 msn

목숨 걸고 시 한 편을 써야 했던 사람이 있다. 조조의 아들인 조식이다. 왕이 된 조비는 경쟁자의 싹을 잘라내기 위해 조식을 죽이려 했다. 그러나 명분이 없었다. 조비는 조식이 시에 재능이 출중하니 자신이 일곱 걸음을 걸을 동안 시를 적어내라 한다. 시의 주제는 형제다. 단, 시에 형제라는 단어가 들어가면 안 된다. 만일 써내지 못하면 어명을 어긴 죄로 국법에 따라 죽이겠다고 한다.

조비의 이 명령은 사실 시의 본령이다. 시는 Χ를 Χ라고 말하지 않으면서 Χ에 대해서 이야기해야 한다. 세상에 완전히 똑같은 두 나무는 없다. 그런데 그 모든 나무를 ‘나무’라고 부른다. ‘나무’는 각 나무들의 고유성을 잘라내고 동일성만을 뽑아낸 민둥산 같은 개념이다. 개념은 그물코가 넓어 삶을 건져 올리지 못한다. 나무를 그저 나무라고 인식하는 순간 나무는 죽는다. 조비는 자신도 모르게 진리를 말해버린 것이다.

조식은 조비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시를 읊는다. “煮豆燃豆 (콩깍지를 태워 콩을 삶는다.) / 豆在釜中泣 (솥 안에서 콩이 흐느낀다.) / 本是同根生 (같은 뿌리에서 태어났는데) / 相煎何太急 (왜 이리 서로 들들 볶아 대는지.)” 조비에게 형제란 경쟁자에 다름 아니었다. 그런데 조식의 시는 조비의 머릿속 ‘형제’개념에 균열을 낸다. 이 시를 들은 조비는 잠시나마 조식을 향한 칼을 거두고 돌아간다. 생명조차 건져내는 언어의 힘이다.

언젠가 내 시가 누군가의 목숨을 건져내길 바란다.

※ 시 합평하고 있으니 같이 공부하고 싶은 분은 dlejrwosi@naver.com으로 연락주세요.

   
 

[관련기사]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요즘 네이버 구글 msn 뒤로가기 위로가기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확인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 / 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최근인기기사
1
Χ를 Χ라고 부르지 않기
2
‘재미있는 이야기’가 ‘좋은 소설’이 되려면
3
2020 문예작품현상공모 시 부문 당선작 '무무의 모험'
4
일상 속에 숨은 쥐 한 마리
5
언택트 시대 전대인들의 밥상은?
6
2020 문예작품현상공모 단편소설 부문 당선작 '동생을 위해 하다'
7
어쩌다 소설을 쓰게 되었나
8
아직도 아물지 못한 여수의 상처
9
언택트? 온택트!: 동물의 왕국에서 랜선 집사까지
10
눈살 찌푸려지는 혐오 가득 ‘에브리타임’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500-757 광주광역시 북구 용봉로 77(용봉동) 제1학생회관 2층 신문방송사 편집실
대표전화 : 광주캠퍼스 062) 530-0527/0523  여수캠퍼스 061) 659-6655 | 팩스 : 062)530-0522 | 발행인 : 정병석 | 주간  : 노시훈
청소년보호책임자 : 최지희
Copyright © 2013 전남대학교.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