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획 > 특집
2020 문예작품현상공모 단편소설 부문 당선작 '동생을 위해 하다'■ 2020 문예작품현상공모 단편소설 부문 당선작
위대현(교직원·학술정보지원과)  |  news@cnumedia.com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승인 2020.11.09  22:26:55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요즘 네이버 구글 msn

동생을 위해 하다

위대현(교직원·학술정보지원과)

성민이 스노의 꼬리를 잡아 던졌다. 스노는 공중에서 몇 차례 회전한 뒤 벽에 부딪혔다. 벽에 부딪힌 스노는 다채로운 소리를 냈는데, 토마토가 뭉개지는 소리 같기도 했고 통닭의 닭 다리를 뜯어낼 때 나는 관절이 끊어지는 소리 같기도 했다. 나는 손등의 털이 곤두서는 것을 느꼈다. 용케 네 발로 바닥에 착지한 스노는 성민의 발바닥을 향해 송곳니를 드러낸 채 하악 소리를 냈다. 그 소리를 들었는지 성민이 스노를 내려다봤다. 스노와 눈이 마주친 성민은 작은 소리로 중얼거렸다. 뱀 눈깔…….

술에 취했는지 눈이 풀려있었다. 성민의 눈을 본 스노는 방 밖으로 뛰쳐나갔다. 성민은 그대로 누워 눈을 감았다.

스노를 처음 발견한 곳은 집 앞 전봇대였다. 작년 이맘때쯤이었을 것이다. 저녁으로 먹을 삼각김밥과 컵라면을 사서 집에 돌아오던 길이였다. 그곳은 쓰레기를 버려서는 안 되는 곳이었지만 항상 쓰레기가 버려져 있었다. 구청에 몇 차례 민원을 넣어야만 쓰레기를 수거해가고는 했기 때문에 방치된 쓰레기는 악취를 풍기며 썩어갔다. 그곳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쓰레기 더미 속 검은 봉투가 부스럭 소리를 내며 움직였다. 길고양이가 쓰레기봉투를 헤집고 있나 보다 하고, 그냥 지나치려는 순간 검은 봉투를 뚫고 나오는 하얀 물체를 발견했다. 봉투를 뚫고 나온 것은 하얗고 작은 짐승의 발이었다. 나는 옆에 버려져 있던 찢어진 우산으로 봉투를 찢었다. 봉투에 붙어있는 벌레들이 날아올랐고 불쾌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나는 한 손으로 코를 막은 채 우산으로 봉투를 헤집었다. 네 마리의 새끼 고양이가 쏟아져 나왔다. 세 마리는 이미 죽은 듯 움직임이 없었고 살아남은 녀석만이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구더기들이 죽은 녀석들의 썩은 살을 파먹고 있었다. 살아있는 녀석도 상태가 좋지는않았다. 똥, 오줌 혹은 시체 썩은 물 같은 오물로 털이 젖어있었다. 고양이보다는 시궁창을 헤매고 다니는 생쥐 같았다. 녀석의 혀와 발이 닿지 않는 항문주변에 구더기들이 달라붙어 녀석의살을 파먹고 있었다. 나는 아스팔트 위에서 꿈틀거리는 작은 생명체를 바라보며 생각했다. 형제들이 죽어서 구더기한테 파먹히는 걸 바라보고, 산 채로구더기들에게 살을 파먹히는 고통을버텨낼 수 있을까. 차라리 죽는 게 편하지 않을까. 녀석은 어째서 저런 고통을견뎌내야 하는 걸까. 발을 들어 녀석의위에 올린 뒤 체중을 실어 조금만 비벼주면 될 것이었다. 그것은 담뱃불을 끄는 것처럼 간단한 일이었다. 물론 그런잔인한 행동을 하고 싶지는 않았다. 가만히 둬도 녀석은 알아서 죽을 것이다.자연스러운 현상일 뿐이다. 녀석에게는 아무 잘못이 없다. 그게 한 시간가량 녀석을 쳐다보며 얻은 결론이었다. 녀석에게 아무 잘못이 없는 것처럼 내게도 잘못이 없다. 나는 혼자 집으로 들어오며 생각했다.

그로부터 한 시간 정도 후 집에 들어온 성민의 손에 녀석이 들려있었다. 성민은 곧바로 화장실에 들어가 녀석을 씻기고 맨손으로 구더기를 떼어냈다. 다음 날 아침에는 내게 카드를 주며 녀석을 데리고 동물병원에 다녀올 것을 부탁하며 출근했다. 나는 그렇게 했고 스노는 우리와 함께 살게 되었다.

성민은 왜 스노를 던졌을까.

나는 누워있는 성민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그거야 나로선 알 수가 없지. 나는 불을 끄고 방에서 나온 뒤 스튜디오로 사용하고 있는 옆방에 들어가 컴퓨터를 켰다. 곧바로 유튜브에 접속해 오늘 올린 영상의 반응을 살폈다.

보고 싶지 않겠지만 꼭 봐야 할 영화조회 수 1.5천 회 좋아요 84 댓글 22.

나는 영화 리뷰 채널을 운영하고 있었다. 구독자는 대략 2천 명으로 지난달 광고수익이 처음 발생했다. 십만 원이 약간 넘는 돈이었다. 여기까지 오는데 1년이 걸렸다. 1년에 2천 명. 그렇다면 구독자 만 명이 되기 위해서는 5년이 걸리는 걸까? 아니다. 당신이 유튜버가 되어야 하는 이유라는 영상을 본적이 있다. 구독자가 백만 명이 넘어가는 유튜브 크리에이터가 찍은 영상이었다. 그는 유튜브 알고리즘이 다단계와 비슷하다고 했다. 사람이 사람을 불러오기 때문에 사람이 많으면 많을수록 그 증가량의 폭은 점점 커진다고 했다. 구독자 천 명에서 만 명이 되는 시간과 구독자 만 명에서 십만 명이 되는 시간이 비슷하다고 했다. 그는 그것을 ‘스노우 볼링’이라고 했다. 여러분이 가진 눈덩이를 굴리세요. 아무리 작은 눈덩이라도 굴리고 또 굴리면 거대한 눈덩이가 될 수 있습니다. 제가 했으니 여러분도 할 수 있습니다. 나는 내가 굴리지도 못할 거대한 눈덩이를 상상하며 그의 채널을 구독했다. 그가 올린 영상은 폭발적인 조회 수를 기록했고, 그의 구독자 수는 삼 일만에 만 명 이 늘었다.

그가 이런 낭만적인 이야기만으로 사람을 끌어모은 것은 아니었다. 그는 실질적인 조언을 하기도 했다. 그가 강조하는 것은 소통이었다. 확실히 그것은 인터넷 방송이 가진 가장 큰 무기였다. 시청자들은 인터넷 스타와의 소통을 통해 TV 속 연예인들과는 다른 독특한 체험을 할 수 있었으며 크리에이터의 입장에서는 빠른 피드백을 통해 빠르게 발전해 나갈 수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소통을 위해 댓글을 훑는다. 소통이 별건가. 댓글을 잘 읽고 답글을 잘 달아주기만 하면 된다. 가장 먼저 처리하는 것은 이모티콘 댓글이다. 이모티콘 댓글은 반응해주기 편하다. 나도 이모티콘을 남기면 된다. 스마일 이모티콘에는 스마일. 하트에는 하트. 칭찬 댓글에는 정성을 들인다. 그들은 나의 답글을 받기 위해 다음에도 칭찬 글을 쓸 것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런 댓글이 나의 평판을 좋게 만든다. 슬쩍 봐도 나를 욕하는 게 보이는 댓글은 그냥 무시하면 된다. 개 빻았다. 목소리 구려. 유튜브 접어라, 같은 식이다. 이런 댓글은 자세히 읽을 필요가 없다. 상처가 될 뿐이다. 댓글을 삭제할 수는 있지만 웬만해서는 하지 않는다. 무플 보다는 악플이 낫다. 악플을 달기 위해 내 영상을클릭하는 사람들 또한 내 영상의 조회수를 올려준다. 그들은 왜 악플을 다는걸까. 악플이든 선플이든 댓글을 남기는 이들의 궁극적인 목표는 결국 관심,오로지 관심이다. 그들은 나의 관심을얻어내기 위해 댓글을 다는 것이다. 자기가 생각하기에 내 관심을 가장 잘 받을 수 있는 내용으로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악플보다 더 까다로운 댓글은 장문의 댓글이다. 장문의 댓글은 내용이무엇이든 나를 뒤흔들고는 했다. 댓글의 진위를 떠나 길게 늘어진 활자는 진정성을 가졌다. 이번 영상에도 장문의댓글이 한 개 달렸다. 그것은 다음과 같다.

영상 잘 봤습니다. 영화는 아니지만 얼마 전 도서관에서 비슷한 책을 읽은 적이 있어요. 그 소설은 가정폭력을 소재로 하고 있었죠. 그걸 읽고 난 후 제가 그동안 당해온 일들이 가정폭력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어요. 지난 17년간 제가 겪어온 부조리들과 마주 선순간 누군가 뒤통수를 망치로 후려친느낌이었죠. 그날은 아무것도 하지 못했어요. 그 책을 읽었다는 사실이 마치죄를 지은 것처럼 느껴졌고, 제가 처한상황을 부정하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할 수 없었어요. 그 후 한동안 책을 읽지 못했습니다. 다시 지옥 같은 집안에들어온 저는 가족이기 때문에 그들을사랑하고 잘 지내야 한다고 저 자신에게 폭력을 행했어요. 동성의 애인과 뽀뽀하는 것을 보고 뺨을 때리시던 아빠, 라면 끓여오라는 명령을 듣지 않았다며 주먹질을 하던 남자 형제, 그리고 그런 폭력들을 방관하던 엄마. 엄마는 자신에게 가해지는 폭력 앞에서도 철저히 방관자였습니다. 저는 그런 엄마도 싫습니다. 엄마는 왜 아빠 같은 사람하고 같이 사는 걸까요. 아빠는 무뚝뚝한 사람입니다. 화가 나면 언성보다 주먹이 더 높아지는 사람이고요. 저는 성인이 되는 순간 집을 나갈 거예요. 그날만을 기다리며 지금을 버티고 있습니다.이런 생각을 하는 게 잘못된 걸까요. 엄마는 가족을 쉽게 포기해서는 안 된다고 합니다. 가족들이 제게 하는 그 모든행동이 저를 사랑하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면 저는 마음이 약해집니다. 저는 이런 말에 마음이 약해지는 저자신도 싫습니다. 이럴 때면 정말 속이울렁거려서 밥 한 숟갈 삼켜낼 수가 없습니다. 그때마다 저는 일기를 씁니다.이런 감정을 글로 끄적이다 보면 마음이 가라앉습니다. 울렁거림이 가시면일기를 찢어 입에 넣고 삼켜냅니다. 생각해보면 저는 주변 사람 그 누구한테도 이런 말을 한 적이 없네요. 쓰다 보니 댓글이 길어졌습니다. 죄송합니다.

댓글을 단 사람이 실제로 내 어깨 위에 목마라도 탄 것처럼 몸도 마음도 무거워졌다. 너무 무겁습니다. 제 어깨 위에서 내려와 주세요, 라고 말하고 싶다. 그러면 그는 이렇게 답하겠지. 제가 무거운 것이 아니라 당신이 약한 것입니다. 아아, 그는 어쩌자고 이런 개인적인 이야기를 내게 하는 것일까? 얼굴을 공개하면 이런 문제점이 생긴다. 내 영상을 오랫동안 봐온 사람들은 내가 그들의 애인이나 친구가 되었다고 착각이라도 하는 모양이다. 그들의 댓글에 내가 조금이라도 소홀하면 그들은 상처받는다. 반대로 조금만 성의를 보여도그들은 감동한다. 나는 그들을 기억하려 노력하지만 내가 알 수 있는 것은 그들의 아이디뿐이었다. 비 오는 날 나를흠뻑 적시고 사라져버린 누군가의 차량처럼 그 댓글은 나를 찝찝하게 만들었다. 내가 무엇을 해 줄 수 있을까. 떠오르지 않는다. 나는 나의 무력함에 무기력해진다. 잘못은 이 사람의 가족들이 했는데 왜 내가 불편함을 느껴야 할까. 이런 사람들은 대체 무슨 생각을 하며 살까. 이해할 수도 없었고 하고 싶지도 않았다. 가족이 나서서 해결해야 할문제의 원인이 가족이라니. 댓글은 영화보다 더 나를 불편하게 만들었다. 그날 리뷰한 영화의 내용은 이랬다.

아이의 아빠와 엄마는 자주 싸웠다. 아빠가 육아에 무관심했기 때문이다. 육아뿐만 아니라 가정에 무관심했다. 집에서는 잠만 잤다. 그 외에는 밖에서 시간을 보냈기 때문에 영화에는 별로 등장하지 않았다. 엄마는 여행작가가 꿈이었지만 아이 때문에 여행은 꿈도 못 꾼다. 엄마는 과거를 회상한다. 영화는 그녀가 스위스 인터라켄에서 번지점프를 하는 장면을 보여주다가 아이가 우는 장면을 보여준다. 그리고 다시일상. 똥 기저귀를 갈고, 싸우고, 울고, 일하고. 그리고 다시 회상. 이번에 그녀는 가면을 쓰고 베니스 카니발을 구경한다. 가면을 쓴 사람들의 얼굴이 반복해서 클로즈업된다. 눈동자를 제외하고는 모두 가면이 가리고 있다. 가면은 모두 달랐지만, 눈동자는 박제된 동물처럼 생동감이 없었다. 영화는 눈동자를 화면의 중심에 고정해둔 채 화면을 전환하다 디졸브효과를 사용해 엄마의 무표정한 얼굴을 비춘다. 엄마는 아이 같은 건 원하지 않았었는데 같은 생각을 하다가, 아이를 때렸다가, 자신을 때리기를 반복하다가 결국 아이와 함께 아파트 발코니에서 함께 투신하는 것으로 영화는 마무리된다. 영화는 여운을 남기기 위해 아무도 없는 창문을 오랫동안 비춘다. 슬픈 배경음악이 깔리고 화면은 서서히 페이드아웃 된다.

눈물이 흐르지는 않았다. 나는 그녀가 책임을 다했다고 생각한다. 다만 찝찝한 기분이 들었다. 몇 년 전 무장테러단체의 참수형이라는 제목으로 인터넷에 퍼진 영상을 봤을 때와 기분이 비슷했다. 인터넷을 하다 보면 알 수 없는링크를 댓글로 남겨놓는 사람들이 있다. 이런 댓글이었던 것 같다. 이거 진짜냐? 가짜면 진짜 리얼한데? 나는 호기심에 링크를 눌렀다. 알 수 없는 언어가 모니터 화면을 가득 메웠고, 곧 영상이 재생되었다. 한 사람이 바닥에 엎드려 있는 한 남자의 뺨을 발로 밟아 고정하고 있었다. 통나무를 톱질할 때와 비슷한 자세였다. 서 있던 남자가 곧 커다란 칼을 꺼내더니 엎드려 있는 남자의목을 내리쳤다. 영화에서처럼 한 번에목이 떨어지지는 않았다. 칼을 내려찍고 목에 꽂힌 칼을 흔들어 뽑아내고 하는 과정을 4번 정도 반복하자 목이 떨어졌다. 칼을 든 남자가 손으로 얼굴에튄 피를 닦은 뒤 떨어진 머리를 걷어 차버리는 것으로 영상은 끝이 났다. 조악한 화질이 그 영상의 리얼함을 높여줬고 영상 속 남자가 실제 사람이냐 아니냐로 인터넷에서 화제가 되었다. 하지만 그 영상이 유해 영상으로 분류되어해당 사이트를 접속할 수 없게 되었고영상에 관한 관심도 사라졌다.

입에서 시큼한 맛이 났다. 나는 역류한 것을 다시 삼켜낸다. 내가 한가롭게 영화를 보고 있는 동안에도 누군가는 목이 잘려 나가고, 누군가는 누군가에게 맞고, 누군가는 아파트에서 뛰어내리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기분이 나빠졌다. 죄책감이나 책임감 때문일까? 그도 아니면 단순 혐오감에서 비롯한 걸까?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지? 그들의 안녕을 위해 기도라도 해야 하는 걸까. 기도는 누구한테 해야 하는 거지. 나는 신도 믿지 않는데. 모르겠다. 게다가 내 잘못도 아닌걸. 중요한 것은 답글을 다는 것이었다. 답글을 달지 않으면 그 댓글을 읽은 다른 사람들이 나를 뭐라고 생각할까. 인정머리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댓글이 몇 개나 된다고 댓글을 무시해. 자기가 무슨연예인이라도 되는 줄 아는 모양이지?건방지군. 응, 구독 취소. 그렇다고 누구나 해 줄 수 있는 뻔한 위로의 말을 건네고 싶지도 않다. 도움이 될 만한 조언을 줄 수는 없을까. 누구라도 내 댓글을 읽는 순간 이 사람 정말 생각이 깊고현명한 사람이구나, 본받고 싶은걸? 하고 나를 구독하고 만들 그런 멋진 댓글말이다. 하지만 나는 비슷한 경험이 없었다. 경험이 없으니 건네줄 조언도 없었다. 나의 부모는 어떤 사람인가. 나의부모는 나를 때린 적이 없었다.

아빠는 내가 초등학교에 입학해 구구단을 외우기 시작할 무렵 죽었다. 술을 많이 마셔서 간에 문제가 생겼다고 했다. 아빠에 대한 기억은 별로 없었지만, 장례식만큼은 기억난다. 친아빠라고 생각하고 힘들면 말하거라. 나는 그날 학교에서 사귄 친구보다 더 많은 수의 유사 아빠가 생겼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들은 그 이후 내게 은근한 도움을 주고는 했는데, 치과에서 투 플러스 원 금액으로 금이빨을 시술해준다거나 식당에서는 2인분 같은 1인분으로 삼겹살을제공해주는 식이었다. 좁은 시골 동네에 아빠의 친구들이 많기도 했다. 장례식날 그들 앞에서 엄마는 많이 울었던것 같다. 나는 그 이후로 엄마가 우는모습을 본 적이 없다.

엄마는 해가 뜨기 전에는 녹즙을 배달하고 해가 떠 있을 때는 속옷 가게에서 속옷을 팔고 해가 지면 고깃집에서 설거지를 했다. 나는 학교가 끝나면 영어 학원, 수학 학원, 컴퓨터 학원을 연달아 다녔고 성민은 지역아동센터에서 시간을 보냈다. 우리 형제는 저녁 무렵 집에 들어와 엄마가 만들어 놓은 카레나 짜장 같은 것을 데워 먹고, 티브이로 짱구는못말려나 네모바지 스폰지밥 같은 애니메이션을 보며 엄마를 기다렸다. 엄마는 열 시가 넘어서야 집에 들어왔다. 집에 들어온 엄마는 곧바로 씻은 뒤 우리를 눕혀놓고 방에 들어가 잤다. 엄마는 우리를 깨워 공복에 녹즙을 마시게 한 뒤, 아침을 먹이고 곧바로 가게로 출근했다. 나는 엄마가 아침을 차릴 때 엄마의 지갑을 열고 돈을 꺼내 양말에 숨기고는 했다. 돈으로 뭔갈 사본 적이 별로 없던 나는 그 돈을 들고 고민하다 학교 앞 문방구에서 피자 빵을 두 개 샀다. 남은 돈은 내 방 책상 밑 서랍에 던져놨다. 나는 피자 빵을 하나 먹고 남은 하나는 같은 반 친구의 사물함에 몰래 넣어놨다. 그 친구는 할머니와 단둘이 살고 있었는데, 그 친구 몸에서는 항상 냄새가 났다. 그래서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친구는 친구가 없었다. 나도 할머니 집에서 그런 냄새를 맡아본 적이 있다. 메주나 늙은 호박에서 날 법한냄새였다. 나는 그 냄새가 싫었다. 어느날 그 친구의 사물함 피자 빵 말고 다른빵이 먹고 싶다는 쪽지가 붙을 때쯤 엄마는 현금을 가지고 다니지 않았다. 나는 성민이 엄마에게 고자질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성민을 때렸다. 성민의 얼굴이 빨갛게 부어올랐다. 그걸본 엄마는 성민을 데리고 방에 들어가같이 잤다. 그래서 나는 성민을 또 때렸다. 성민의 얼굴이 파랗게 부어올랐다.

엄마는 할머니 댁에 성민을 맡겼다. 나는 한동안 혼자 카레를 데워먹고 혼자 스폰지밥을 봤다. 카레는 그런대로 먹을 만 했고, 스폰지밥도 재미있었다. 다만 나는 성민의 부재가 경고처럼 느껴졌다. 너도 언제든지 다른 곳으로 보내버릴 수 있다는 걸 명심해, 엄마는 그렇게 말하고 있는 듯했다.

나는 왜 성민을 때렸는가. 아마 어렸으니까 그랬을 것이다. 아이들이 뭘 알겠는가. 본능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다. 때려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면 때리고, 울어야 할 것 같으면 우는 것이다. 어린 내가 무슨 심정이었는지 지금의 내가 어떻게 알 수 있단 말인가. 다만 어른의 시점에서 예상해 볼 수 있을 뿐이다. 엄마의 사랑을 독차지하기 위해 그렇게 행동했다는 프로이트식의 뻔한 정신 분석이다. 게다가 사람을 때리면 안 된다는 도덕을 탑재하고 태어난 것도 아닌데 그게 잘못된 것인 줄 그때의 내가 어떻게 알았겠는가. 엄마는 어린 내게 너무 큰 공포를 준 것이다. 아, 지금 중요한 것은 이게 아니다. 지금 중요한 것은 다 큰 어른인 성민이 왜 스노를 던졌냐는 것이다. 그것은 명백한 동물 학대가 아닌가. 아직 미해결된 인권 문제가많아서 그렇지 동물 학대도 큰 문제다.다 큰 성민이 그것을 모를 리가 없다.술에 취했기 때문일까? 나는 취기가 근본적인 원인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취기는 방아쇠다. 방아쇠를 아무리 당겨도 총알이 없으면 총은 발사되지 않는다. 성민은 총알을 품고 있던 것이다.나는 영화 속 형사나 탐정들처럼 오른손을 들어 총 모양을 만들어 관자놀이를 두드린다. 그러자 실마리가 보이기시작한다. 성민이 이상해진 것은 아마그때부터일 것이다.

“나 잘렸어.”

두 달 전쯤 성민이 집에 들어오자마자 들고 온 상자를 바닥에 내려놓으며했던 말이었다. 상자 안에는 기름때가묻은 작업용 점프슈트와 샴푸, 비누 수건 같은 세면도구가 들어있었다. 성민은 내게 작업복을 건네며 깨끗하게 빨아서 반납해야 한다고 말했다. 나는 화장실에 들어가 세숫대야에 따뜻한 물을 받은 뒤 작업복을 넣고 퐁퐁을 뿌렸다. 수면에 오로라 같은 기름 막이 떠올랐다. 나는 작업복을 물에 담가놓은 뒤손을 씻고 성민에게 자초지종을 물었다.

“아직 쓸만합니다.”

성민이 카센터에서 엔지니어로 일할 때 자주 했었던 말이라고 했다. 성민의 말대로라면 사장은 그 말을 좋아하지 않았다.

“성민아, 아직 쓸만하다는 말은 곧 쓸만하지 않게 될 거라는 말과 다르지 않겠지?”

“그게 어떻게 다르지 않은 거죠?”

“일단 좀 들어봐. 우리 고객님들은 치과만큼이나 카센타를 싫어해. 일단 어딘가 이상이 있어야 비로소 우리한테 오는 거지.”

“모두가 다 그렇지는 않잖아요.”

“대부분이 그렇다는 거야. 그런 사람들이 센타에 왔다는 것 자체가 이미 큰일이야. 근데 네가 그걸 돌려보내면 어떻게 되겠어. 그 고객님이 다음에 만날 건 우리가 아니라 의사 선생님이야. 재수 없으면 의사 선생님도 못 봐. 우리는 전문가잖아? 프로란 말이야. 우리 같은 프로가 괜찮다고 해서 차를 탔는데, 사고가 났네? 그럼 우리도 책임이 있는 거야. 너 내가 돈 때문에 이러는 게, 어, 전혀 아니라고는 말 못 해. 근데 돈도 돈이지만 사람 목숨이 걸린 일이잖아. 돈보다 중요한 게 사람이야. 사람이 먼저다, 이 말이야.”

사장은 자신의 핸드폰에 달아놓은 노란 리본을 보란 듯이 흔들며 말했다고 했다. 사장은 거대한 현수막에 노란 리본을 크게 그려 넣고 그 밑에 잊지 않겠습니다, 라는 문구를 새겨놓기도 했다. 물론 그뿐이었다. 성민은 그 현수막이 길 건너편 카센터의 타이어 신발보다 싼 곳 보다 훨씬 눈에 잘 띄어서 광고효과가 괜찮다고 했다. 성민은 사장의 그런 수완을 싫어하면서도 월급날이면 밝은 표정으로 족발이나 초밥을포장해 오고는 했다. 언젠가 성민은 족발의 뼈를 비틀어 떼어낸 뒤, 뼈마디 사이사이에 있는 살을 집요하게 발라 먹으며 말했었다.

“형, 외제 차 탄 사람들은 정말 차에 대해서 잘 알더라. 그런 사람들한테서는 돈을 좀 뜯어내도 죄책감이 덜 할 것 같은데 그럴 수가 없어. 차를 금방 바꾸니까 고장 날 만한 것도 별로 없고. 오히려 내가 기스라도 낼까 봐 그게 걱정이야. 그래서 나는 오래된 차를 타고 다니는 사람들 쪽을 노려보려고 했지. 오래된 차를 타는 사람들은 차에 별로 관심이 없는 줄 알았거든, 근데 자기 차 이상한 건 자기들이 제일 잘 알더라. 내가 견적을 뽑아주면 그 사람들 눈빛이막 흔들려. 오 백, 육백 하는 돈도 아니고 백만 원 혹은 그보다 더 적은 돈으로도. 그 흔들림을 보면 엄마가 생각나.그래서 나는 웬만하면 그냥 괜찮다고,아직 쓸만하다고 하는 거야. 물론 진짜위험하다 싶으면 말하지. 근데 나는 그렇게 생각해. 굳이 말 안 해도 그 사람들이 제일 잘 알 거라고.”

엄마가 그런 눈빛을 한 적이 있었던가. 생각해보니 엄마와 눈을 마주쳐본 경험이 별로 없었다. 뭐 지금 중요한 건 이게 아니다. 엄마를 생각하면 마음이 복잡해진다. 그만하자. 어쨌든 보험회사 직원이 성민의 카센터에 찾아왔다. 성민이 점검한 차량의 차축이 주행중 파손되어 운전자의 초등학생 아들과 딸이 죽었다는 것이다. 유가족 측은성민이 작성한 정비소견서를 걸고넘어졌다. 사장은 성민을 데리고 그들을 찾아가 무릎까지 꿇고 죄송함을 표했다.죄송함의 크기는 삼 천 오백만 원이었다. 유가족들에게는 적은 액수였을지도모르겠지만 그것은 성민이 대학진학을포기하고 꼬박 5년을 카센터에서 일하며 모은 돈이었다. 그리고 성민은 더 이상 카센터에서 일할 수 없었다. 나는 그때 무슨 말을 했던가.

“성민아, 그건 네 잘못이 아니야.” 나는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댓글을 쓸 만한 힌트를 발견했다. 그건 당신의 잘못이 아닙니다. 정말 그렇게 생각할 수 있다면 그 사람은 죄책감을 조금은 덜 수 있지 않을까. 그래도 아직 부족하다. 이야아아아아아아옹 소리가 들려온다. 스노가 배를 바닥에 바짝 붙인 자세로 울고 있었다. 평상시의 애오옹 하고 우는 소리와는 다르다. 발정이 온 것이다. 발정기의 고양이 울음소리는 곡소리에 가깝다. 어딘가 구슬프고 듣는이에게 안쓰러운 마음이 들게 한다. 저렇게 며칠 동안 밤새 울어댈 것이다. 스노가 울기 시작하면 창문을 열 수 없었다. 이웃집에서 항의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다행히 아직 그런 일은 없었다. 아마도 길고양이들 덕분일 것이다. 스노의 울음소리를 들은 길고양이들이 가끔 우리 집 앞에 찾아와 울었다. 이야아아아아아아아아앙옹. 이웃들은 스노 대신 그 고양이를 미워했다. 그리고 그 고양이가 사라지더라도 창문을 열고 그 고양이를 찾으며 화낼 것이다. 시끄러운 길고양이! 스노를 처음 발견했을 때처럼 나는 요즘도 가끔 집주변에서 죽은 고양이를 본다. 누군가는 길고양이들에게 밥을 주고, 누군가는 그 위에 약을 뿌린다. 어쩌면 그것은 한 사람의 소행 수도 있겠지만, 나는 그런 수상한 사람과 마주친 적이 없었다. 다만 죽어있는 고양이와 냄새나는 사료를 발견할 수 있을 뿐이었다. 얼마나 배가 고팠으면 아무 의심 없이 그것들을 먹어 치웠을까. 나는 죽은 고양이를 보면 소름이 돋는다. 그것은 어떤 경고처럼 느껴지고는 했다. 망할 고양이 울음 좀 안 나게 해. 나는 일회용 비닐장갑을 여러 겹 겹쳐 끼고 종량제 봉투에 그것들을 담아서 버렸다. 죽은 고양이들에게는 미안하지만 지금 중요한것은 결국 30만 원이다. 그것은 스노의중성화 수술비용이었다. 나는 그 돈이없었다.

이건 한 달 전쯤의 일이다. 나는 누워서 TV를 보고 있는 성민의 옆에 스노를 데리고 와 앉았다. 성민은 네모바지 스폰지밥을 보고 있었다. 이게 아직도 하는구나. 나는 스노의 앞발을 잡고 말했다.

“스노가 벌써 한 살이네. 사람 나이로 치면 딱 사춘기야. 우리 돈까스 먹으러 갈까 스노야?”

나는 스노를 바라보는 척하며 성민을 흘겨봤다. 성민의 시선은 TV에 고정되어 있었지만, 눈빛은 흐릿했다. 마치 조리개를 활짝 열어놓은 아웃포커스 모드의 카메라 렌즈 같았다.

“스노야. 중성화 수술을 안 하면 나중에 아야 할 수가 있대. 아야 하기 싫다고? 걱정 하지 마. 성민이 아빠가 알아서 다 해 줄 거야. 스노야, 아빠 한 번 불러봐. 애옹해 봐. 애오옹.”

나는 스노를 들어 올려 성민의 눈앞에서 흔들었다. 스노는 털을 날리며 좌우로 허우적거리다가 내 손아귀에서 벗어나려고 발버둥 쳤다. 스노의 뒷발이 성민의 머리를 때렸고, 드디어 성민이 입을 열었다.

“나 둘 중 하나를 포기해야 할 것 같아.”

성민은 여전히 아웃포커싱 상태였다. 스폰지밥이 따하하하하하하하 웃고 스노가 애옹하고 울었지만 성민은 무표정했다. 나는 애옹하고 우는 스노를 살며시 바닥에 내려놓았다. 둘이라면 나와 스노를 말하는 것 같고, 그중 하나를 포기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내다 버리기라도 하겠다는 말인가.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형하고 고양이를 저울질하다니. 이것 참. 내가 스노보다 더 많이 먹기는 했지만, 나에게는 장래성이라는 게 있지 않은가. 나는 곧 십만 유튜버가 될 사람이다. 물론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는 모르겠지만. 꾸준히 굴리기만 하면 알아서 커질 유튜브 채널이 있었다. 단순히 시간문제였다. 그에반해 이 고양이는 시간이 흐를수록 밥을 더 많이 먹고 눈덩이처럼 살이 불어난 뒤, 과도한 지방으로부터 비롯된 병때문에 아파서 야아아아아아옹 울다가 몇 년 살지 못하고 죽어버릴지도 모르는 것이다. 가슴 속에 솜사탕 같은 필터가 있어서 세상 모든 것이 파스텔톤으로 보이는 마음씨 고운 사람들이라면, 고양이 한 마리 따위도 가족과 동등한 위치에 두는 평등한 박애주의자라고 배부른 생각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아아……, 그때의 내가 바로 그런 사람이었다. 성민은 나만큼 스노를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었구나, 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 생각은 오래가지 못했다. 성민이 스노를 죽이려 한다는 사실을 알아버렸던 것이다.

성민의 발언 이후로 한 주에 2개씩 업로드하던 영상을 3개로 늘렸다. 그렇다고 해서 구독자 수가 눈에 띄게 늘어나지는 않았다. 사람들의 관심을 끌 수 있을 만한 파격적인 영상이 필요했다. 물론 그런 영상이 쉽게 떠오르지는 않았다. 성민은 그 발언을 반복하지는 않았다. 성민은 집에 있는 시간이 점점 줄어들었다. 나는 성민의 외출 시간과 우리에 관한 관심이 반비례한다고 생각했다. 성민은 손을 쓰지 않고 코를 풀려는 것일까. 이건 정말 영화 속 악당들이나 사용할법한 방법이 아닌가. 제한 인원을 정해놓고 무기를 던져주는 것이다. 남은 자리는 하나, 살아남은 녀석이나와 함께 간다. 내가 다시 돌아오기 전에 알아서 해결하라고. 아아아, 우리는불안함에 서로를 노려봐야 했다. 나는그렇게 생각했다. 사람들은 고양이를무시하고는 하지만 고양이는 생각보다영리한 동물이다. 고양이가 우리의 언어를 알아들을 수는 없겠지만 감정을느낄 수는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나를바라보는 스노의 눈빛에서 녀석의 불안함을 읽을 수 있었다. 저것 봐라. 스노는 사료도 물도 먹지 않고 있지 않은가. 어쩌면 단식투쟁이라도 하는 것이아닐까? 설마, 그럴 리가 없지. 나는 사료를 하나 집어 들어 코딱지를 뭉치듯 엄지와 검지로 문질렀다. 사료의 겉 부분이 부드럽게 뭉개졌다. 며칠이나 된 걸까. 딱딱한 사료가 습기를 머금을 정도의 시간 동안 스노는 아무것도 먹지 못한 걸까. 혹시 상하지는 않았을까 사료의 냄새를 맡아봤다. 어렸을 적 갔었던 워터파크에서 맡아 본 냄새 같기도, 언젠가 엄마가 건네준 포카리 스웨트에서 났던 냄새 같기도 했다. 물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희미하기는 했지만, 그것은 분명 락스 냄새였다. 아아, 성민은 정말 스노를 죽이려고 했던 것일까. 성민은 대체 스노를 어떻게 생각하는 걸까. 스노도 우리의 가족이 아닌가. 카센터를 그만두고 이불 밖으로 나오지 못하는 성민의 얼굴을 매일 아침 핥아주던 것은 누구인가. 성민이 잠들지 못하는 새벽이면 머리맡에 엎드려 그르렁 소리를 내주던 것은 누구인가. 그런 스노를 왜 죽이려는 걸까. 설마 돈 때문일까. 그건 안 된다. 그것은 너무 뻔하다. 그것은 클리셰로 점철된 영화를 보는 것처럼 시시하고 지루하다. 나는 눈을 감고 양손을 총 모양으로 만들어 관자놀이를 두드린다.

피 흘리는 염소, 피로 그려진 그림, 그리고 그 위에 밧줄로 묶여 있는 남자, 불타는 집, 뿔 달린 악마, 같은 이미지가 떠오른다. 사이비 종교를 다룬 영화를 몇 편 본 적 있었다. 가장 최근에 본 영화는 악마를 숭배하는 사이비 종교 이야기였다. 주인공은 고등학생 아들과 초등학생 딸을 가진 40대의 엄마였다. 영화 시작 10분 만에 아들이 이상행동을 보이기 시작한다. 허공을 바라보며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로 혼잣말을 했고 난폭하게 행동했다. 학교에서는 친구의 허벅지에 볼펜을 꽂았고 집에서는 가위로 동생의 머리카락을 잘랐다. 아들이 집에 있는 동안에는 집으로 동물들이 날아와 죽었다. 박쥐, 까마귀, 들쥐, 검은 고양이, 흑염소 같은 검은 털을 가진 동물들이었다. 검은표범도 있었다. 검은표범은 조금 아니지 않나 싶기도 했지만, 미스터리하고 어두운 분위기를 고조하는데 한몫했다. 미국은 넓으니까. 그리고 나는 미국을 잘모르니까. 가능할 수 있지도 않을까, 생각했다. 뭐 그러다가 딸은 아들에게 죽는다. 딸을 데리고 뒷산에 올라간 아들이 절벽에서 딸을 밀었다. 아빠는 거실에서 의자에 묶인 채 검은 동물 무더기와 함께 불태워진다. 2층 통나무 집은아주 잘 탔고 많은 연기를 뿜어냈다. 그연기에서 어떤 것이 튀어나와 아들의코와 입속으로 들어갔다. 아들은 잠시쓰러졌다가 다시 일어났다. 아들의 머리에 뿔이 돋아 있었다. 아들은 엄마를바라봤다. 엄마도 아들을 바라봤다. 영화는 불타는 집과 그들의 얼굴을 클로즈업해서 번갈아 가며 보여줬다. 5분이라는 긴 시간 동안 그들은 서로를 바라봤고 나는 서로를 응시하는 그들을 바라봤다. 그들의 눈동자에는 불타는 집과 상대방의 얼굴이 비쳤다. 나는 지금까지도 그들이 무슨 표정을 짓고 있었는지 잘 모르겠다. 아무 의미 없는 무표정이었을지도 모르지만 오래 바라보고 있자니 마음이 복잡해졌다. 나라면 그때 어떤 표정을 지었을 것인가. 물론 언제나 그렇듯 이것은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중요한 것은 성민이 사이비 종교에 빠져있었다는 것이었다.

무기력한 성민을 일으켜 세운 것은 종교적 믿음이었다.

“그분의 존함은 아나스타샤야. 부활이라는 뜻이지. 그분은 절대 죽지 않아. 그분을 받아들이고 나는 다시 태어날 수 있었어. 삶에 대한 관점이 달라졌지. 모두 그분의 은혜로움 덕분이야.”

성민의 그분은 메뚜기 쥐였다. 성민은 매일 그분께서 전갈을 잡아 드시는 것을 보며 그분에 대한 믿음을 키워나간다고 했다. 달에 한 번쯤은 독사를 잡아 드시기도 한다고 했다. 일종의 먹방같은 건가,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가끔뱀에게 잡아먹히기도 한다고 했다.

“죽지 않는다며?”

“메뚜기 쥐는 껍데기일 뿐이야. 영혼을 담는 락앤락 같은 거지. 우리가 생각하는 죽음은 영혼의 소멸이야. 아나스타샤의 영혼은 소멸하지 않아. 우리는 의식을 통해 새로운 그릇을 그분께 선물하지. 우리가 있기에 아나스타샤가 존재할 수 있는 거고, 아나스타샤는 우리를 하나로 만들어.”

“어떤 의식인데?”
“그건 말해줄 수 없어.”

나는 더 묻지 않았다. 성민의 얼굴이 너무 좋아 보였다. 따돌림을 당하던 자녀가 자신을 괴롭히던 이들과 화해하고 잘 지내게 되었다고 말한다면 이런 기분일까? 다행인 것 같으면서도 어딘가 불안한 기분. 그래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고 지금의 나는 생각한다. 성민이이상해진 것은 성민의 잘못이 아니었다. 바로 내 잘못이었다. 나는 형으로서해야 할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한 것이다. 이제 모든 것을 바로 잡을 것이다.내가 할 수 있는 일로 말이다. 몰래카메라를 찍을 것이다. 나는 그전에 적던 댓글을 마저 적는다.

당신에게는 잘못이 없었습니다. 태어나기 전에는 말입니다. 아, 당신이 태어난 것이 잘못이라는 말은 아닙니다. 다시 말하지만, 당신에게는 잘못이 없었습니다. 당신의 탄생에는 당신의 의지가 개입되지 않았으니까요. 당신의 가족이 당신에게 그렇게 행동하는 것은 그 사람들의 문제입니다. 시발 그것은 당신의 문제가 아니라고요. 죄송합니다. 흥분했네요. 당신은 무엇을 했나요. 그것은 자책이었죠. 그것은 물론 힘든 일이었겠지만, 손쉬운 결정이었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았나요? 당신은 모든 문제를 스스로 끌어안았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그것은 당신의 문제입니다. 왜냐고요? 당신이 그렇게 행동했으니까요. 그렇게 살다가는 언젠가 스스로 목숨을 끊겠죠. 당신이 나약한 사람이라면요. 당신이 강인한 사람이라면 책임감을 느끼고 문제를 해결해 나갈 것입니다. 나는 당신이 후자이기를 바랍니다. 그러니 자책을 멈추고 행동하세요. 제발 겁먹은 꿀벌처럼 굴지 말라고요. 용감한 꿀벌은 독침을 사용해야 할 때 망설이지 않습니다. 강인해지세요. 그것은 당신을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당신의 가족을 위해서이기도 합니다.

나는 악보를 까먹은 피아니스트처럼 키보드 위에 손을 얹어둔 채 움직일 수 없었다. 나는 댓글 작성 버튼 위에서 망설이다 임시 저장 버튼을 누른 뒤 컴퓨터를 꺼버리고 랜선을 뽑았다. 20m쯤 되는 것 같았다. 나는 빨랫줄로 사용하던 로프부터 줄넘기까지 집에 있는 줄은 다 꺼내서 모은 뒤 옷장에서 박쥐맨 코스튬을 꺼냈다. 곰팡내가 났다. 나는 그것들을 챙겨서 성민이 자는 방으로 들어갔다. 성민은 아이 같은 순수한 표정으로 아저씨처럼 코를 골았다. 코골이 소리에 맞춰 내 심장 박동이 점차 빨라졌다. 나는 성민에게 박쥐맨 코스튬을 입힌 뒤 의자에 앉혔다. 술 때문인지성민은 쉽게 깨지 않았다. 성민의 팔을뒤로 넘긴 뒤 그 위로 랜선을 감아 묶었다. 그리고 랜선이 풀리지 않도록 한뼘 간격마다 케이블 타이를 이용해 마무리했다. 그것은 마치 예수님께서 쓰셨다는 가시관 같았다. 나는 같은 방식으로 성민의 팔목과 발목을 묶은 뒤 조명을 설치하고 성민이 볼 수 없는 위치에 카메라를 배치했다. 이제 준비는 끝났다. 나는 촬영 버튼을 누른 뒤 카메라앞에서 말했다.

“제 앞에 사이비 종교에 빠져 동물들을 마구잡이로 학살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제가 오늘 사이비의 실체를 낱낱이 파헤치고 참교육 시전하도록 하겠습니다. 그 전에 좋아요와 구독 버튼 한번씩 눌러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관련기사]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요즘 네이버 구글 msn 뒤로가기 위로가기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확인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 / 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최근인기기사
1
Χ를 Χ라고 부르지 않기
2
‘재미있는 이야기’가 ‘좋은 소설’이 되려면
3
2020 문예작품현상공모 시 부문 당선작 '무무의 모험'
4
일상 속에 숨은 쥐 한 마리
5
언택트 시대 전대인들의 밥상은?
6
2020 문예작품현상공모 단편소설 부문 당선작 '동생을 위해 하다'
7
어쩌다 소설을 쓰게 되었나
8
아직도 아물지 못한 여수의 상처
9
언택트? 온택트!: 동물의 왕국에서 랜선 집사까지
10
눈살 찌푸려지는 혐오 가득 ‘에브리타임’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500-757 광주광역시 북구 용봉로 77(용봉동) 제1학생회관 2층 신문방송사 편집실
대표전화 : 광주캠퍼스 062) 530-0527/0523  여수캠퍼스 061) 659-6655 | 팩스 : 062)530-0522 | 발행인 : 정병석 | 주간  : 노시훈
청소년보호책임자 : 최지희
Copyright © 2013 전남대학교. All rights reserved.